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 최초 외교관 오영주 대사가 주베트남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strong>김희원 사진기자
이화인 최초 외교관 오영주 대사가 주베트남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김희원 사진기자

2022년 10월13일, 오영주 대사(정외·86년졸)가 주베트남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그는 본교 출신 첫 외교관이자 한국의 4번째 여성 외교관이다. 올해로 한국과 수교 30주년을 맞은 베트남은 한국과 무역량이 4번째로 많은 나라로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 3위, 주요 수입국 6위, 투자 1위국이기도 하다. 9000개의 한국 기업과 교민 20만 명이 베트남에 살고 있을 정도로 한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오 대사가 베트남 출국을 열흘 앞둔 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화의 첫 외무고시 합격자

오 대사가 외무고시에 도전할 당시, 본교에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합격자는 있었으나 외무고시 합격자는 없었다. 오 대사는 “아무도 안 한 새로운 일이기도 했고, 여성과 남성이 차별받지 않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외교관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들처럼 고시를 대비한 공부를 하기보다는 학교 공부에 매진했다. 고시 공부에 필요한 지식은 타 학과 강의를 수강하며 얻었다. “불어는 불어불문학과, 경제학은 경제학과, 사회학은 사회학과 전공 수업을 들었죠. 학교 프로그램을 굉장히 잘 활용했어요.”

학교 강의를 통한 공부는 다른 고시생보다 창의적인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게 했다. 오 대사는 “전공 수업 중 외교사 과목을 수강하며 청일전쟁을 배웠는데, 외무고시에 청일전쟁의 역사적 의의를 쓰는 문제가 나왔다”며 “당시 외교사 과목에서 1등을 할 만큼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의 오 대사도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고시를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 방황했다. 해낼 수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고민하던 그는 고민할 시간에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실패하더라도 그 시도를 통해 얻는 것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는 주로 고민만 하고 생각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인생이 결국 시도 없이는 성취가 없는 거잖아요.” 그는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외교부 생활을 하며 그 시절의 내가 자양분이 됐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교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1, 2차 시험은 단번에 통과한 오 대사지만, 당시 여성 외교관을 덜 뽑는 경향 때문에 3차 면접에서 낙방했다. 오 대사는 “불합리한 상황에 학교가 항의했고, 졸업한 나를 기숙사에 살며 학교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남자뿐인 외교부에 입성하다

“항상 나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오 대사는 우리나라 4번째 여성 외교관이다. 그가 처음 외교부에 들어갔을 때는 외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 중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오 대사는 “외교 능력과 성별이 무관함을 보여주고자 매일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오 대사를 인정하고 이끌어주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직책이 바뀔 때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자리냐’며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 대사가 유엔(UN·United Nations) 과장을 맡았을 때도 ‘여자가 과장을 할 수 있어?’라는 반응이 있었다. 최초의 여성 유엔 과장이었기에 남성들이 여성 과장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려움과 부담감이 있었던 시기지만 오 대사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남성들보다 열정을 가지고 노력했기에 외교관으로서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뛰어난 성과를 보여 외교부에도 여성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했어요. 그런 개인의 역사가 쌓여 외교부의 지배적 문화는 많이 변했죠.” 현재는 외교관의 반 이상이 여성이며 성별에 관계없이 본인의 역량이 중요한 문화가 형성됐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공적개발원조 전문가였던 오 대사에게 2000년 주후쿠오카 영사로서의 일본 근무는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한국과 긴밀히 연결된 일본에서 근무하며 그는 아시아 국가들과 한국의 관계가 중요함을 몸소 느꼈다. 우리의 역사는 결국 아시아 국가들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주목한 오 대사는 다음 근무지로 중국을 희망해 주중국 참사관을 지냈다. 그리고 2022년, 베트남 대사로 부임했다. 오 대사는 “그동안 아시아 대사로서 활동했던 시간의 연장선인 것 같다”며 “베트남 대사로 근무하면서 국익을 위해 더욱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외교관으로서의 관심사는 매번 바뀐다. 한국 외교가 처해 있는 국제 환경이 변했고, 그 환경 속 한국의 위치도 변했기 때문이다. 1988년 오 대사가 처음 외교부에 입성했을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다. 독재를 막 벗어난 개발도상국의 외교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지금은 한국이 크게 성장해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이 커지고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많아졌다. 그는 “발전한 한국이 지금의 위치에서 어떤 생각과 지향성을 가져야 할지, 지역의 리더가 되기 위해 어떤 외교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대사는 “국가가 문화·경제적으로 성숙했으니 인권, 평화, 안보 등 글로벌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꼭 외교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서 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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