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편안하면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노자가 한 말이다. 기원전의 철학가 노자 말고도 현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 이가 또 있다. ◆임상심리사이자 상담소 ‘마음과사람’의 소장인 김아라(발달심리학과 발달임상심리학 석사·16년졸)씨다. 

김씨는 그동안 해왔던 상담 기록을 토대로 최근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을 집필했다. 독자들이 모두 ‘과거와 미래에 휩쓸리지 않고 현재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 지금 여기에 단단히 중심을 잡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쓴 책이다. 본지는 9월22일 학교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임상심리사 김아라씨. 김씨가 운영하는 ‘마음과 사람'은 심리상담소 겸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임상심리사 김아라씨. 김씨가 운영하는 ‘마음과 사람'은 심리상담소 겸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015)에는 다섯 캐릭터가 등장한다. 기쁨, 슬픔, 공포, 분노, 혐오라는 다섯 가지 감정이 각각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버럭이, 까칠이라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인간의 감정은 딱 잘라 5개로만 나뉘지 않는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들은 서로 합쳐져 또 다른 수많은 감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중에서도 우울과 불안에 집중했다. 특별히 이 두 감정을 잘 다뤄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울과 불안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단어다 보니 감정에 휩쓸렸을 때 오히려 문제라고 잘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람들이 두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알면 일상이 뒤흔들리는 위험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책을 쓰게 됐다.

 

김씨가 그동안 해왔던 상담 기록을 토대로 집필한 저서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제공=김아라씨
김씨가 그동안 해왔던 상담 기록을 토대로 집필한 저서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제공=김아라씨

우울과 불안은 익숙한 만큼 잘 혼동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현재를 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우울과 불안을 불러온다.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우울은 과거에서 비롯되고 불안은 미래에서부터 온다는 점이에요.” 우울은 돌아서기 힘든 과거에서 비롯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혹은 그때가 참 좋았는데’와 같은 생각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걱정에서 기인한다. 통제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을 통제하려 해서 쉽게 불안해지는 것이다.

김씨는 우울과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서 “마음이 현재에 머무르게 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사람이 과거를 보면 우울해지고 미래를 보면 불안해질 수 있다”며 “과거를 바꾸려고 돌아보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내가 바꿀 수 없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도움을 받는다고 약한 것이 아님을

어떤 감정들은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상담의 문턱은 많이 낮아진 편이지만 항간에서는 정신과 방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약물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거나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냥 약국에 간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화가 안 되면 소화제를 사러 약국에 가듯이 마음이 힘들면 정신과를 방문하고 상담도 받으라는 의미다. 상담을 업으로 삼는 그 또한 힘든 일이 생기면 상담사를 찾는다. “저도 혼자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은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가면서 극복해 나가는 것 같아요.”

 

‘마음과사람’ 심리상담소는 사람에게 긴장을 풀어주는 여유를 선물하는 찻집을 겸해 운영되고 있다. 제공=김아라씨

그가 운영하는 ‘마음과사람’ 심리상담소는 찻집을 겸하고 있는 독특한 상담소다. 사람을 각성시키는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와 달리 차는 이완을 돕는다. 찻잎은 커피에 비해 우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 사람에게 여유를 주기도 한다. 카페가 아닌 ‘찻집’을 선택한 이유다. “자신을 비워내고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하는 상담에는 차가 더 적합해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상담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공간이다. 내담자는 이곳에서 따뜻한 물로 찻잎을 직접 우려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상담사로 일하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상담 과정을 거치며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계속해서 함께 따라간다. 그는 “내담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방이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며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럴 때는 꼭 눈물이 나요.” 상담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기에 김씨도, 내담자도 모두 변화한다.

 

임상심리사 김아라씨가 운영하는 상담소 ‘마음과사람’의 외부 전경. 제공=김아라씨
임상심리사 김아라씨가 운영하는 상담소 ‘마음과사람’의 외부 전경. 제공=김아라씨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2021년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우울 장애 ◆평생 유병률은 7.7%, 불안 장애의 경우 9.3%다. 많은 사람이 우울과 불안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김씨는 이에 대해 “현재 사회는 우울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며 “자신이 겪는 일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세상은 기쁘고 즐겁기만 한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는 “슬픈 세상에서도 삶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고, 내게서 좋은 점을 발견해가며 사는 것이 삶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세상에 희망과 사랑을 품고 행복해지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머문 시간을 현재로, 그리고 미래에 떠도는 시간을 현재로 가져오며 이 순간순간마다 삶은 계속된다.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희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좋은 일들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으면 정말 살아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다들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줬으면 좋겠어요. 봄이 올 때까지.

 

◆임상심리사: 인지, 행동, 정서 및 성격 등에 있어서 정신과적 장애가 있는 개인 또는 집단을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실시해 장애의 원인 및 치료 방안을 파악하고 심리적 기법을 활용해 치료하는 직업

◆평생 유병률: 평생 해당 정신장애를 한 번 이상 경험한 적이 있는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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