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보고서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 방향’에 따르면, 한국 대졸자의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부조화)는 50%에 달한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참여국들의 평균은 39.1%였다. 위 보고서의 저자인 한요셉 KDI 부연구위원은 “전공과 직업 간 불일치 현상은 어느 나라나 존재한다”며 “그러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더욱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재개발원(인개원)에서 조사한 2020년 ‘이화인이 간다’(기업 진출편) 자료 역시 본교 졸업생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다양한 직군에 진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어영문학부 주전공생이 은행에 취직하거나 경영학 주전공생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무관 자리에 진출하기도 했다. 특히 마케팅·홍보, 경영 직무의 경우 그렇다. 위 직렬은 자연과학대학·엘텍공과대학·음악대학에서의 진출도 활발하게 나타났다. 전공과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획일적인 전공계열 선택 시기, 뒤늦게 찾은 적성

2018년 KDI의 ‘대학 전공분야 선택과 정부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대입 체제상 어느 전공에 진학할지와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가 동시에 결정된다. 한 부연구위원은 치열한 입시경쟁에 놓인 학생들이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적성을 발견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또 2018년 KDI가 전국 4년제 대학 신입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신입생의 비중이 28.2%에 달했다. 이 중 83%의 신입생이 ‘대학 진학에 유리해서’, ‘주위의 일반적 선택을 따라’ 전공 및 계열을 택해 후회한다고 답했다.

ㄱ씨는 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이지만 전공과 무관한 ‘여행 앱’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제공=게티이미지뱅크
ㄱ씨는 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이지만 전공과 무관한 ‘여행 앱’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제공=게티이미지뱅크

본교 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인 ㄱ씨는 지난 6월부터 ‘여행 애플리케이션(앱)’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전공과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본래 ㄱ씨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해 약사를 꿈꿨다. 고교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과를 택했고 대학전공으로 생명과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생명과학과 진입 후,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ㄱ씨는 “약대가 아닌 생명과학 분야의 진로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며 “조직생활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이 성향에 맞다”며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전공 따라 진로 준비했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변수

2018년, 특수교육과 진로 특강에 참석해 장애 학생의 사회적 자립 지원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박성은씨. 제공=박성은씨
2018년, 특수교육과 진로 특강에 참석해 장애 학생의 사회적 자립 지원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박성은씨. 제공=박성은씨

개인의 상황이 직업선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박성은(특교·15년졸)씨는 현재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학 입학 전, 박씨는 조선일보의 ‘맛있는 대학’에서 다뤄진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글을 보고 전공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졸업 후, 박씨는 3년간 특수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주변 지인들의 합격 소식과 지속된 수험생활은 박씨가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던 중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채용형 인턴 공고를 알게 됐다. 박씨는 "부모님께 하루 빨리 취업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다"며 "때마침 교수님으로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채용 메일을 받게 돼 지원했다”고 말했다. 장애학생의 교육뿐 아니라, 사회복지 역시 관심 있었던 박씨는 주저없이 공고에 지원했다. 임용과 인턴을 병행하던 박씨는 정직원으로 전환되며 교직이 아닌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졸업한 동문들이 교사가 돼 학생을 만나는 것을 보며 행정실무를 하는 자신의 처지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전공에서 배울 수 없었던 장애인의 사회적 자립 생활에 대한 전문성을 쌓을 수 있었다. 박씨는 “장애 학생의 사회적 자립 지원제도를 설명하거나 장애인들을 도와 그들이 취업에 성공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현재 직업에 대한 만족을 나타냈다.

 

원하는 전공과 대학 명성 중 우선 순위는

수도권 소재의 대학은 ‘총량적 정원 규제’를 받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의 정원은 대학이 학칙을 통해 자율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 제3항은 수도권 대학을 예외로 구분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인구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앞선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의 대학 서열화 풍류가 없다면 ‘총략적 정원 규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전공이 개설된 비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공을 포기하더라도 더 높은 서열의 대학을 원하는 학생이 존재한다.

화학생명분자과학부에 재학 중인 ㄴ씨는 본래 공대 진학을 목표했다. 실제로 ㄴ씨는 타대의 물리학과·도시공학과·기계공학과에 합격했다. 본교의 자연계열에도 합격했던 ㄴ씨는 전공과 대학 타이틀 사이에서 고민하게 됐다. ㄴ씨는 “자연계열은 취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 공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이화여대 타이틀’을 포기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신입생 시절의 ㄴ씨는 취업이 보장된 공대에 진학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1학년 2학기, 공대를 다녔던 지인의 ‘자연대가 취업 못 한다는 것은 편견’ 이야기에 생각을 바꾸게 됐다. 현재 ㄴ씨는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ㄴ씨는 “실제로 본교 선배들이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본교 인개원은 진로와 취업 지도를 위한 프로그램을 저학년때부터 세분화해 제공하고 있다. 저학년은 커리어디자인박람회를 통해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얻는다. 고학년의 경우 취업전략설계, 이화멘토링데이, 취업MC, 톡톡선배 등을 통해 취업준비에 대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인개원 관계자는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들의 도움을 얻어 구축한 데이터와 네트워크에 기반해 재학생들에게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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