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제3자 변제안으로 합의한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가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제3자 변제안으로 합의한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가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이 지난 주말 마무리됐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추진된 이번 국빈 방미는 우리 정상으로서는 12년 만에,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 취임 후로는 두 번째로 이뤄졌다. 국빈 방미 중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외교적 결과를 낼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3월16일 진행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도쿄 정상회담이 실리를 얻지 못한 ‘굴욕외교’였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윤 정부의 외교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한일 정상회담 결과가 발표된 직후부터 ‘제3자 변제안’의 합의 내용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고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다.

 

왜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는 ‘굴욕외교’라 불리는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수출규제 해제,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 셔틀 외교 재개 등 경제적 긴장감 완화와 관계 개선에 집중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3월19일 브리핑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한국, 일본, 국제사회에서 공통되게 나온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회담의 결과가 일방적으로 일본에 유리하다는 평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2019년부터 적용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는 풀었지만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관리 우대국)’로 복원하는 것은 향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응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종료를 통보했던 한-일 군사비밀정보 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은 완전히 정상화됐다. 이를 통해 법적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있던 한일 정보 공유 채널이 회복됐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에 관한 것이었다. 한일 정상회담 열흘 전인 3월6일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제3자 변제안’을 합의했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점화했다. 제3자 변제안이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도록 한 안이다. 재단이 지급하는 배상금은 일본 전범 기업이 아닌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입은 한국 기업의 기금으로 구성된다. 사실상 한국 기업의 자본으로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면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회담 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구상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빚을 갚은 사람이 다른 연대 채무자나 주된 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피해자들은 2018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접전 끝에 ‘배상 책임이 일본 기업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구상권 행사 포기를 선언한 윤 대통령의 발표는 앞선 대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같은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전면 부인하며 일각에서는 ‘외교 완패’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일외교 비판, 대학 구성원이 앞장서다

윤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면서 대학가 곳곳 이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등장했다. 본교 학생문화관 1층 로비 게시판에도 붉은 글씨로 ‘정부의 굴욕외교 규탄한다’고 적힌 대자보가 붙었다.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피해자들의 존엄을 짓밟고 과거를 등한시하는 태도는 부조리의 반복”이라며 “강제동원 해법 감행 멈추라”고 요구했다. 대자보를 게시한 이화나비 장은아 지부장은 “학생들이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갖기 바라며 혈서를 연상케 하는 붉은 물감으로 작성했다”며 “학내에 강제동원 문제가 많이 알려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길 바랐다”고 전했다. 윤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서는 “한 나라의 정부가 자국민은 상처 속에 내버려 두고 전범 가해국을 안심시키는 모습이 대단히 굴욕적”이라고 비판했다.

대일외교에 문제의식을 갖고 움직인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3월14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에서 비판 성명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수도권과 지방 대학 교수, 연구자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고려대, 경북대, 경희대, 동아대, 성균관대, 전남대, 한성대, 한양대 등에서 시국선언이 진행됐고 4월11일에는 부산대 교수와 연구자 등 280명이 최대규모의 시국 성명을 발표했다.

4월13일 경북대 교수 및 연구자 181명의 시국선언에 동참한 채형복 민주평등사회를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공동의장(법학전문 대학원)은 “역사 왜곡, 제3자 변제를 통한 피해자 권리 구제는 외교 정책 수립 미숙의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윤 정부의 외교는 ‘give and take’가 아닌 ‘give. But not take’라고 표현했다. 일본에 외교적 이득을 안겨줬지만 돌려받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채 교수는 “강제동원 배상은 국제 인권과 인도주의적 문제”라며 “우리가 협상의 우위에 있을 수 있는 큰 카드를 던져버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4월19일 한성대 교수 및 직원 시국 성명에 참여한 김귀옥 교수(사회학과)는 “대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대통령이 부정하면서 강제동원의 불법성마저 부인한 셈이 됐다”며 법적 가치가 지켜지지 않는 외교 현실을 지적했다. 연구상의 불이익에 대한 우려는 없었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교수자가 이러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부끄럽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채 교수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회 정의의 실현이며 도의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역사가 바로 서지 않으면 한 나라의 미래를 모색하기 쉽지 않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며 관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적극 대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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