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법학회장, 여성으로는 창설 이후 최초
남성 중심의 법학계에서 여성 법학자들 이끈다
이화에서의 인턴십 경험이 진로 결정으로 이어져

편집자주|본교는 매년 졸업생 중 사회 분야에서 타의 모범이 되고 사회에 공헌하는 동문을 선정해 ‘빛나는 이화인 상’을 시상한다. 제7회 ‘빛나는 이화인 상’은 2022년 처음 개최된 5월 31일 본교 창립기념식 후속행사 ‘영원한 이화인’에서 시상이 진행됐다. 수상자로는 이광희(비서·74년졸)씨, 안수현(법학·90년졸)씨, 김희진(컴공·05년졸)씨가 선정됐다. 본지는 수상자의 커리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안수현씨와 김희진씨를 직접 만나봤다.

 

제7회 ‘빛나는 이화인 상’을 수상한 안수현 교수 <strong>이자빈 사진기자
제7회 ‘빛나는 이화인 상’을 수상한 안수현 교수 이자빈 사진기자

2022년 3월, 첫 여성 한국경제법학회장으로 선출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안수현 교수(법학·90년졸)가 제7회 ‘빛나는 이화인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안 교수는 “남성이 주를 이루는 법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 활발히 학회 활동을 한 것이 공적으로 인정받아 좋게 봐주셨다”며 “영광스러운 상이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여성 법학계의 포문을 열다

4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안 교수는 기업 경영과 정부 정책의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꾸준히 등재되는 학술지에 따라 존속 여부가 결정되는 학회를 위해 1년에 4번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학술지가 차질 없이 발간되도록 책임진다. 안 교수는 “경제학 및 법학에서 가장 화제성이 있거나 정부 정책으로 재현이 필요한 주제를 타 기관과의 연합학술대회로 공론화하고 있다”며 학회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 학회장으로서 중요한 책무임을 설명했다.

지금은 법학계에서 활약하는 안 교수지만 현재의 자리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가 대학교수로 처음 교단을 밟았던 2002년만 해도 법학 분야에서 여성 교수를 찾기 어려운 시대였다. 여성 교수가 법학회장으로 선출되는 경우도 드물다. 여성이 한국경제법학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법학회 창설 이후 44년만이다.

법학계에서 여성 교수로 활동한 안 교수가 한국경제법학회장으로 추대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학회 재정이 어려웠던 시기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해 학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학회는 연구 독립성 문제로 기업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 많은 자금을 회비로 충당해야 하는 재정적 문제에 자주 부딪힌다. 한국경제법학회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안 교수가 학회 홍보 활동에 힘쓴 결과로 연구에 필요한 적지 않은 연간 예산을 회비로 상쇄시킬 만한 규모의 회원을 유치할 수 있었다. “남성이 지배하는 법학계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을 실력을 보여주는 것만이 답이었죠.”

 

법학자로서 공익실현에 기여하다

안 교수는 학제 연구뿐 아니라 공익 실현에도 기여하고 있다. 법학계의 열악한 여성 교수 처우를 체감했던 그는 아시아 여성 법학교수들의 학술 연구 지원과 권익 보호를 위해 2022년부터 아세아여성법학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세아여성법학회에서는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등 전 세계 약 200명의 여성 법학자들이 매년 학술지를 발간한다. 특히 그는 회장으로서 성폭력·성희롱, 아동학대 등 인권 문제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학술대회를 통해 학위가 있어도 여성이라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국내외 여성 법학자들과 함께 학술지를 발간하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안전 및 권익 실현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2016년 한국외대 법학연구소 산하에 소비자법센터를 설치하고, 현재는 본교 소비자법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소비자법센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온라인 금융 환경에서 자신의 정보가 어디로 유출되는지 모르고 손해를 입는 소비자를 돕기 위해서다. 소비자법센터는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금융 산업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이슈를 법학 연구자들이 쉽게 정리해 알려주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또 안 교수는 오는 11월 국회와 함께하는 세미나도 추진 중이다.

“소비자의 요구가 국회의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소비자법센터의 목적입니다. 어쩌면 학회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정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법학자가 되기 위한 기반을 대학생부터 닦다

안 교수가 여성 경제법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화에서의 경험 덕분이다. 그는 2학년 때 본교에서 주관하는 증권회사 인턴십에 참여해 고객의 주식 매수 주문 신청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주식이 매수되거나 매도되는 흐름을 지켜봤던 덕분에 그는 전공수업에 등장한 추상적인 주식과 증권의 개념을 경험에 빗대어 구체적으로 연상할 수 있었다. “인턴으로 근무하며 알게 된 내용이 회사법 수업에 등장해 재밌게 공부했습니다. 이후 금융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진로를 결정하게 됐죠.”

또 그는 “이화의 학생으로 한 번도 차별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며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이 적극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졸업 후에도 이화의 소중함을 체감한다고 말한다. “순수하면서 적극적이었던 동기 및 선후배들과 귀한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은 지금까지도 제게 큰 에너지와 통찰력을 주고 있습니다.”

안 교수는 법조인을 꿈꾸는 이화인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질로 ‘창의력’을 꼽았다. 그는 “AI 법조인이 등장하는 등 법조계도 4차산업혁명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며 “법조문을 이해하는 역량보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의력을 갖추기 위해 그는 후배들에게 많은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어떤 경험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시도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나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법조인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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