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인문학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명지대학교 및 명지전문대학 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는 철학과를 폐과하는 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했다. 한국 대학 곳곳에서 인문학은 경제성과 실용성 결여라는 논리 하에 사라지고 있다.

 

대학에 인문학의 자리는 없다

2022년 12월 말, 학교법인 명지학원은 회생 과정에서 ▲물리학과 ▲바둑학과 ▲수학과 ▲철학과를 폐과하고 사학과는 미술사학과로 통합하는 개편안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이에 명지대 김준성 교수(철학과)는 “대학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통추위에서 개최한 공청회는 명분뿐인 행사”라며 “통추위 회의에 인문대 관계자가 들어가 의논할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명대신문>이 명지대 학생 4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사 구조 통합안에 대해 ‘매우 부정적’,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전체 응답자 중 85.19%였다. 교수 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71.64%가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현실은 명지대만의 일이 아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서울 소재 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인문학 관련 17개 과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삼육대는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가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통합됐다. 한국외대의 경우 지식콘텐츠전공과 영어통번역전공, 아랍어통번역학과 등이 융합인재학부로 통합됐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어문학과들이 하나의 학부로 통합된 것이다. 이에 반해 공학 계열 학과는 23개가 신설됐다. 강 의원은 “한국 문화에 대한 파급력이 커지는 이면에는 우리의 인문학이 기반이 된 부분이 있다”며 “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하는 정량적인 평가 지표가 인문학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표로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본교의 경우 2020학년도 교과과정 개편으로 인문학 교양인 <우리말과글쓰기>와 <고전읽기와글쓰기>가 <통합적사고와글쓰기>로 통합됐다. 2019년에 두 과목을 모두 수강했던 윤연재(철학·19)씨는 “이 강의들을 통해 쓰고 읽고 말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배웠다”며 “나를 더 잘 드러내는 방법뿐 아니라 글을 구조화하는 실용적인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문학 교양 통합은 “필수 이수 교과목이 지나치게 많다”는 학생 설문조사 결과의 영향이었다. 김호연(컴공·21)씨는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이나 인문학의 기초적인 작품을 읽었던 것이 좋았지만 이전처럼 6학점을 이수해야 한다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한 번 듣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문학이 축소된 자리에는 ‘SW 6학점’이 들어섰다. 윤씨는 “코딩이 필수 교양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꼭 인문학 교양을 줄였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개편안이 함의하는 상징적 측면을 우려했다. “학교가 인문학 교양을 축소하는 건 ‘이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학생들에게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딩이 더 중요하지, 말하기와 글쓰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일종의 이런 메시지를 주는 거죠.”

본교의 입학 장학금도 마찬가지다. 각 전공의 합격자에게 주는 입학 장학금의 경우 데이터사이언스학과, 인공지능학과와 같은 이공계 전공들이 주를 이룬다. 장학금 설명란에는 “우수한 인재의 잠재력을 가능성으로 바꿀 수 있도록 전폭적인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스크랜튼학부를 제외하면 인문·사회계열 전공의 입학 장학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락거리가 된 인문학

"대학이 구청 문화센터인가...교양 과목 새롭게 다시 짜겠다."

두산의 중앙대 인수 당시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이 교양 과목 목록을 보고 한 말이다. 그에게 인문학은 문화센터에서 배워도 되는 것이었고, 중앙대의 학과 개편은 그의 의도를 고스란히 반영해 이뤄졌다. 독어독문과, 불어불문학과 등이 유럽어문학부로 통합됐고 그 과정에서 줄어든 정원은 경영대로 이동했다.

대학이 경제적 위기에 직면할 때 가장 먼저 축소되는 것은 인문학이었다. 명지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추위는 철학과 폐과 사유에 대해 “등록금 창출 기여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준성 교수는 “명지대 철학과는 인문대 내 취업률 2위”라며 폐과 사유가 명확하지 않고 자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타과 학생들에게도 철학 교양의 수요가 굉장히 높다”며 폐과 결정에 의문을 표했다.

대학 사회에서 인문학은 계속해서 주변화되지만 인문학 책과 예능의 인기는 높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가판대에는 인문학 책들이 자리하고, 패널들이 인간의 다양한 특성에 대해 대화하는 예능 프로그램 ‘알쓸인잡’(2022)은 3.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보기 어려운 지금의 풍경에 이영환 교수(철학과)는 “대학 내 인문학 교육은 교양으로 배우는 인문학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인문학 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수업은 사회에서 교양으로 배우는 것보다 더욱 까다롭습니다. 이걸 견뎌냈을 때 큰 변화가 찾아오는 거죠. 이건 쉬운 인문학으로 대체가 되지 않습니다."

 

'더 나은 세상'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기술로 외화도 많이 벌어들이고 그러면 좋겠죠. 그런데 돈이 많아지면 이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까요? 지금 당장 눈앞의 실용적인 기술도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함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이 교수는 인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인과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면서 설득하고 토론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행위다. 이를 위해선 개인들의 사유가 전제돼야 한다. 사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인문학 수업이다.

김준성 교수는 철학이 “많은 내용을 배우는 학문은 아니다”라며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고 타인의 의견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토론하는 것이 철학 교육”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말하는 능력이 키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문학은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다. “어렵고 깊은 주제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문학적 기술이죠. 이걸 사용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이 교수는 “실용성이라는 것이 실제 삶에 유용한 것을 뜻한다면 결국 인문학이 가장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인문학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김일년 교수(사학과)는 인문학을 “특정 전공자만의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인간이 알아두면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거죠.” 윤씨 또한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며 “그 생각을 모두가 발화할 수 있으려면 인문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문학과가 없어져도 인문학 교육은 유지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교수는 “대학 구성원이 인문학 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공유하고 그만큼 교육이 강화될 수 있다면 학과가 사라지는 것 자체는 핵심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철학과가 사라지면 인문학의 교육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학과의 여부에 따라 인문학 교육의 양과 내용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성 교수는 “철학과가 없어진다면 수업의 질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학자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인문학 교양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일년 교수(사학과)는 “인문학 교양을 원하는 학생들은 많다”며 “그 수요에 맞춰 수업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때 받는 인문학 교육은 유연한 사고를 가능케 한다는 의의가 있다. 이 교수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대학생 시기에 다양한 것을 접하고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며 “인문학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가치 체계를 반성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교육을 넘어서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도 인문학은 중요하다. 철학을 전공하는 윤씨는 인문학을 통해 삶의 태도가 변화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철학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철학자들의 원전을 읽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면서 어떤 것이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태도인지, 내가 내 삶에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됐죠. 그 과정을 통해 삶을 견디는 힘이 커지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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