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에 개봉한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1990년대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향한 엄마 ‘소영’ 역을 연기한 최승윤 배우. 이자빈 사진기자
4월19일에 개봉한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1990년대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향한 엄마 ‘소영’ 역을 연기한 최승윤 배우. 이자빈 사진기자

안무가에서 감독으로, 그리고 배우로.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그려나가는 최승윤(무용∙11년졸)씨가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2023)를 통해 장편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1990년 캐나다로 떠난 엄마와 아들이 서로 의지하며 스스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 그는 강인한 여성이자 따뜻한 어머니 ‘소영’ 역으로 관객들을 마주했다. 보슬비가 내리던 날 최승윤씨를 만났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런 날씨도 좋다”며 맑게 웃어 보이는 그는 햇살처럼 따스했다.

 

우연에서 인연이 된 소영과의 만남

첫 만남이 한국에서 시작돼서일까.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캐나다 영화임에도 한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최씨는 2019년 영화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2019)의 감독으로 찾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캐스팅 디렉터를 만났고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장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걱정이 많았다. 마지막 오디션 전날까지도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였다. “나는 선택을 당하거나 말거나 둘 중 하나인데 선택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니 거기까지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임한 오디션은 그를 소영 역으로 이끌었다.

소영은 여성이자 어머니이며 이민자다. 그는 소영을 표현하기 위해 70~80년대 한국의 음악을 찾아 듣고 영상자료원에 올라온 80년대 한국 영화들을 보면서 당시 한국 여성의 모습을 관찰했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지낸 한국의 80년대를 공부하며 소영의 20대를 떠올렸다.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캐나다 촬영 비하인드 신. 최승윤씨가 밝게 웃고 있다. 제공=최승윤씨, 사진=Katrin Braga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캐나다 촬영 비하인드 신. 최승윤씨가 밝게 웃고 있다. 제공=최승윤씨, 사진=Katrin Braga

어머니로서의 소영을 표현하는 데는 더욱 신중했다. 그는 소영과 같은 시대를 살아 온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영을 고민했다. 아들 역을 맡은 두 배우와의 조화도 매력적이었다. 그는 “극 중 아들들과 실제로 영화도 보고 밥도 먹으면서 키운 애정을 연기에 담았다”고 말했다. 

이민자로서의 소영은 강했다. 최씨는 억척스러운 이민자 소영의 모습을 “고아인 데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그가 터득한 방어기제와 씩씩한 모습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본을 처음 읽을 때 이민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한국이든 캐나다든 결국 소영의 선택과 행동 양식은 비슷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강인하고 따뜻한 소영은 최씨를 통해 완성됐다. “소영이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건 불행 속에서도 스스로 내린 선택과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에요.”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강원도 촬영본. 이 곳에서 소영과 아들 동현은 자신을 찾게 된다. 제공=최승윤씨, 사진=손영배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강원도 촬영본. 이 곳에서 소영과 아들 동현은 자신을 찾게 된다. 제공=최승윤씨, 사진=손영배

그의 노력은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밴쿠버 크리틱스에서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며 더욱 빛을 발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을 받는다는 기쁨도 컸지만 당시에는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이내 부담을 덜어내고 상을 받아들였다.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주어진 역할을 잘 해냈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상을 받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다음, 그 다음 도전을 준비해 나갔다. 

 

마음이 향하는 대로

“저는 이화여대 와서 참 좋았어요.” 학교생활을 추억하는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학과에서 1년에 두 번씩 하는 창작 발표회는 그에게 좋은 자극제였다. “무용을 새롭게 실험하고 창작하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어요.” 본교에서의 4년은 그가 창작자라는 새로운 길에 발을 딛는 계기가 됐다. 

학부 재학 중 마지막 학기에 국립발레단 오디션을 보면서 그는 더 이상 발레리나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니 발레리나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아버지에게 더 이상 발레리나가 되고 싶지 않고 딱 1년만 나를 위해 놀고 싶다고 말했다. 예술가의 도시 베를린으로 떠난 그는 생존을 배웠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말했고 생활용어를 배워갔다. 그 경험은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소영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 베를린에서 전투적으로 살아남았던 최씨의 모습은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굳센 이민자 소영에도 드러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진경환 감독의 ‘두 여자’(2016)로 연기를 시작했고 시리즈로  이어지며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해졌다. 지금까지 무용을 하며 감정을 담은 몸의 움직임을 배운 것은 배우 활동에 큰 밑거름이 됐다. 서울시에서 2년간 작품 지원을 받아 2018년에는 무용 공연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를, 2019년에는 동명의 다큐 픽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무용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고 더 많은 사람과 무용을 공유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댄스필름은 내고 싶지 않았다. 무용은 직접 보는 것이지 스크린을 통해 보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잘 마쳤지만 그는 아직 더 많은 연기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제 막 배우로서의 여정을 시작한 만큼 커리어를 더 쌓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연기에 있어 타인과 공유할 수 있을 만한 지식이 내면에 쌓일 만큼 경험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없다”고 답했다. 

“목표를 설정해서 가기보다는 인생이 저에게 주는 기회를 잘 선택할 수 있는 현명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용기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자유로운 발걸음은 다음 선택을 향해 가고 있다.

 

◆댄스필름: 무용 영화, 무용을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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