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가요계의 신데렐라, 수백 명의 제자 거느린 화가로 변신하다
70년대 가요계의 신데렐라, 수백 명의 제자 거느린 화가로 변신하다
  • 정보미 기자
  • 승인 200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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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대중가요 ‘개여울’ 부른 정미조(서양화·72년 졸)씨.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통기타의 잔잔한 선율에 김소월의 시가 가사로 붙여진 노래, 영화 ‘모던보이’에서 배우 김혜수가 불러 회자되기도 했던 ‘개여울’은 1970년대 추억의 대중가요다.
이 노래를 불러 당대 톱 가수가 됐던 정미조(서양화·72년 졸)씨는 현재 마이크 대신 붓을 들고 있다. 12일(목) 해질 무렵 그의 방배동 화실에서 먹과 붓으로 작업 중이던 그를 만나봤다.
“정미조 모르면 이대생 아니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니까요” 그는 1968년 기숙사 신입생 환영회 때 진관 209호(당시 기숙사) 대표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타고난 끼 때문인지 그는 무대 위에선 프로 가수 못지않았다. 연습 없이 노래해도 사람들은 ‘앙코르’를 외쳤다. 교내 부활절 행사로 ‘패티 김’씨가 학교를 찾았을 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정씨를 자신의 TV쇼에 출연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졸업 후 그는 꿈꾸던 가수가 됐다. 그에게 7년 반의 가수 생활은 ‘달콤한 외도’였다. “멋진 드레스 입고 큰 무대에서 노래해보고 싶은 꿈 이뤘어요”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원하던 것은 ‘그림’이었다. 3년만 하려던 가수생활은 5년이 되고, 7년 반이 됐다. 그는 “원 없이 노래 해봤으니 이젠 원 없이 그림 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유학 결심을 했다. ‘실컷’ 노래 부른 그는 ‘달콤한 외도’를 마치고 미술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났다.
학부 시절 지각·결석 거의 없이 미대 전체 1∼2등을 다툴 정도로 모범생이었던 정 교수는 파리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6개월 만에 집에 와서는 내내 잠만 잤어요” 700쪽에 달하는 박사논문 심사 받을 때의 긴장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13년간의 유학을 마친 그는 1993년부터 수원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 교수는 부모의 마음으로 정성을 쏟으면 학생들의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열흘간 해외에 나갔을 때 제자들 보여주려고 작품사진을 찍다보니 3천장이나 되는 거 있죠. 나중엔 검지 손가락이 아파 중지 손가락으로 찍었어요”그런 열정 때문에 젊어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미소를 보였다.
화실의 작품들은 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역동적이었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욕심은 스물세 번째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 모티브는 ‘여성·어머니’다. 이달 말까지 카이스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도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가요계의 신데렐라’가 ‘수백 명의 제자를 거느린 화가’가 되기까지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무용·음악·그림에 능통하던 정 교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음악이 그림 속에서 빛을 발하고 무용의 행위예술까지 가미된 정 교수만의 작품은 새로운 예술 장르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정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