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렘브란트, 피카소, 클림트…. 학창시절 미술사 수업 시간에 배운 화가들 중 여성은 없다. ‘그동안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본교 <여성과예술> 교양 수업은 이 의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여성과예술>을 강의한 지 10년차가 된 강은주 교수(미술사학과)는 페미니즘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넓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그동안의 수업 내용을 모아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본지는 22일 학교에서 강은주 교수를 만나 책과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교에서 10년동안 ‘여성과 예술’을 강의한 강은주 교수(미술사학과). 강의의 내용을 엮어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책을 발간했다. 김희원 사진기자
본교에서 10년동안 ‘여성과 예술’을 강의한 강은주 교수(미술사학과). 강의의 내용을 엮어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책을 발간했다. 김희원 사진기자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강 교수는 책의 제목을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이라고 지었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미술사를 보는 것은 수강생과 독자 모두에게 처음일 것이라는 의미다. <여성과예술> 강의는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동안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 이 물음에 강 교수는 “과거에서부터 여성 예술가는 존재해왔지만 단지 역사가 그들을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미술사의 일반적인 서술 방식은 위대하다고 지목되는 소수의 미술가들을 계보의 형식으로 나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보적인 서술 방식에서는 사회 구조 안에서 주류에 포함되지 않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비주류 남성들, 유색인종, 여성 예술가들은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여성은 기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대하게’ 평가받지도 못했다. 인류사에 오랫동안 고착돼 온 성에 대한 편견은 여성 미술가들이 주목받지 못하게 했다. 수업에서는 그동안 여성이 미술의 주체로 자리 잡지 못하고 항상 대상화돼 온 재현 방식도 비판한다. 강 교수는 이것이 “유구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흐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미술을 향유하는 건 남성들이었기에 작품에서 재현되는 여성은 남성들의 시각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 아니면 이브라는 이분화된 시각 속에서, 여성은 성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이나 현모양처, 또는 남성들의 눈에 관능적인 대상으로 그려졌어요.” 남성은 주체, 여성은 대상으로 이분화된 흐름은 근대 미술사까지도 이어져 왔다.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업 

<여성과예술>은 그동안의 미술사 수업과는 달리 여성의 시각으로 미술사를 다시 보고 이야기하는 수업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미술사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적용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주류 미술사 책이 여성 미술가들을 지나치게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미술사 책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잰슨의 ‘미술의 역사’의 초판본에는 여성 예술가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에서 여성 미술가를 단 한 명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강 교수의 관점에서 미술사에서의 페미니즘 논의는 아직도 부족하다. “미술사에 균형 잡힌 시각이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 여성주의 관점의 미술사는 여전히 필요한 것이죠.”

강 교수는 더 나아가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가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질문은 미술사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왜 위대한 여성 정치인은 이야기되지 않는가, 왜 위대한 여성 언론인은 남성들만큼 조명되지 않는가, 왜 위대한 여성 과학자는 퀴리 부인밖에 없는가. 이 얘기를 적용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보거든요.” 여성주의 관점의 미술사 읽기는 여성뿐 아니라 지금껏 소외돼 온 모두를 위한 미술, 누구나 주체가 되는 미술을 위한 첫 걸음이다.

 

본교에서 10년동안 ‘여성과 예술’을 강의한 강은주 교수(미술사학과). 강의의 내용을 엮어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책을 발간했다.  김희원 사진기자
본교에서 10년동안 ‘여성과 예술’을 강의한 강은주 교수(미술사학과). 강의의 내용을 엮어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책을 발간했다. 김희원 사진기자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수업 

강 교수는 미술사학자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미술사를 연구해온 그에게 예술이 우리 삶에 왜 필요한지를 묻자 “우리 삶에 대한 답을 찾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간의 역사와 발자취에 대해서 아주 예민한 눈과 감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재현했던 것이 미술 작품이거든요.” 그에 따르면 미술사는 그 시대를 보는 학문이자 동시대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그런 작품을 통해서 인간임을 자각하고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인식하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또한 삶에 예술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강 교수는 “어느 날 캠퍼스를 걷다가 ‘정말 가치 있는 학문을 연구하고 있고 이것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있구나’하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 자신과 인간에 대해서 알아가는 이 순간들이 굉장히 뿌듯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 교수는 학생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드러냈다. “이 수업을 만든 건 전적으로 우리 학생들의 힘이에요.” 매학기 말에 학생들이 보내주는 강의평과 지지는 큰 힘이 됐다. 2022년 초에는 우수 강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수업을 이어온 그의 바람은 이 과목이 본교에서 하나의 고유한 과목이 돼 앞으로도 지속되는 것이다. 

“미술사학과에서 이런 여성주의 관점의 미술사 수업이 있다는 건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하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이화여대의 자부심이자 자랑할 수 있는 과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 학생들이 함께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