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드 신전에서 보는 일몰. 제공=최한비
                                 데보드 신전에서 보는 일몰. 제공=최한비

 

보는 순간 ‘내가 평생 이 기억으로 살아가겠구나’ 하는 순간이 있다. 마드리드의 햇살이 내겐 그랬다.

마드리드에 오게 된 것은 찰나의 선택 덕분이었다. 처음엔 축구를 좋아해 유럽에 교환학생으로 오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학생 신분으로 살기 좋다는 독일을 꿈꿨다. 독일을 목표로 토플을 공부하고, 학점을 맞추고 파견교 목록이 정리된 엑셀을 훑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파견 보고서와 블로그 등을 살펴보며 목록을 추렸고, 우선 지망을 전부 독일로 채웠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서 ‘노는 걸 좋아하면 독일 말고 스페인으로 가세요’라는 글을 보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지원 마감 1분 전에 1지망을 스페인으로 바꿨다. 급한 마음에 그 학교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 어떤 전공을 받아주는지도 모르는 채로 제출 버튼을 눌렀다. 최종 선발 결과에서 IE university에 배정된 것을 확인하고 제일 먼저 한 말은 “여기가 어디야?“였다.

우습지만 나는 운명을 믿는다. 나의 모든 선택이,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결국엔 최고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몇 년간의 목표를 겨우 한 문장에 뒤집어 버릴 수 있었던 것도, 교환학생 정기모집에서 떨어져 추가 선발을 기다릴 때 떨지 않았던 것도 전부 그런 생각 덕분이었다. 어디로 떠나게 되어도, 심지어 떠나지 못하게 되어도 마주하게 될 일들은 전부 행복한 운명일 것이라 믿었다. 친구들이 “Why did you choose Madrid?”라고 물었을 때 “No, Madrid chose me.”라고 답하자 모두 웃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운명의 도시 마드리드는 솔직히 말하자면 벅차게 아름답지도 유별나게 행복하지도 않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걱정할까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사실은 정말 자주 울었다. 교환학생으로 온 것을 후회하며 지샌 밤이 많았다.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해 경찰서에 가야 했을 때, 번역기가 작동하지 않아 마트에서 샴푸 하나를 사는 데 30분이 걸렸을 때(스페인에서는 건물 안에서 통신이 되지 않는다.), 집의 난방 장치가 겨우 자그마한 라디에이터 하나라 온갖 옷을 껴입고 웅크려 잤을 때 그랬다.

도피처가 필요했다. 도피처라고 생각해서 오게 된 마드리드가 날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무너질 듯 혼란스러웠다. 서울에서는 서러울 때마다 한강에 가곤 했다. 한강에 가면 강 너머 건물들의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며, 서울은 많은 꿈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과 나도 그중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데보드 신전에 간 것은 우연이었다. 친구가 정한 약속 장소였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혼자 일몰을 감상하게 되었다.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신전을 오르다 위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마드리드를 황금빛으로 기억하겠구나, 마드리드를 떠올릴 때마다 따뜻하겠구나. 언덕은 본격적인 일몰이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빽빽했다.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 행복한 얼굴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 강아지와 함께 낮잠을 자는 사람. 그들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마드리드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마음과 지구 반대편인 여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한강에서 느낀 마음이었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그들의 인생이 있고, 나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 위로되었다. 그곳에는 한강은 없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과 낭만적인 노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데보드 신전에 간 것은 우연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줄 운명이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는 여행을 이렇게 표현한다.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 마드리드는 내게 무엇을 줄지, 나는 여기서 무엇을 얻어갈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드리드에서 울고 웃었던 기억들은 황금빛으로 나의 마음 한편에 내내 남아 나를 비춰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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