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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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은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다. 그러나 이를 다루는 자연대가 학생들의 관심과 연구 지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직이 어렵다는 학생들의 인식과 학령인구의 감소로 자연대가 축소되는 추세다. 특히 지방대학은 지원율이 매우 낮아 학과의 통폐합도 빈번하다. 현재 서울 지역 대학의 자연대 운영 체제는 유지되고 있지만 학생 수가 부족해 위기를 맞는 건 시간문제다. 양인상 자연과학대학장은 “5년 뒤 학령인구가 줄면 서울권 대학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자연대가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본교 정시통합선발생(정시통합생)들의 자연대 진학률도 낮다. 호크마교양대학에 자연대 인원을 일부 할당했지만 첫 진입이 이뤄진 2019년 이후로 자연대로 진학하는 학생은 꾸준히 할당 인원보다 적었다. 2019학년도에는 88명이 진입해 정시통합생이 가장 많이 선택한 단대로 꼽혔지만 2023학년도에는 25명만이 선택했다. 이공계열 학생들이 주로 응용과학 분야로 진학했기 때문이다. 양 학장은 “자연대학은 축소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비 또한 응용과학에 치중돼 있다. 남원우 교수(화학·나노과학전공)는 “특히 올해 같은 경우 연구비가 적어 힘들었다”며 “기초과학은 연구 결과가 단기간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학장 또한 “기초과학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이 왜 필요할까

이준엽 교수(수학과)는 “기초과학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종류의 시도를 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초과학자들의 연구는 상품개발의 목적이나 당장의 필요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새롭고 다양한 연구를 하고 이들 중 일부가 산업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것이다. 결국 기초과학이 공학보다 한 단계 앞서 혁신의 토대를 마련한다. 따라서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역량이 공학 및 산업 발전을 위한 경쟁력이자 생존전략이다.

양 교수 또한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과학자 패러데이는 가난하고 기초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인쇄소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백과사전을 접했다. 백과사전을 보며 혼자 전선에 전류를 흘리고 코일을 감아보다가 발견한 것이 지금의 발전기 원리인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이다. 패러데이가 혼자 연구할 때 누구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전력 생산은 그의 연구 없이는 불가능했다.

과학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10년 뒤 어떤 기술이 유망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초과학은 발전하는 기술의 근간이 돼 이를 토대로 다양한 분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교수는 “당장 필요한 기술보다도 기초를 폭넓게 공부하는 것이 기술 변화의 유연성을 확보하기에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반도체 공정 과정 자체를 공부한다면 2~3년 내에 전공 분야가 새로운 기술로 대체될 수 있지만 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물리학을 공부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응용할 수 있다. 양 교수 또한 “공학이 5년 안에 우리 생활을 이롭게 한다면 기초과학은 10년, 30년, 그리고 100년 뒤 우리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과학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한다는 특징도 있다. 양 교수는 “우주가 지금 팽창하고 있는지 수축하고 있는지가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기초과학자들은 우주를 연구한다”며 “우리가 우주와 우리가 사는 행성에 대해 궁금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을 몇 가지 법칙만으로 완벽히 설명하는 것이 기초과학의 매력이죠.”

 

기초과학을 일으키기 위해

기초과학의 부흥을 위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학생들이 기초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해 미래의 기초과학 연구자를 확보해야 한다. 화학나노과학을 전공하는 한가을(화학생명·22)씨는 “고등학교에서 비교과 활동으로 과학 주제 탐구를 다수 진행하며 실험에 대한 흥미가 높아져 자연대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곽서진(화학생명·22)씨 또한 “내가 흥미를 가진 분야는 산업에의 적용보다 현상 자체의 원리라고 생각해 자연과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기초과학 분야의 롤모델이 될 연구자들을 많이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기초과학을 이끌어갈 연구자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교 자연대도 중고등학생들이 기초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에는 노벨상 발표 이후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들이 설명회를 열어 중고등학생들을 초청했다. 양 교수는 “학생들이 자연과학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본교 자연대도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자연대에 진학하면 취업이 어렵다는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곽씨는 “기초 학문이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해 오랜 기간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학생들이) 자연대보다 공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청년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전환기적 시대를 겪으며 불안이 커져 당장의 성과와 취업에 대한 압박을 크게 느낀다”며 “당장의 유망 산업을 쫓기보다 오랫동안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기초과학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에게 지속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현재는 단기간에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응용과학에 연구비가 집중돼 있다. 남 교수는 “10월 노벨상이 발표되면 기초과학의 중요성과 지원에 대해 모두가 주목하지만 잠깐뿐”이라며 “평소에도 학문 간의 균형을 유지하며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소규모 연구에 대한 지원이 아쉬운 실정이다. 대형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생소하게 느껴지는 작은 분야의 연구도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 교수는 “풀뿌리 과학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당 분야의 연구력은 도태돼 되살릴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한씨는 “사회 구조의 영향으로 연구자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보다 인기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현상이 줄어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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