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피눈물 분장을 한 채 피켓을 들고 있는 심미섭씨. 교수 성폭력을 규탄하고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사진=우지안씨, 제공=심미섭씨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피눈물 분장을 한 채 피켓을 들고 있는 심미섭씨. 교수 성폭력을 규탄하고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사진=우지안씨, 제공=심미섭씨

축하하는 말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 대학에서의 배움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은 흔히 기쁜 행사다. 그런 현장에서 혼자 조금 다른 모습을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2월24일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이 여성은 피눈물이 흐르는 분장을 한 채로 피켓을 들었다. 피켓에는 “자연대 신교수, 자연대 K교수, 경영대 P교수, 사회학과 H교수, 수의대 H교수, 서어서문학과 A교수, 음대 B교수와 C교수… 교수 성폭력 멈출 수는 없나? 서울대는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실시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주인공은 서울대 철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한 심미섭(32·여)씨다. 그는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1인 시위를 했다. 심씨가 피켓을 들자 교직원들은 하지 말라며 그를 말렸고 학위수여식이 진행되는 내내 눈을 떼지 않았다.

심씨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로서 학교가 두렵고 힘든 적이 많았는데 드디어 이겨내고 졸업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시위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학교가 피해자를 돕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피눈물 분장에 대해서는 “학교가 나를 이만큼 안전하지 못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여전한 학내 성폭력 영향

2018년 미투(Me Too) 운동을 계기로 대학 내 성폭력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 5년이 지났지만 학내 성폭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심씨는 피해자가 사건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도 2차 가해 등 고통을 받는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교수 성폭력이 공론화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며 “피해자가 자신의 시간이나 존엄을 희생해서 공론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문제”라고 말했다.

피해자 편에 서지 않는 학교도 비판했다. 학위수여식 전날인 2월23일 있었던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교수 사건의 항소심에서 서울대는 A교수에 대한 징계위원회 서류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심씨는 “서울대에서는 사건이 일어나고 공론화돼도 무시하거나 학생들의 투쟁이 지속된 이후에야 비로소 미온적 대응을 할 뿐”이라며 “학교는 학생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음에도 피해자를 돕지 않는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대학의 행정 처리 과정도 지적했다. 학내 성폭력 피해자이기도 한 그는 “(성폭력 피해를) 서울대 인권센터에 신고했지만 이후에 어떻게 해결됐는지 구체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학 구조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는 “대학 내에서는 교수의 평가에 의해 학생들의 미래가 결정된다”며 “이 절대적인 평가 체제가 학생들에게 ‘갑질’로 작용하고 (일부 교수들은) ‘자신은 절대로 처벌받지 않을 것’ 혹은 ‘학생들이 자기를 고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거시적으로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얼마나 민주적이지 못한지를 논하며 대학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본교에서도 2018년 조소과 K교수와 관현악과 S교수의 성폭력 사실이 공론화됐다. 이후 두 교수에게 해임 처분이 내려졌지만 K교수는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걸었고 2022년 복직했다.

 

진정한 해결로 나아가려면

반복되는 대학 내 성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심씨는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그는 “매해 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전수조사를 하는 것처럼 대학에서도 자체적으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게 되면 개선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조사 과정에서 철저하게 익명이 보장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심씨는 학교가 피해자의 편에 설 것도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 때 학교는 피해자의 편에서 모든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서 객관성을 확보할 것도 요구했다. 학교가 외부 인사를 자문위원으로 투입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정에서의 재판 과정이 모두 공개되는 것처럼 폐쇄적인 행정 처리 절차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학교에서도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깨끗하게 공개돼야 여러 의혹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피해자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이 문제가 공론화하는 데 개인의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마냥 ‘여러분들도 용기를 내셔라’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곁에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을 찾아서 도움을 받으세요. 이후에는 용기를 내는 것도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폭력 피해 상담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교내 인권센터(본교 인권센터 02-3277-3229), 한국여성의전화(02-2263-6464,5),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경찰청 성범죄 상담 챗봇 등에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대학보도 여러분의 이야기에 열려 있습니다. 이대학보 공식 메일(hakbo@ewha.ac.kr) 혹은 아래 기자 개인 메일 중 편하신 방법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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