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 대한 꿈을 위해 본교 졸업 이후 약 30년 만에 돌아와 박사 과정을 밟은 정희수 교수. 정 교수는 올해 58세의 나이로 본교 교수로 임용됐다.  권아영 사진기자
복지에 대한 꿈을 위해 본교 졸업 이후 약 30년 만에 돌아와 박사 과정을 밟은 정희수 교수. 정 교수는 올해 58세의 나이로 본교 초빙교수로 임용됐다. 권아영 사진기자

1844년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영국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돕는 조직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 협동조합의 탄생이자 사회적경제의 시작이었다. 과열되는 경쟁과 무분별한 이윤 추구로 많은 사회 문제가 대두되는 요즘, 사람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두고 사회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 국내 사회적경제학 1호 박사 정희수(사회적경제협동과정 박사·21년졸)씨다.

“가문의 영광이죠.” 정 교수는 1호 박사의 소감을 묻자 웃으며 답했다. 2017년 2학기 본교 일반대학원에 사회적경제협동과정이 신설됐다. 사회적경제학 박사 과정이 있는 학교는 본교가 처음이었기에 1호 박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영광인 동시에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름의 무게가 있거든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1호 박사시라면서요. 사회적경제가 뭡니까?’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부담감이 컸어요.”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사회적경제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어렵다. 사회적경제는 다원적이라 하나의 정의나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각 나라나 지역의 필요, 역사, 국가 정책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사회적경제를 국가와 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사회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모두 가진다. 정 교수는 사회적경제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비즈니스적인 방법”으로 정의한다. 사회복지가 대상자를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듯이 사회적경제는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와 시장이 실패한 시대라는 지금, 국가와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사회적경제의 출현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써 사회적경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이전보다 잘 살게 됐는데 왜 경제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경제의 이념인 ◆호혜와 연대, 협동의 정신에 주목한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던 마을 공동체나 이웃 같은 가치가 복원되고 경제보다 더 큰 의미인 사회가 복원되면 여러 사회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어요. 사회를 더 의미 있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게 사회적경제라고 생각해요.”

사회적경제학 1호 박사인 정 교수도 처음부터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본교 기독교학과 84학번인 그는 목사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졸업 후 민중 목회의 꿈을 안고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고 신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이후 신학 잡지나 단행본을 출간하는 출판사에서 15년간 일했다. 학부 졸업 논문으로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과 가난, 영성의 문제’를, 신학대학원 석사 논문으로는 ‘한국 교회 갱신론’에 대해 썼던 그는 늘 모두를 해방할 수 있는 신앙 공동체를 고민했다.

그런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꾼 건 아동복지기관에서 일하던 친구의 부탁이었다. 당시 아동복지기관은 형편이 어려워 홍보 담당 직원을 따로 둘 수 없었다. 친구는 출판사를 운영하던 정 교수에게 기관의 브로슈어나 뉴스레터 제작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정 교수는 일을 돕던 중 아동복지기관에서 지원하는 ◆아동 그룹홈에 방문했고 열악한 현장을 목격했다. “아이들을 만나고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제 삶이 천천히 궤도를 바꾸며 움직이는 걸 느꼈죠.” 신앙공동체를 꿈꾸던 그가 복지공동체를 꿈꾸게 된 순간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가면 되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까 일주일 내내 기관에 가서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도움에서 시작한 복지 일은 그의 삶이 됐다. 사회복지 공부를 위해 다시 본교 사회복지대학원에도 진학한 그는 서울시 아동공동생활센터 팀장까지 역임했다.

아동복지 현장에 약 10년간 몸담으며 정 교수는 아동문제 해결에 한계를 실감했다. 그는 “복지는 정부나 지자체 등 관에서 주도하는 지원 중심이라 복지 참여자가 대상자가 되고 수혜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참여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는 정 교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참여자의 주체적인 노력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힘쓸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신앙 공동체를 고민하던 그는 복지 공동체를 꿈꿨고 나아가 사회적경제 공동체를 그리게 됐다.

그렇게 2016년에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2017년 에 본교 일반대학원 사회적경제협동과정에 진학했다. 그는 “제가 생각했던 복지 공동체가 확대된 방식으로 사회적경제 공동체를 더 꿈꿀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2021년 국내 1호 사회적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뒤에는 대학에서 사회적경제와 사회복지 기초 과목들을 강의했다. 3월1일부터는 본교 일반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다양한 길을 걸어온 정 교수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제자리 뛰기라도 하며 모색하고 궁리하다 보니 길이 다양하게 연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모색과 궁리의 시간’이라고 불러요. 가슴이 당기는 일을 찾고 왜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그 느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거죠.” 이 과정을 통해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했던 일들이 결국 후회도 없었고 다음을 위한 중요한 교훈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를 강의하면서도 많은 모색과 궁리의 시간을 가졌다. 박사나 석사 과정은 현장에서 오래 있었던 전문가부터 학부를 졸업하고 오는 초심자까지 폭이 넓다. 어느 수준에 맞춰 강의해야 할지 고민하던 정 교수는 4구 당구의 원리를 떠올렸다. 4구 당구는 각자 목표로 설정한 점수를 빨리 달성하는 사람이 이긴다. 같이 하는 사람들의 실력이나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 이 원리처럼 그는 “각자 수준이 어느 정도든 자기가 시작했을 때보다 더 심화할 것”을 목표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타인과 경쟁하거나 비교하는 대신 각자의 기준을 마련해 준 것이다. 그는 “사회적 경제를 강의하는 입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자기 기준을 가지고 심화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사회적경제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지금에야 적성과 길을 찾았다고 말한다. “요즘 되게 설레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를 보면 주인공인 우영우가 정규직 변호사가 되고 첫 출근날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뿌듯함이라는 것을 발견하잖아요. 저도 되게 뿌듯해요.”

그는 후배들에게 “스스로에게 여지와 시간을 주라”고 조언했다.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간은 필요하니 불안과 압박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저는 52세에 박사를 시작해서 56세에 박사가 됐고 58세에 드디어 적성을 찾았어요. 저를 보면 최종 목표를 20대에 성취하고 30대에 마련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선배로서 여러분의 본보기예요.”

 

◆호혜: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 일.

◆아동 그룹홈: 공동생활가정을 말하며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가족처럼 살도록 한 제도.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