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앞에서 미소짓고 있는 정미조씨. 김아름빛 기자

70년대를 사로잡았던 가수이자 서양화가 정미조(서양화⋅72졸)씨가 51년 만에 모교로 돌아왔다. 5월17일부터 10월31일까지 본교 박물관에서 개최되는 ‘이화, 1970, 정미조’ 전시를 통해서다.

가수로서의 삶과 화가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는 그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수많은 도전을 반복해 온 그의 삶에서 항상 빠지지 않았던 건  ‘꾸준한 노력’이었다.

1972년 노래 ‘개여울’로 데뷔해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정씨는 모든 커리어를 뒤로 하고 파리로 떠났다. 원래 전공하던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화가로 활동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미대 교수로서 제자를 양성했다. 그리고 그는 22년 간의 교수 생활을 마친 다음 해 2016년 가수로 복귀했다. 60대 후반에 시작한 또 다른 도전이었다.

삶의 여정 동안 도전을 멈추지 않은 정미조씨를 서초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 작품이 가득한 작업실에서 그의 여전한 열정이 느껴졌다.

 

시대를 풍미한 가수에서 미대 교수가 되기까지

정씨는 학창 시절 장학금을 받고  4년 내내 과 대표를 했던  학생이었다. 강의실 맨 앞에 앉아 교수님 말씀을 모두 받아적으며 공부했다. 다른 학생들이 정씨의 노트를 빌리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 화가를 꿈꾸며 미술을 공부하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가수가 됐다. 학교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다 가수 패티김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데뷔하자마자 화제에 오르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유명한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3년 혹은 5년 동안 노래를 실컷 부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수 생활 5년 차에 다시 미술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가수로 활동하는 7년간 그는 즐겁게 노래했고 주어진 가수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음악은 달콤한 외도였다”고 말했다. 가장 원했던 꿈은 가수가 아니었기에 미련 없이 음악의 길에서 돌아 나왔다. 대신 그는 여전히 마음속에 있던 화가의 꿈을 찾아 유학길에 올랐다. “할 만큼 했기 때문에 다시 원래의 길(미술)로 돌아갔어요.” 

정씨에게도 좌절의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는 유학을 준비하며 “무대에서 멋지게 노래를 부르던 내가 왜 도서관에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언어와 학비 등의 어려움으로 유학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그리움과 외로움도 한몫했다. 하지만 성장하고 싶었고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에 모두 이겨냈다. 화가와 미대 교수를 거치며 이룬 것들을 내려놓고 70대에 다시 가수로 돌아왔을 때도 그의 의지는 같았다. 37년 만에 노래하는 거라 걱정됐지만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매 순간 삶에 충실했기에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작업실 한켠에 쌓여있는 아크릴 물감과 붓들. 김아름빛 기자

 

일흔이 된 후에도 지켜낸 성실함

학부생 때부터 지금까지 정씨의 인생은 노력의 연속이었다. 가수로 성공을 거두고 화가라는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다시 가수로 돌아오기까지 모든 여정에 그의 땀이 담겨 있다.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흥행을 하며 성공했지만 그는 노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노래를 연습하는 게 얼마나 지겹겠어요. 그래도 저는 지겹다는 생각 안 해요. 그는 “연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하나의 호흡이고 인생을 실어서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말했다. 노력했던 경험들이 쌓이며 노래에서 깊은 감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수원대 미대 교수로 지내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컴퓨터를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오후8시부터 2시간 동안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학원에서 배운 영상 편집 기술을 바탕으로 강의를 촬영해 직접 편집했다. 학생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노력만큼 중요한 건 없어요.”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한다. 눈이 나빠져 책을 읽기 힘들어지자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작업실 탁자 뒤에는 책과 도록이 한 벽면을 채울 만큼 가득 꽂혀 있었다. 새 앨범에서는 재즈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의 비결은 성실함이다. 그는 “(노력은) 계속 연속인 거예요. 나이 들었다고 편안하게 사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저한테는 공부하고 배우는 거였어요.”

그는 노래 부를 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차이가 있다면 표현이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과 감성이 노래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는 “지금 부르는 노래에는 지나온 인생이 담겨 있다”며 “멜로디와 소리가 좋아서 부르던 젊은 시절보다 노랫말 속에 담긴 내용을 음미하고 느낄 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발매한 앨범 수록곡인 ‘귀로’에는 ‘담벼락에 기대 울던 작은 아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정씨는 이 부분을 부르다가 자신의 어릴 때 생각이 떠올라 연습을 중단했을 정도였다.

“좋은 음악 시스템과 좋은 곡과 반주에 맞춰서 노래한다는 것, 아직도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에요.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할 것 같아요.” 그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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