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빅피쉬(2003)

출처=다음영화
출처=다음영화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윌리엄은 아버지 에드워드와 불편한 사이다. 아버지는 윌리엄이 어렸을 때부터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젊었던 시절에 대한 비현실적인 영웅담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자신의 결혼반지를 집어삼킨 커다란 물고기를 하필 윌이 태어나던 날 잡게 된 이야기부터, 마을에 살던 거인 이야기, 유령마을에서 만난 신발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드넓은 수선화밭을 만들어 청혼한 이야기,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이야기 등 한 사람의 삶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이다. 윌은 점차 자라며 그런 아버지를 허풍쟁이라 생각하고 지겨워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윌의 결혼식 날, 윌은 가득 모인 사람들 앞에서 ‘왕년에 내가~’ 이야기를 또다시 자랑스레 펼치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그만 늘어놓으라며 화를 낸다. 아버지의 삶을 ‘거짓’이라 칭하며 총체적으로 부정해 버린 결혼식 이후, 수년간 윌은 어머니와만 소통하며 아버지와 점점 멀어진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은 윌은 집으로 돌아가 사실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었던 그의 이야기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윌리엄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들을 찾아가며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따라 추적한다. 관객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에드워드의 삶에 대한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집 안 구석에서 찾아낸 증거를 시작으로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려는 윌리엄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교차된다. 아버지의 황당한 허풍의 진짜 이야기를 찾으려던 윌리엄은 여행의 과정에서 진실보다 중요한 아버지의 진심을 마주하고, 아버지의 임종 직전 비로소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숭고히 받아들이며 손을 잡고 스스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장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다.

팀 버튼의 작품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서사적 골자인 부자간의 갈등과 해소, 그리고 이로 대표되는 이해와 포용, 더불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전 인류애적 사랑이 또다시 팀 버튼다운 방식으로 표현되어 한 편의 철학적인 동화와도 같은 사랑스러운 영화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우리가 팀 버튼의 판타지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상상적 문학(imaginative literature)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말하고 듣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을 함의한다. 즉, 이야기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봐도 무방하다. 인류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본질적으로 그럴 수 없는 존재이다. 탄생 이래로 인간들은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둘러싼 사회를 이해하며 세상을 확장해 왔다. 그러나 동일한 관점에서 진심이 부재한 그저 흘러온 과거의 조각으로서의 사실은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결여된다. 가치 있는 이야기는 어떤 단순한 사실의 수동적 나열이 아닌, 적극성과 독창성으로 선택된 요소들이 관점에 따라 가공되고 공유됨으로써 생성되고 보존되며 심지어는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허구임에도 영화와 문학이 살아있는 이유이며, 쓰디쓴 인생을 조금이나마 달게 즐길 수 있도록 인간이 본능적으로 택한 방법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비유가 가득한 이야기 속 무엇이 원관념이며 무엇이 보조관념일까. 그것은 윌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변하지 않는 진실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진다. 산드라가 좋아하는 노란 수선화 몇 송이를 선물했다는 현실은 산드라를 사랑하는 에드워드의 마음을 대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수만 송이의 수선화를 심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에드워드의 마음은 단언된다. 아들에게 수족관이 아닌 커다란 강과 같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로서의 에드워드는 한 마을의 멋진 청년이라는 개인적 역사를 더 큰 세상에 대입하여 비로소 가장 에드워드다운 용감한 영웅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끝낼 수 없었던, 마녀의 눈을 통해 확인한 그의 마지막은 아들 윌의 입으로 가장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사랑과 용기와 도전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실을 표현하기에 부족한 사실이 각색을 통한 풍요로운 이야기로 충족된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 한 사람의 삶은 이렇게 이야기로 남아 영원한 세상을 헤엄친다.

현실로서의 삶은 때때로 초라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삶은 또한 우리의 창조적 과정이다. 그리고 이 창조 속에서 진실은 낭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타고난 이야기꾼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의 지난 삶에 꿈을 보탤 수 있다면,

인생은 매 순간 영화이며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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