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비 네트워크가 본교에서 진행한 전국 대학생 동시다발 시국선언 제공=이담비씨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본교에서 진행한 전국 대학생 동시다발 시국선언. 제공=이담비씨

“어디까지 내어줄 생각이십니까?” 3월16일 해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용산구 공동행진에서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 백휘선씨가 외쳤다. 3월6일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기 열흘 전이었다. 정부 발표의 핵심은 한국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제3자 변제안과 한일 양국의 청년세대를 지원하는 미래청년기금이다. 한편 3월28일 일본의 문무과학성에서 검정 심사에 통과했다고 승인 발표한 9종 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 땅으로 서술됐고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희석하는 등 역사 왜곡이 심화됐다.

 

'걸림돌'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으로 치우려는 정부

제3자 변제안은 일본 전범기업이 아니라 행정안전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을 지원하고 배상하는 방안이다. 동아시아 국제 정치에 대해 연구하는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는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꺼낸 이유를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라고 봤다. 5월 열리는 G7 정상회의는 7개 선진국이 참여하는 국제정치, 경제 사안에 대한 토의다. 한국이 역사분쟁을 끊어내 한일관계 정상화라는 미국의 바람을 충족하고 최종적으로 G7 정상회의에 가려는 것이다.

남 교수는 제3자 변제안을 “65년 체제가 부활하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이 한일 간 역사분쟁을 해결해 줌으로써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을 달성하려 한 것이 65년 체제와 유사하다는 의미다. 65년 체제란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한일회담)과 그 결과로 구축된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 어업협정, 재일교포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 문화재 협정의 4개 협정과 기타 부속 합의서를 포괄해 통칭하는 한일 협정에 의해 성립된 한일관계다. 남 교수에 따르면 65년 체제는 한일 협정을 통한 ‘역사와 안보의 교환’이었다. 당시 협정을 통해 한국은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하는 대신 10년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8억 원 가치의 물품과 서비스를 지원받았다. 남 교수는 65년 체제에 대해 “경제 협력을 매개로 안보를 사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65년 체제에서 일본에 역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원조를 선택했듯, 현재 한국 정부는 제3자 변제안으로 일제강점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을 구실을 제공했다. 2018년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일본 기업이 피해자 1인당 1억 원의 위자료를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관련 정부 입장’에서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면서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효로 했다. 국가가 대신 일본 가해 기업에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구상권을 포기하고 한국이 배상함으로써 2018년 대법원판결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이다. 이를 지적한 남 교수는 “2018년 대법원판결을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말한 윤 대통령의 설명은 궤변”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미래청년기금의 문제점도 언급했다. 일본 전범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이유다. 미래청년기금은 양국의 경제 단체인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이 양국 청년세대를 지원하기 위해 조성한 기금이다. 남 교수는 “게이단렌에 일본 기업이 속해 있긴 하지만 기금은 그 기업의 이름으로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3자 변제안이든, 미래청년기금이든 한국인들을 강제로 동원한 일본 기업에 역사적 책임을 물을 방안은 아니다.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 역사 왜곡 심각해

제3자 변제안으로 꼬인 매듭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풀기 어려워져만 갔다. 검정 심사에 통과한 일본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9종은 2024년부터 활용될 예정이다. 강제동원을 징병에서 지원으로 바꿨고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한 지도를 삽입했다.

역사 교재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이신철 소장은 “이번에 발표된 교과서에서 일본 정부의 교과서 기술 개입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정부의 개입이 심해지자, 집필자가 알아서 정부가 원하는 바에 맞춰 기술한다”고 지적했다. ‘2021년 종군 위안부’,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를 지양하고 ‘위안부’와 ‘징용’으로 표기하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이번 역사 교과서에 반영된 것이다.

영토 왜곡 교육을 강화하는 경향도 드러난다. 일본은 이번 검정 교과서에서 독도와 울릉도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 일본 영토처럼 보이게 하고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서술했다. 일본 정부가 모든 사회 계열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도시환 책임연구위원은 “일본 정부가 2008년 이후 10년간 초중고교 전 과정에 걸쳐 영토 왜곡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도 위원은 “(현 정부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일본 스스로 천명한 ‘근린제국조항’ 취지에 반하는 것임을 지적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 검정 기준 중 하나인 근린제국조항에는 ‘인근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와 관련된 근ㆍ현대의 역사적 사실에는 국제이해와 국제협조의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는 이러한 외교적 대응과 더불어 ”한일 간 역사 인식 공유의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왜곡은 커지고 한국의 대응은 작아진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자세에 자신감을 얻은 일본의 요구가 더 커질 것을 우려했다. 도 위원은 “2015년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 당시의 데자뷔”라고 표현했다.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합의됐다는 전제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해졌다. 그는 “일본 정부가 제3자 변제안으로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며 독도에 대한 불법적인 영유권을 본격적으로 주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소장은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미흡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했다.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는 과대포장하고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에 과도하게 기대면서 현실 외교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잘못은 잘못대로 책임을 묻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조치는 그것대로 충실히 해 나가며 원칙대로 할 것”을 강조했다. 이어 이 소장은 “방사능 오염수 방류, 독도 부근의 군사 훈련 등 일본의 부당한 요구에 한국이 원칙적 대응을 포기한 모습을 보인다”며 한일 간 역사문제에서 한국의 목소리는 더 작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과거사 문제는 우리와 연결돼 있다. 정부가 과거 인권 침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통해 현재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여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서울지역대표 이담비씨는 “인권을 다루는 문제인 강제동원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한국 정부가 청년의 삶에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혼자가 아닌 우리가 돼 과거사 문제를 기억하고 행동할 때 우리의 목소리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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