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우영우’ 열풍이 안방극장을 휩쓸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의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천재 자폐인 서사를 회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다.

“드라마에선 천재 자폐인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발달장애인이 현실 인물이 된다면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까?” 6월 출간된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저자 백세희(법학·09년졸)씨가 책에서 던진 질문이다. 본지는 강남구 한 법률사무소에서 그를 만나 미디어 소수자 재현 양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백세희 변호사는 미디어 속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을 집필했다. <strong>김희원 사진기자
백세희 변호사는 미디어 속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을 집필했다. 김희원 사진기자

저자 백씨는 경기도 양평군에 거주하며 일주일에 한 번 서울 로펌으로 출퇴근하는 변호사다. 백씨가 미디어 속 소수자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평범한 미디어 소비자의 사소한 의구심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는 주인공 ‘우진’이 등장하는 영화 ‘뷰티인사이드’(2015) 시청 당시를 회상했다.

“대한민국 등록 장애인 수가 전체 인구 중 약 5%라는 수치만 보더라도 영화 속 123명의 우진 중 6명 이상의 장애인이 등장해야 했는데 한 명도 없었습니다. 기대했던 바가 화면에 재현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해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기 시작했죠.”.

이후 여러 미디어를 분석한 백씨는 문화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백씨는 <경향신문>에서 ‘백세희 변호사의 아트로’라는 코너로 문화예술과 법을 주제로 한 칼럼을 연재해왔다. 이후 그는 칼럼의 내용을 모아 대중문화예술 분야에서 생길 수 있는 궁금증을 변호사의 말로 설명하는 책 ‘선녀와 변호사가 인어공주를 만난다면’을 저술하게 된다. 이후 백씨는 그의 글을 인상 깊게 본 출판사 편집장의 권유로, 확장된 문제의식을 더해 책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을 저술했다.

제목의 ‘납작하다’와 ‘투명하다’는 미디어가 소수자를 재현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두 단어다. ‘납작하다’는 소수자를 단편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 ‘투명하다’는 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대중문화 콘텐츠 속 소수자가 납작하고 투명하게 재현되는 방식을 소수자 유형별로 분석한다. 또 법과 제도를 다루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미디어에서 재현된 것과 현실이 유사한지도 살펴본다.

책에는 서울 중심주의, ◆에이지즘(ageism), 인종, 젠더, 장애, 노동, 성소수자의 7가지 주제가 등장한다. 그는 “가장 경각심을 가져야 할 주제는 서울 중심주의와 성소수자”라고 강조했다.

서울 중심주의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 지방의 삶에 대해 편견 또는 환상을 갖고 단편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는 서울 중심주의가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노출되는 서울과 지방의 이미지는 기존 질서를 주어진 조건으로 굳히는 역할을 한다”며 “대중문화 콘텐츠가 특별한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주제”라고 언급한다. 특히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서울 중심주의적 사고가 반영된 작품으로 꼽았다. 영화에는 취업난으로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휴식을 취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시골을 마치 불편하지만 평화로운, 팔자 좋은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그려낸 거죠.”

한편 그는 성소수자 유형에 대해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도 온전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혐오 표현에 가장 쉽게 노출된다”며 “콘텐츠 시장에서 유독 가벼운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씨는 미디어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투명하게’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공중파 방송사가 외국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2018)의 동성 간 키스 장면을 삭제하거나 모자이크 처리해 방영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죠.”

그는 “책장을 덮고 나서 접하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전과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독자가 있다면 본인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디어 속 소수자가 올바르게 재현되려면 평범한 독자가 가진 주류적 시선에 미세한 균열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백씨는 여성이라는 소수자 유형에 속한 이화의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여성주의 본진인 이화여대를 다니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테나’를 하나 더 달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젠더 이슈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음에도 “이화인이 갖는 특별한 안테나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매 순간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에이지즘: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상이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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