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SPC 그룹의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SPC 불매운동이 일었다.

본지가 13일부터 8일간 재학생 1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92명(82.1%)이었다. 그러나 112명 중 96명(85.7%)이 ‘사망 사고 이후 공장의 안전 문제가 개선된 상황을 아는지’ 묻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김서영(호크마대·23)씨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개선됐는지는 언론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연재(철학∙23)씨도 “구체적으로 안전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고 이후 5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무엇이 바뀌었을까.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15일 오후8시 평택 SPL 공장 앞에서 화섬식품노동조합(화섬노조) 지윤선 회계감사를 만났다. 화섬노조는 SPL공장의 두 개 노동조합(노조) 중 교섭권을 갖지 못한 소수 노조다. 어둑한 밤, 하루 종일 고된 근무를 마치고 공장에서 나오는 그의 걸음이 무거웠다.

 

오후8시, 근무를 마친 지윤선씨가 퇴근길 스피드게이트를 지나고 있다. 김아름빛 기자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멈추지 않는 공장의 시계

지씨는 SPL 1공장 샌드 라인에서 일한다. 케이크 시트가 올려진 컨베이어 벨트가 쉬지 않고 돌아가면 지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생크림을 바른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케이크가 하루 약 1만2000개에서 1만5000개. 지씨에 의하면 이곳 SPL 평택 1, 2공장에서는 전국 파리바게뜨에서 판매되는 빵과 케이크의 80%를 생산한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 주간조로 근무한 지씨는 오전8시에서 오후8시까지 12시간을 일했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오후9시. 다음날 오전6시에 일어나 출근하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그는 “몸을 써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늘 몸이 버겁고 힘들다”고 말했다.

지씨가 퇴근한 밤, 출근한 야간조 노동자들은 잠과의 전투를 시작한다. SPL 공장 노동자들은 오전8시부터 오후8시까지 근무하는 주간조, 오후8시부터 다음날 오전8시까지 근무하는 야간조가 2교대로 근무한다.

야간 근무 중 오전5시부터 오전8시까지는 노동자에게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안전사고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지씨는 이 시간이 “정신이 몽롱해지는 시간”이라며 “힘들다 싶어서 시계를 보면 항상 그 때”라고 말했다. SPL 공장 노동자 사망 사고, 성남시 SPC 계열사 샤니 빵 공장 손가락 절단 사고, 대구 농심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뼈가 부러졌던 사고도 이 시간대에 일어났다. 매장을 열기 전 이른 아침부터 빵을 만드는 제빵 기사와 빵을 배달하는 화물차 운전기사 모두에게도 힘든 시간이다. 노동자는 이 시간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한다.

사망 사고 이후, SPL 측은 15분이었던 야간조 휴식 시간을 25분으로 늘렸다. 하지만 늘어난 휴식 시간은 일주일 만에 다시 줄었다. “25분 쉬면 눈이라도 잠깐 붙일 수 있는데 그 잠깐이 엄청난 차이에요. 근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15분으로 줄어들더라고요.”

지씨가 속한 화섬노조는 3교대 근무로의 전환과 휴게시간 증가 등 근무 환경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SPL측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SPL은 지씨가 속한 화섬노조가 아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식품산업노동조합연맹(한국노총) SPL노조를 대표 노조로 선정해 대표노조와만 교섭한다. 복수노조를 통해 회사에 적대적인 노조를 탄압하는 많은 기업에서 일어나는 행태다. SPL측에 우호적인 한국노총 측은 근무 형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 지씨는 “대표 노조가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회사는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라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변화는 겉보기일 뿐, 본질은 그대로

SPC는 안전경영위원회를 조직하고 안전 덮개, 자동 잠금 장치 인터록(interlock)을 설치했다.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3년간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발표했다. 최근에는 고용노동부의 개선요구사항에 대해 모든 조치를 완료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씨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바뀌었지만, 중요한 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노동자들은 2인 1조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은 샌드위치 소스를 만들고 한 명은 소스를 운반했기 때문에 사실상 서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노동환경연구소 일과건강은 ‘SPC 파리바게뜨 평택공장 SPL 산재사망사고 중간보고서’에서 현장에서 2명이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씨는 “사고 이후 혼자 근무하던 노동자가 2인 1조로 일하는 경우가 늘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나,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지씨는 “회사 측에서 어느 부서에 2인 1조가 필요한지, 현재 얼마나 2인 1조가 이뤄지고 있는지 구체적인 자료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시스템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망사고 이후 노동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회사의 태도는 사고 전과 다르지 않다. 지씨는 “정말 쇄신하겠다고 하면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회사는 ‘노동부에서 말하는 것 다 고쳤다’며 기사화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것만 바꾼다”고 말했다.

 

또다시 반복될 다음을 막으려면

“전국에서 가장 일을 안 하는 게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이다, 저희끼리 이런 말을 해요.” 지씨가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움직이는 기계에 사람이 접촉해 위해를 입을 수 있는 경우 덮개를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SPL 평택공장 사망사고가 일어난 교반기는 소스를 섞는 기계로, 이 기준에 따르면 안전덮개가 설치됐어야 했다. 고용노동부도 근로 감독을 통해 기준이 지켜지는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SPL 평택공장은 2020년 정부의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선정됐다. 그 혜택으로 사고가 발생하기 전 3년 동안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의 정기근로감독을 면제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존재하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주52시간제를 유연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며 노동자들의 우려는 더 커졌다. 파리바게뜨는 추석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늘어난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말은 1년 중 빵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다. 지씨는 “근로시간이 유연화되면 생산량이 많아지는 9월 이후에는 노동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52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69시간 근무는 상상이 안 되죠. 근무시간은 곧 노동자의 건강이고 노동자의 목숨인데, 이게 누군가의 자율로 결정될 일인가 싶어요.”

지씨는 “안전 문제 개선이 안전덮개, 자동 잠금 장치 설치에서 끝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기업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단시간에 만들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이루어질 거라 믿어요.”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2012년 1864명, 2022년에는 2223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변한 것은 없었다. 또 다른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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