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지금까지 이대학보는 다양한 분야의 최초가 된 여성, 끊임없이 도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해 왔다. 지난 70년 동안 이대학보가 써 온 여성의 역사는 우리대학의 발자취기도 하다. 이대학보 창립 70주년을 맞아 이화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들을 만났다.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온 우리대학 유학생 4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밝은 미소를 띄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팜 바오 짜우(Pham Bao Chau·커미·23)씨(왼쪽), 자라 나빌라 푸트리(Zahra Nabilla Putri·커미·23)씨. <strong>변하영 사진기자
밝은 미소를 띄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팜 바오 짜우(Pham Bao Chau·커미·23)씨(왼쪽), 자라 나빌라 푸트리(Zahra Nabilla Putri·커미·23)씨. 변하영 사진기자

수많은 이화인은 의료계, 법조계, 정치계 등 금녀의 영역으로 불렸던 분야에 최초의 길을 닦았다. 이화의 힘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갔다. 고향에서부터 머나먼 이화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외국인 유학생들이다. 자라 나빌라 푸트리(Zahra Nabilla Putri·커미·23)씨, 팜 바오 짜우(Pham Bao Chau·커미·23)씨, 캐롤린 팔머(Carolyn Palmer·커미·23)씨, 마리아 무라트(Maria Murat·커미·22)씨를 만났다. 개강 첫 주, 그들 표정에는 오랜만에 본 친구들을 향한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고향에서 이화로, 지구 반 바퀴의 결심

“인도네시아 영화 산업을 한국과 할리우드 영화 산업처럼 크게 키우고 싶어요. 그리고 제 이름을 건 회사도 세우고 싶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자라씨는 영화 제작자를 꿈꾸며 2023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어릴 적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케이팝과 드라마를 보며 한류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됐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한류를 향한 관심이 더해져, 한국에서 미디어학을 배우고 싶었던 자라씨는 오직 우리대학만 바라봤다. “한국 대학 10위 안에 드는 유일한 여대의 구성원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그에게 “여자들만 모여 열정을 키울 수 있는 우리대학”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영화 제작자이자 여성 리더가 되겠다는 자라씨에게 이화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는 “대부분 영화계가 남성들에 의해 주도된다”며 “이화에서 공부하며 리더십이 있는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남자 도움 없이 여자들끼리 협력하며 야망을 키울 수 있는 학교예요."

 

이화 다우리 멘토로 선정된 팜 바오 짜우(Pham Bao Chau·커미·23)씨는 “새로운 신입 유학생들에게 멘토로서 많은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strong>변하영 사진기자
이화 다우리 멘토로 선정된 팜 바오 짜우(Pham Bao Chau·커미·23)씨는 “새로운 신입 유학생들에게 멘토로서 많은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하영 사진기자

베트남에서 온 짜우씨는 주한 베트남 대사관으로 발령받은 부모님을 따라 15살의 나이로 한국에 왔다. 학창시절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낸 그는 자연스레 한국 대학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가족과 함께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ECC를 본 후 “이렇게 넓고 예쁜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해 우리학교행을 택했다. 짜우씨는 한국과 베트남 문화를 잇는 아나운서가 돼 한국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다.

짜우씨는 그렇게 입학한 우리대학에서 여성학을 배우며 고향을 떠올렸다. “베트남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인권보다는 도덕 관련 수업을 많이 배워요.” 그는 우리대학 강의 <World Women through English>에서 여성들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걸 처음 배웠다. 토론형으로 진행된 강의에서 여성학과 관련한 여러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며 짜우씨의 여성학적 사고는 확장됐다. 그는 “이화에서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며 여성학 강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미국에서 온 캐롤린씨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한국으로 여행 왔을 때 꼭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한국행을 결심한 후 한국에 여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에도 여대가 있지만 흔하지 않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는 가치관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여성들끼리만 모여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여대를 찾아보게 됐다. “이화여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영향력 있는 여대라고 들었어요.” 이화의 오랜 역사에 이끌린 캐롤린씨는 곧바로 우리대학행을 결심했다.

 

한국에 와서 겪은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경청하고 있는 캐롤린 팔머(Carolyn Palmer·커미·23)씨.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한국에 와서 겪은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경청하고 있는 캐롤린 팔머(Carolyn Palmer·커미·23)씨. 안정연 사진기자

카자흐스탄에서 온 마리아씨는 학창 시절 매일 한국어를 들으며 지냈다. 어머니의 일 때문에 가게 된 말레이시아에서 다닌 국제학교에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스레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 대학은 합리적인 등록금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마리아씨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의 많은 대학 중 마리아씨가 우리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편안함 때문이었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이화여대 학생들의 콘텐츠를 접하게 됐어요.” 그가 본 영상 속에는 얼굴에 웃음꽃이 핀 이화인들이 가득했다. 그는 우리대학에 있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여자끼리 모인 곳에서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 갠 뒤에 맑은 하늘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이화여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친구가 많아졌어요.”

자라씨가 이렇게 한국에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노력이 뒤따랐다. 특히 그는 부모님께 유학 의사를 밝혔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살면서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 없는 딸을 먼 한국으로 유학 보내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며 공부하던 자라씨의 열정에 자라씨의 한국행을 찬성했다. 지금 자라씨의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자라씨의 한국 생활을 응원하고 있다.

 

자라 나빌라 푸트리(Zahra Nabilla Putri·커미·23)씨가 유학생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있다. <strong>변하영 사진기자
자라 나빌라 푸트리(Zahra Nabilla Putri·커미·23)씨가 유학생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있다. 변하영 사진기자

마리아씨도 가족에게 한국 유학에 대한 결심을 전할 때를 회상했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미디어를 전공하기까지 어머니를 설득했던 과정을 “긴 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어머니는 제가 어릴 적부터 의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딸이 전문직을 택해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란 어머니의 마음과는 다르게 마리아씨는 어릴 적부터 춤추는 걸 좋아해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가 어머니를 꾸준히 설득한 끝에 어머니는 현재 마리아씨가 하고 싶은 모든 걸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어머니의 지지에 힘입어 현재 마리아씨는 우리대학 재즈댄스 동아리 뷰할로의 부원으로 활동 중이다. 힙합 댄스를 좋아하는 마리아씨지만, 재즈댄스 특유의 그루브 또한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살면서 이화에서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며 “여자만 모였지만 다양함이 존중되는 이곳에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돼 좋다”고 말했다.

 

생생한 꿈, 그 시작엔 이화가 함께

자라씨가 20년 동안 살았던 고향 인도네시아에서 여성은 오직 ‘남자 곁에 있어야 하는 존재’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어차피 여자는 누군가의 아내가 돼 주방에서 지내야 하는데 유학을 갈 필요가 있냐’고 말해요.” 그는 “난 남자 없이도 모든 게 괜찮다”며 “이화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라씨는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자만 모인 이곳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며 “이화로 유학을 왔다면 반드시 최선을 다하라”고 주변 유학생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우리대학 재즈댄스 동아리 뷰할로에 속해있는 마리아 무라트(Maria Murat·커미·22)씨는 동아리 활동 중에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 하며,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전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우리대학 재즈댄스 동아리 뷰할로에 속해있는 마리아 무라트(Maria Murat·커미·22)씨는 동아리 활동 중에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 하며,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전했다. 안정연 사진기자

마리아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전히 카자흐스탄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상이 남아 있다”며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화에서 다양한 여성사, 여성인권을 배우며 “여성도 사회의 기둥이 될 수 있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화가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선사한 메시지는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제작자를 꿈꾸는 자라씨, 아나운서가 돼 베트남과 한국 사회를 잇고 싶은 짜우씨, 공연 기획자가 되고 싶은 마리아씨, 광고 마케터를 꿈꾸는 캐롤린씨. 그들은 모두 이화에 입학한 후 더 생생하게 꿈을 그리게 됐고, 많은 선배의 도움을 받으며 꿈의 크기를 키웠다. 마리아씨에게 이화는 “많은 여성 리더가 자라나는 공간”이다. 

 

이화여대는 여성도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고 이끌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곳이에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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