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고등학교 1학년이 입시를 치르는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교폭력 가해 기록이 의무적으로 반영된다. 8월30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확정해 발표한 ‘2026학년도 대학 입학전형 기본사항’에 따르면, 수시뿐 아니라 정시에서도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이 반영될 예정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학교폭력 치유 분야 박사가 탄생했다. 23년간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에서 활동한 조정실 회장(교육학 박사·23년졸)이다. 조 회장은 이번 8월 후기 학사수여식에서 65세의 나이로 최고령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그의 건의로 본교에 학교폭력예방연구소가 설립되기도 했다.

학교폭력피해자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그간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활짝 핀 웃음꽃을 보여준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학교폭력피해자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그간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리며 활짝 핀 웃음꽃을 보여준다. 안정연 사진기자

조 회장은 학교폭력 피해자의 부모였다. 2000년 당시 중학생이던 딸이 선배 학생들 5명에게 폭행당하자, 그는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겪고 있는 학부모 8명을 모아 학교폭력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자 학가협을 만들었다. 학가협에서는 교육부에 ‘생활기록부 학교폭력 사실 기재’, ‘학교폭력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종합 지원 센터 설립’ 등 학교폭력 정책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 학가협은 학교폭력 피해자 보호와 회복을 돕고 피해자 학생의 안정적인 학교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2013년부터 대안교육시설 ‘해맑음센터’와 시도별 지역센터 7개를 설치해 ‘우리아이 행복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대학보는 조 회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23년 차 학교폭력 현장 전문가에서 다시 학생이 되다

조 회장이 작성한 박사 논문은 ‘학교폭력 피해 학생 및 부모 대상 치유 프로그램의 효과 분석’(조정실, 2023)이다. 이론적 배경이 탄탄하지 않아 한 번 반려됐던 논문을 다시 보완해 완성했다. 60대의 나이에 몇백 장에 달하는 논문을 작성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조 회장을 일으킨 건 학교폭력 피해자의 가족들이었다. 그는 “현재 사회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낙인찍혀 영원히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치유와 회복이 왜 필요한지 사회에 꼭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부터 박사 공부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교육학 이론 공부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23년 동안 학가협 회장으로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이야기로도 충분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014년부터 6년간 본교 학교폭력 예방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던 정제영 교수(교육학과)와의 인연이 박사과정 공부의 시작이었다. 조 회장은 “정 교수님은 학교폭력 토론회에서 만날 때마다 매번 이론적으로 서툰 점을 잘 보완해주셨다”며 “(교수님께서) 공부하며 이론적인 배경을 가지면 더 탄탄한 논리를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학 이론을 배우며 지금까지 학가협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치유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다 이론적으로도 검증된 내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 가족의 입장이던 조 회장은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교육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선생님들이 수업 외에도 학생들의 내면을 보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폭력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모두 함께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학생들의 입장을 공감하며 업무에 임하고 있는 학교폭력피해자협의회 조정실 회장.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학생들의 입장을 공감하며 업무에 임하고 있는 학교폭력피해자협의회 조정실 회장. 안정연 사진기자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는 마음으로

조 회장은 2000년 중학생이던 딸이 학교폭력을 당했던 ‘성수여중 사건’을 떠올렸다. 그는 딸에게 고통스러운 학교폭력을 가한 학생들에게 정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고 답답함과 억울함을 느껴 서울시청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 사건을 돕기 위해 2주 만에 ‘성수여중 폭력 사건 대책 위원회’ 카페 회원 3만 명이 모였다. 카페 회원들은 응원 댓글과 진상 규명을 위한 온라인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해결하기 막막한 사건에 조 회장은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네티즌 연합들의 지지로 버텼다.

조 회장은 성수여중 사건의 가해 학생 측과 법정 공방 끝에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끊임없는 조 회장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 이후 많은 학교폭력 피해자 부모들이 조 회장에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부모님들이 제가 딸 사건을 해결한 걸 알고 찾아오셨다”며 “도움받을 데 없이 오가는 부모님들을 계속 쫓아다니며 학교폭력 사건 해결을 도와드렸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학가협 회장의 자리에서 다른 피해 부모들을 돕기 위해 사비를 끊임없이 투자하며 급기야 파산에 이르렀다.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학가협 회장 일을 그만두려고 했던 조 회장을 잡아준 건 그의 딸이었다.

“엄마, 내가 돈 다 벌 테니까 계속 해. 지금 다른 부모님들도 다 예전 엄마 같은 마음일 텐데 엄마가 그 사람들을 안 도와주면 어떡해.”

누구보다 피해 학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던 조 회장은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딸의 말을 듣고 학가협 회장으로서 학교폭력 예방과 피해자 치유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ECC 지하 2층에 위치한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앞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조정실 회장.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ECC 지하 2층에 위치한 학교폭력예방연구소 앞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조정실 회장. 안정연 사진기자

조 회장은 피해자 학생뿐 아니라 피해 가족들의 치유도 돕는다. 학가협에서 운영하는 지역센터 7곳에서는 피해 부모 자조 모임과 찾아가는 위로 상담, 대학생 멘토링, 가족 힐링 캠프, 가족 여행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가족은 눈앞의 상황에 자책감과 원망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 가족들의 고통 치유도 필요하다. 조 회장은 “가족사진 촬영 프로그램이 피해 가족의 유대감을 회복하는 데 제일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가족사진을 찍고 큰 액자에 넣어드리는데 부모님들이 그 사진을 붙잡고 펑펑 우세요.”

또 그를 활짝 웃게 만들어주는 존재는 바로 센터의 아이들이다. 센터에 있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어느새 그의 입꼬리에도 웃음이 번진다. 조 회장은 “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경계심에 가득 찼던 아이들이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네일아트, 여행, 텃밭 가꾸기, 봉사 수업 등을 통한 센터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사회 속 피해 학생의 자립을 도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가족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한 관심을 보여야 해요. 제가 살아 숨 쉬는 한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이 일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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