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무심하게 툭 던져놓은 말들이 신호였다. 박소현(25·여)씨가 미디어 속 자살유발·유해정보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건 6월. 경찰행정학을 전공한 터라 원래도 인터넷 유해정보 차단에 관심이 많은 그였지만,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유해정보에서 방법을 알거나 잘못된 용기를 얻는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생명존중재단)의 자살유발정보 모니터링 활동에 참여하며 박씨는 “사람들이 유해 정보에 너무나도 쉽게 노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접속해 5분만 돌아다녀도 2~3건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만 몇 건을 잡아내는 셈이다.

 

대학생 10명 중 7명은 자살유해정보에 영향 받아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 이를 모방한 자살 시도(베르테르 효과)가 잇따르곤 한다. 삼성서울병원 전홍진(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2005년~2011년 발생한 국내 연예인 13명의 자살 사건 이후, 한 달간 자살자 수를 추적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예인 사망 전 36.3명이었던 한 달의 평균 자살자 수는 사망 후 45.5명으로 늘어났다. 실제로 2008년 탤런트 최진실씨가 사망한 이후 한 달간 하루 평균 자살자 수가 58.6명으로 지난달 평균인 32.5명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대학보에서 정리한 구글 트렌드로 본 '자살' 키워드 검색 흐름도. <strong>신예린 기자
이대학보에서 정리한 구글 트렌드로 본 '자살' 키워드 검색 흐름도. 신예린 기자

 모방 효과는 유명세에 따라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4월16일 한 10대 학생이 SNS 실시간 방송을 켜놓은 채 자살했다. 이후 같은 달에는 2명의 10대 학생이 연이어 자살했다. 서강대 유현재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는 배경에 베르테르 효과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자살 사건이 또래 집단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미디어가 일으키는 파급효과도 한몫했다.

이대학보에서 조사한 자살유발·유해콘텐츠에 관한 미디어 이용자 조사. <strong>신예린 기자
이대학보에서 조사한 자살유발·유해콘텐츠에 관한 미디어 이용자 조사. 신예린 기자

이대학보가 15일부터 8일간 20대 대학생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6명 중 인터넷(커뮤니티, SNS 등)에서 자살유발정보 혹은 자살유해정보를 접한 적 있다고 답한 청년은 54.7%(47명)였다. 그 중 71.9%(23명)은 해당 정보가 미디어 이용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유해하다고 답했다. 자살유발·유해정보에 노출될수록 자살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져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인터넷의 자살유발·유해정보를 모니터링해온 박씨는 “이전까진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유해정보에 노출될 수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아무런 여과없이 유해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창작 미디어 콘텐츠에도 스며든 자극적 표현들

자살유해정보는 SNS나 언론뿐만 아니라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는 창작 미디어 콘텐츠에서도 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시각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웹툰과 OTT 플랫폼에서는 자극적이고 잔인한 작품들이 인기 상위권에 위치한다.

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해외 26개국 2만5천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2023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서 한국 문화콘텐츠 중 소비 비중이 가장 큰 분야는 웹툰이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징어게임’(2021)은 공개 직후인 9월23일부터 11월7일까지 전 세계 스트리밍인 글로벌 순위 1위에 올랐고, 뒤이어 공개된 ‘지금 우리 학교는’(2022)은 1월31일부터 2월13일까지 글로벌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국내 웹툰과 OTT 플랫폼은 해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오징어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은 죽음을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묘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을 두고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최후를 묘사했고,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사태가 발생한 학교를 묘사해 좀비에게 물리거나 좀비가 되는 모습을 연출했다.

두 작품 모두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청소년들은 별다른 규제 없이 짧고 자극적인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SNS에서 작품의 핵심 장면이 담긴 영상들이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2021년 ‘오징어게임’ 방영 당시 부산의 한 초등학교는 학부모에게 학생들이 작품에 등장한 놀이를 하지 않도록 각별한 지도를 부탁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기도 했다.

김지인 작가의 웹툰 '뉴심:교체인생'의 주인공. 제공=김지인 작가
김지인 작가의 웹툰 '뉴심:교체인생'의 주인공. 제공=김지인 작가

웹툰 ‘뉴심:교체인생’(2021)을 그린 김지인 작가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자살까지 이르는 사람의 심리는 파고들고 묘사해 보고 싶은 요소일 수 있다”며 “그걸 낭만화하거나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창작자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웹툰 ‘뉴심:교체인생’은 한번 죽음에 이른 이들이 ‘뉴심’이라는 칩을 통해 다른 몸으로 살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자살을 매개로 현실 세계를 떠나 현실 문제를 회피하는 판타지 작품과 달리, ‘뉴심:교체인생’은 학교폭력, 노인 소외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조명하며 원래 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작가는 작품에서 죽음이라는 소재에 중점을 두기보다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췄다. 김 작가는 “삶의 고단함이나 사람의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자살 외에도) 다양하다”며 “창작자들의 신중한 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6월에 열린 ‘2023 국회자살예방포럼 제2차 정책세미나’를 개최한 윤호중 의원은 “제작자, 작가들이 자살과 관련된 장면이 시청자나 웹툰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고민하고 숙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눈치 보는 사회에서 망설임 없이 돕는 사회로

안순태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는 “한국 사회의 자살률을 낮추려면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눈치와 체면을 중시해 온 한국문화는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어렵게 만들었다.

안 교수는 게이트 키퍼의 역할과 자살 리터러시를 강조했다. 개개인이 모두 게이트 키퍼가 돼 주변의 자살 위기 상황을 인지하고 적절한 도움과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치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도움 주는 것을 주저해요. 서로가 서로의 게이트 키퍼가 돼 ‘괜찮니?’, ‘전문가 상담을 받아볼까?’ 같은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자살유발·유해정보를 살펴온 박씨는 실제로 모니터링 활동을 하며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해낸 경험을 전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확인하던 중 너무나도 위급해 보이는 분이 계셨어요.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의 연락처와 함께 메시지를 남겼죠.” 박씨는 이후로도 그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가 전한 마지막 소식은 알바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 그 연락을 끝으로 그는 트위터 페이지도 탈퇴했다. 박씨의 짧은 메시지는 누군가 삶을 다시 영위하게 만들었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장은하 부대표(맨 왼쪽)와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strong>허유진 기자
멘탈헬스코리아의 장은하 부대표(맨 왼쪽)와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허유진 기자

시민단체 멘탈헬스코리아도 ‘아픔 경험 전문가’인 피어스페셜리스트를 통해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자살이나 자해를 시도한 경험이 있는 피어스페셜리스트는 본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또래들의 아픔에 접근한다.

피어스페셜리스트 박하선(17·여)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우울증에 관한 논의는 결국 어둡게 흘러간다”며 “서로 우울을 전파할 뿐 실질적인 개선이나 치료 관련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우울증과 자해 관련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는 트위터 커뮤니티 ‘우울계’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피어스페셜리스트 이신희(18·여)씨는 “우울계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어렵다”며 “자해를 하는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자해 후 소독이나 치료 방법에 대해서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씨는 SNS에 자해 후 응급 처치 키트에 대한 영상을 올렸고, 조회수는 3000회를 기록했다. 신뢰성 있는 정보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것이다.

멘탈헬스코리아 장은하 부대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살유해정보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공신력있는 정보는 찾기 어렵다”며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건강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이 개선돼야 효과적인 정책 수립과 실천이 가능해진다. 한국은 여전히 우울이나 불안 등에 대해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에 5% 이상 투자할 것을 권장하지만, 한국의 경우 2020년 기준 1.6%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가 생긴 지도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안 교수는 “국민 정신건강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정책이나 예산도 지속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 투입 대비 효과는 미미하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인식에 있다. 자살 문제의 복합성을 깊이 이해하고 접근하는 순간 비로소 효과는 드러날 것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인터넷신문위원회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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