편집자주|3월28일부터 학내 노동자들은 정문 앞 시위를 통해 임금 인상과 휴게실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근로자의 날을 맞아 학내 노동자들이 처한 실상에 대한 심층 보도를 3주에 걸쳐 진행한다. 이번 호에서는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 실태를 다룬다.

 

달력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습한 입학관 휴게실 김영원 사진기자
달력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습한 입학관 휴게실 김영원 사진기자

비가 오면 빗물이 벽을 타고 내려오고, 계단 밑 낮은 층고로 허리를 펼 수 없는 곳. 날이 추울 때면 벽에 기댈 수조차 없으며 주워 온 물건으로 가득한 곳. 모두 본교 청소 노동자 휴게실의 모습이다. 현재 본교의 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말 그대로 '열악한’ 상황으로, 청소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이에 청소 노동자들은 주중 오전10시 본교 측에 휴게실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과연 본교는 이들의 쉴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을까. 본지는 건물 곳곳에 숨어 있는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 실태를 면밀히 살펴봤다.

 

노동자들은 오늘도 발 뻗고 쉬지 못한다

“가장 열악한 곳은 입학관이죠.”

양미자 공공운수노조 이화여대분회장의 말을 듣고 찾아간 입학관 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빛이 잘 들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다. 문 옆에 놓인 제습기와 벽을 타고 흐른 물 자국이 눈길을 끌었다.

지하의 좁은 귀퉁이에 자리한 입학관 휴게실에는 비가 샌다. 지상에서 흘러온 빗물이 천장과 벽을 따라 흐르고, 바닥에서도 습기가 올라온다. 입학관 청소 노동자 김기학(여∙65∙서울 은평구)씨는 재직하는 4년 내내 누수 문제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여름철에 비 올 때마다 (빗물에 젖은) 신문 걷어내고 또 신문 깔고 또 걷어내고, 걸레로 닦아서 좀 짜내고…”

입학관 휴게실 누수는 김기학씨가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지속된 문제다. 그러나 김기학씨가 빗물과 습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그저 제습기에 의존하는 것밖에 없다. 그마저도 장마철엔 하루 대여섯 번씩 물통을 비워야 한다.

 

입학관 청소 노동자 김기학씨가 휴게실 앞에 제습기가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휴게실은 빗물이 벽을 타고 흐르고 달력에 곰팡이가 생길 정도로 습한 지하다. 김영원 사진기자
입학관 청소 노동자 김기학씨가 휴게실 앞에 제습기가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휴게실은 빗물이 벽을 타고 흐르고 달력에 곰팡이가 생길 정도로 습한 지하다. 김영원 사진기자

고용노동부가 2018년 발표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운영 가이드’(가이드)에 따르면 휴게실은 가급적 지상에 설치돼야 한다. 지하는 옥내 공기, 악취 등으로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9년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본교는 청소 노동자 휴게실 35개 중 32개가 지하에 위치한 상태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과 이화·신세계관처럼 지하주차장 내에 청소 노동자 휴게실이 자리한 경우도 존재한다.

비단 위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상에 위치한 휴게실 중에서도 편안한 휴식을 보장하는 공간은 드물다. 건물의 잉여 공간 내 억지로 끼워 넣듯 조성된 지상 휴게실에서 노동자들은 또 다른 고통을 호소했다.

“여기는 계단 밑이라 들어갈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어요.”

생활환경관과 교육관A동의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서는 각각 6명, 7명의 청소 노동자가 머물고 있다. 그러나 김혜자(여·61·경기도 남양주시)씨의 말처럼 계단 밑에 조성된 탓에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면적은 협소하다.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층고가 낮은 탓에 조명을 달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소음 역시 문제다. 사람들이 계단을 오가는 소리가 천장을 타고 휴게실 내부로 고스란히 내려온다. 명목상의 위치만 ‘지하’가 아닐 뿐, 이곳의 노동자들 역시 사람들의 발밑에서 열악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4월27일 오전11시 경 조형예술관 B동 청소 노동자 휴게실 내부. 당시 ㄱ씨는 낡고 좁은 컨테이너 휴게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영원 사진기자
4월27일 오전11시 경 조형예술관 B동 청소 노동자 휴게실 내부. 당시 ㄱ씨는 낡고 좁은 컨테이너 휴게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영원 사진기자

마땅한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건물 바깥으로 내쫓긴 휴게실도 있다. 조형예술관 A동과 B동의 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상대적으로 외진 건물 뒤편에 위치해 외부인의 침입에 취약하다. 좁은 공간에서 항상 문을 닫고 생활하니 만성적인 환기 문제도 발생한다. 이에 ㄱ씨는 “공기청정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까지 요구하면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하는 마음에 못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 믿고 기다리는 노동자들

본교가 휴게실 환경 개선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SK텔레콤관 청소 노동자 김애자(여∙65∙서울 서대문구)씨는 2021년 총무처에서 휴게실을 방문했으며 공간 확장 및 난방기구 설치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2021년 9월까지 해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믿었죠. 이제 겨울이니까 따뜻하게 지내겠다 싶었죠. 그런데 그냥 넘어간 거예요.”

 

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SK관 노동자 휴게실 김영원 사진기자
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SK관 노동자 휴게실 김영원 사진기자

총무처 직원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지만 김씨는 겨울이 지나도록 본교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건의하지는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본교의 상황도 어려울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반복해야 했다.

본교로부터 응답받지 못한 곳은 SK텔레콤관만이 아니다. 교육관 1층 계단 밑에 위치한 청소 노동자 휴게실의 난방기구는 고장 난 지 어언 3개월 차다. 본교로부터 고치겠다는 안내는 있었으나 이후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교육관 청소 노동자 ㄴ씨는 “전기장판이 2월에 고장 나 총무처가 사진도 찍어가면서 고쳐준다고는 했는데 바쁜 일이 있다며 아직이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개선 차차 이뤄질 것, 당장은 어려워

본교 측은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 중이나 당장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총무처 총무팀 관계자는 “가장 열악하다는 SK텔레콤관, 입학관 휴게실의 경우 이전 학년도부터 건축팀과 총무팀, 노동자가 함께 모여 논의 후 원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도록 결정했다”며 “다만 현재 학관 리모델링 기간과 겹쳐 다소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 휴게 공간뿐만 아니라 한 번 용도가 정해진 공간을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주제”라며 휴게 공간 이전 요구를 즉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휴게 공간을 새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바닥 올림 공사나 수도 및 배수 공사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하며 강의실 등 다른 공간과의 배치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총무팀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역할이 시작된 지는 오래됐으나 이들의 근로 환경에 대한 가이드라인 및 관련 법안이 제정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며 “학교는 공공기관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기에 관련 법이 기존에 존재했다면 당연히 따랐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재건축 중인 학관 건물의 청소 노동자 휴게 공간은 고용노동부의 가이드에 따라 지상에 마련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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