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7일~10월1일 조소과 학생회가 본교 아트 파빌리온에서 ‘BREATH of YOU & ME too’ 전시를 진행했다. 제공=이서영씨
9월27일~10월1일 조소과 학생회가 본교 아트 파빌리온에서 ‘BREATH of YOU & ME too’ 전시를 진행했다. 제공=이서영씨

'당신과 나의 숨결을 담아’

정문 왼편에 위치한 파빌리온 전시장 앞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조형예술대학 조소과 학생회가 9월27일부터 진행하는 ‘BREATH of YOU & ME too’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전시장 안은 조소과 학생들과 방문객들이 분 풍선으로 가득했다. 전시는 10월6일(목)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보랏빛 풍선으로 가득한 전시장 안은 사진을 찍고 방문기록도 남기며 전시를 즐기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밝은 분위기와는 달리 이번 전시는 2018년 본교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과 2022년 해임 교수의 재임용을 기억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어지는 보랏빛 풍선, 그 뒷이야기를 담았다.

 

보랏빛 전시장, 그 뒤에는 미투가 있다

화사한 보라색 풍선 뒤에는 2018년 본교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뼈아픈 과거가 있다. 대학가에서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가 속출하던 당시, 본교에서도 음악대학 S교수와 조형예술대학(조예대) K교수에 대한 미투 폭로가 이어졌다. 교육의 장으로서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대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분노한 학생, 학부모, 동문들이 모여 공동행동, 미투(MeToo) 시위, 기자회견 등 사건에 대응했다. 학생들의 염원 끝에 두 교수가 해임됐고 미투도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2022년 학생들은 다시 한번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해임 처분을 받아 들이지 않은 K교수가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3심 대법원 판결을 통해 해임처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판결에 따라 K교수는 7월 본교에 재임용됐다. 조소과 학생들은 당장 수업에서 K교수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조소과 공동대표 최다형 씨는 “해당 교수가 재임용되며 불안해하거나 분노를 느낀 학생들이 많았다”며 “이런 학생들의 분노를 담아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안에서 사진을 찍는 학생 제공=이서영씨
전시장 안에서 사진을 찍는 학생 제공=이서영씨

 

참여예술, 모든 이화인과 함께하기 위해

전시명 ‘BREATH of YOU & ME too’에는 ‘당신과 나의 숨결’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최 대표는 풍선에 담긴 상징을 강조했다. “풍선에는 누군가의 숨결이 들어가요. 숨은 살아 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풍선에 생명력을 담고 싶었어요.” 2018년 ECC 계단을 가득 메운 보라색 풍선은 2022년 파빌리온으로 돌아와 연대의 역사를 이어갔다.

이번 전시는 참여예술의 형태로 진행됐다. 조소과 학생들과 방문객들이 서로 소통하길 바라서다. 최 대표는 “조소전공의 인원은 한 학년당 26명으로 극소수지만 2018년에도 전공을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미투에 동참해 주셨다”며 “이번 K교수의 재임용 이후에도 여러 학우분들이 조소과와 함께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밝은 분위기 역시 의도한 바다. 최 대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학생들과 함께 하고 단합하고 싶었다”며 “기획 배경은 무겁지만 주최자나 참여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시위 형식보다는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밝은 느낌의 전시를 택했다”고 전했다.

방문객들이 입이나 펌프를 통해 풍선을 불어 파빌리온 안에 쌓으면 조소과 학생회는 보라색 풍선 캐릭터가 그려진 뱃지를 나눠준다. 뚱한 표정이 돋보이는 캐릭터에는 학생들의 분노를 담았다. 최 대표는 “K교수가 재임용된 후 많은 분들이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며 “이런 학생들의 마음을 귀엽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활용된 보라색 풍선을 들고 있는 조소과 공동대표 최다형씨(왼쪽), 김현정(조소·20)씨 이자빈 사진기자
전시에 활용된 보라색 풍선을 들고 있는 조소과 공동대표 최다형씨(왼쪽), 김현정(조소·20)씨 이자빈 사진기자

 

한마음으로 만들어가는 조소과 전시

조소과 학생회가 기획한 행사지만 거의 모든 조소과 학생들이 함께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전시 기획을 도와줄 친구들을 모집했어요. 도와 주는 사람들이 늘어 한 학년의 절반 정도가 와서 도와줬죠.”

석사생도 전시에 함께했다. 전시 운영을 도우러 온 이서영(조소전공 석사과정)씨는 “학생회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데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다른 석사전공 친구들과 함께 설치부터 촬영, 전시장을 지키는 것까지 도와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조소과 학생으로서 K교수 재임용에 대해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도왔다”고 말했다. 최 대표 역시 “석사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며 “조소전공 학생 전체가 다 같이 힘을 모아 설치하고 참여한 전시”라고 말했다.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는 동문회 선배들도 있었다. 최 대표는 “전시 기획을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동문회 선생님들이 거금을 후원하신 덕에 전시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소과 동문회장을 역임했던 박광숙(조소·74년졸)씨는 “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후배들이 움직이는 걸 보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며 후원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박씨는 파빌리온에서 전시가 진행되는 수요일 오후12시부터 오후5시까지 지킴이 학생들과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K교수 재임용으로)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저희가 끝까지 같이 지켜보겠다고 말해줬습니다.”

방문객들 역시 전시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었다. 원래는 10월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에 6일까지 전시가 연장되기도 했다. 정혜원(스크랜튼·22)씨는 “대법원 판결로 학교에서 K교수의 재임용을 막을 수 없다고 들었다”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함께하고 싶어 전시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세진(스크랜튼·22)씨는 “지나가며 보라색 풍선이 잘 보이길래 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풍선 불고 사진도 찍으며 즐겁고 쉽게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조소 전시에 활용된 보라색 풍선 제공=이서영씨
조소 전시에 활용된 보라색 풍선 제공=이서영씨

 

애프터 미투, 그 걸음에 함께해주세요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겪으며 학생들은 2018년, 2022년 두 번의 좌절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씨는 “K교수 재임용 이후 학생들이 느끼는 고립감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조소과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연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이번 행사를 통해 조소과 학생들도, 피해자분들도, 이화인 분들도 연대감을 느끼고 가시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최 대표는 이번 전시를 통해 모든 학생들이 K교수 재임용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2018년 미투는 조소과에서 발생했지만 사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모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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