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인문학의 위기, 낮은 취업률, 돈이 안 되는 학문...인문학을 따라다니는 세간의 꼬리표들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 정말 인문학은 필요 없는 학문일까. 본지는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만나 인문학이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이고 이들이 인문학을 택한 이유는 뭔지 들어봤다. 

 

▲ 김민조(국문·20)

 

전공 안에서도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국문학 안에서도 비평이 재밌다. 특히 작가론 연구가 흥미롭다. 원래 어떤 콘텐츠를 접하든지 간에 창작자에 꽂히면 그 사람의 작품을 다 모아서 보고 듣는 편이다. 작가론도 한 작가를 딱 정해놓고 그의 작품 세계를 쫙 훑는 거라서 굉장히 흥미롭다. 한 작가만을 위한 성을 만드는 듯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공 수업은

이선영 교수님의 <창작의이론과실기> 시 분반 수업이다. 시 창작을 하면서 스스로를 가장 많이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었다. 유난히 고되고 벅찼던 학기였음에도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고민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 합평을 반말로 진행하신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창작에는 정답이 없다면서 권위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소통하자는 의도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업에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솔직한 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방황했던 한 시절을 지나가게 만든 대학 생활의 전환점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학 작품과 이유는

최진영 작가의 첫 장편 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좋아한다. 평소에 ‘내 안에 덜 자란 아이가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자주 한다. 이 소설은 덜 자란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다 커버린 어른들을 만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최 작가의 소설은 망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아이가 사랑하는 존재를 찾아서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히는 이야기가 많다. 최악의 세상에서 포기하지만은 않고 어떻게든 처절하게 나아가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감동을 준다. 최 작가의 인물은 내가 가지지 못한 끈기를 갖고 있다.

 

국문학을 배운다는 게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국문학은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원래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을 잘 못 보는 편인데, 글이나 이야기에서만큼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국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남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간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만큼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일처럼 느껴진다.

 

흘러가는 모든 시간 속에서 배움을 찾아 근본적인 사회 발전을 주도하는 사학을 학문하는 금소담씨. 박성빈 사진기자
흘러가는 모든 시간 속에서 배움을 찾아 근본적인 사회 발전을 주도하는 사학을 학문하는 금소담씨. 박성빈 사진기자

▲ 금소담(사학·21) 

 

사학은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가

사학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역사를 비롯한 과거와 현재를 모두 배우는 학문이다. 보통 사학과에 대한 편견 중의 하나가 ‘옛날 것만 배운다’, ‘다 지나간 일을 배워서 재미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순간도 계속 흘러가고 있고 이 자체가 역사가 된다. 한참 오래된 것만 다루지 않고도 흘러가는 모든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전공 수업은

2학년 2학기에 <사료로보는서양사>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사실 역사는 다른 나라나 고대의 것들을 연구하다 보니 언어의 장벽이 매우 크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사를 연구하면 프랑스어를 잘해야 하고 한국사를 하면 한자를 잘해야 한다. 이 수업에서는 원문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해 놓은 영문본을 보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사료 강독 수업을 했었다. 가장 사학과다운 수업이라고 생각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리가 왜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지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일종의 만들어진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정말 위기인 게 아니라, 위기라고 말하기 때문에 위기가 된 것 같다. 인문학이 단기적으로 봤을 때 당장 경제를 성장시키지 못하거나 해결 방안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민의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그렇게 사회를 더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민족이나 국가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 지구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양의역사와문화> 시간에 들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교수님께서 역사의 효용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역사가 현실 비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게 가장 인상 깊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상황을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게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배우면 사회를 더 넓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고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본교 철학과에 재학 중인 정영진씨는 당연한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철학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본교 철학과에 재학 중인 정영진씨는 당연한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철학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 정영진(철학·21) 

 

철학을 공부하기로 택한 이유는

고등학교 때 엄청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윤리와 사상 수업을 들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이 인상 깊었다. ‘네가 했던 모든 행동은 그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이었다. 너는 너의 역량 안에서 항상 최선을 선택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너무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말아라’는 철학이다. 이 말에 크게 감동했다. 이렇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철학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처음으로 공부해 보고 싶은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철학과를 선택했다.

 

철학의 매력은

교수님들과 자유롭게 토론 형식으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재밌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어떤 답을 냈을 때 그게 정답지에 적혀 있는 내용이 아니면 무시당하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무시당했던 엉뚱한 질문들조차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 질문을 당당하게 던질 수 있는 학문이라 좋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오히려 지금이 인문학이 가장 필요한 시대라는 걸 역설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우리가 이끌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인문학인 것 같다. 윤리적인 수준이 과학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문학을 버리면 안 된다. 오히려 위기에서 구출해야 하며 인문학을 더 필요로 해야 한다.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철학은 ‘왜'에서부터 시작하는 학문이다. 알고 싶다는 마음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우리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 일을 낯설게 느낀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현대의 윤리적 기준, 그리고 자신도 몰랐던 편견이나 오해에 의문을 표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당연한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을 다시 당연하게 만들어주는 게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해방’이라는 이념으로 닿아있는 이화와 기독교의 가치에 대해 공감한 정찬주씨.  이자빈 사진기자
‘해방’이라는 이념으로 닿아있는 이화와 기독교의 가치에 대해 공감한 정찬주씨. 이자빈 사진기자

▲ 정찬주(기독·20) 

 

기독교학을 공부하기로 택한 이유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갔다. 20년가량 교회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그 안에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까 의문점도 생기고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많았다. 교회 내에서는 믿음이라는 틀로 묶어서 그냥 이해시키는 것들도 많았다. 이것들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독교학의 매력은 

우리 학교가 ‘해방이화'라고 칭해지는 것처럼 ‘해방’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화에 와서 기독교학을 배우면서 해방감을 많이 느꼈다. 내가 궁금해하던 질문들의 답을 찾아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화에서 배운 신학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대표적으로는 기독교 역사 또는 현대 교회 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리의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해방적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은 이화의 가치와도 잘 맞닿아 있을뿐더러 현대 기독교에서도 꼭 필요한 분야다.

 

인상 깊은 성서 속의 인물이 있는지 

바울을 무척 좋아한다. 작년에 <바울연구>라는 수업을 통해서 바울의 생애와 주장에 대해서 자세하게 배웠다. 그 신학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많아서 좋다. 무엇보다도 바울이 본질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다. 바울의 삶의 이유와 가르침의 바탕이 확고한 본질 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존경스럽고 멋있다.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이 시대는 인문학을 잃어버린 시대인 것 같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마치 사유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특정 사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하고, 또 끈질기게 질문하고 그 근원을 찾고 토론하는 과정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고 비판적인 사고도 하게 된다. 그 과정이 무척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으로 시대를 어떻게 회복시키면 좋을지는 계속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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