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출처=마블(Marvel), 티비엔(tvN), 넷플릭스(Netflix), IMDb (왼쪽부터)
출처=마블(Marvel), 티비엔(tvN), 넷플릭스(Netflix), IMDb (왼쪽부터)

263만3026명. 2020년 기준 장애 인구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 약 5%에 달한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OECD 기준 총인구 중 외국인, 귀화자 등 이주 배경 인구가 5%를 넘어서면 그 나라는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규정된다. 이를 고려하면 장애 인구 5%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미디어 속에서 장애인은 ‘있지만 없는 존재’에 가깝다.

 

낮은 비율, 왜곡된 모습… 장애인은 웃음거리가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2019년 미디어 다양성 조사’에 따르면 국내 TV 채널 기준 드라마, 뉴스, 예능 버라이어티, 탐사보도 영역에서 전체 등장인물 중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를 밑도는 열악한 수준이다. 특히 탐사보도 영역에서는 총 202명의 등장인물 중 장애를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비단 TV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니다. 논문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그린 영화의 분석’(이미란, 2017)은 1978년부터 2016년 사이 국내에서 제작된 장애인 주인공 영화가 17편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장애인은 200만 명이 넘는 규모의 인구집단으로 실존하고 있음에도 미디어 속에서는 철저히 비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드물게 장애인이 영상 매체에 등장하는 경우에도 재현의 폭은 현저히 좁았다. 논문 ‘장애 뉴스(Disabled News)’(서영남, 2013)는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장애라는 ‘난관’을 극복한 ‘영웅’처럼 묘사하거나 장애라는 ‘불행’에 고통받는 ‘피해자’처럼 서술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짚었다. 장애인은 신체적·정신적 결함을 안고 주변의 연민과 도움에 의존하는 걸림돌, 장애라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위인, 혹은 장애로 인한 폭력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내세워 사회에 위협을 가하는 괴물 중 하나로 그려진다. 연세대 김준혁 교수(치과대학)가 <한겨레> 칼럼 ‘휠체어 탄 공주가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날’을 통해 “문화적 상징체계에서 장애가 부정성을 의미하지 않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처럼 미디어 속 장애인은 장애적 특성에만 무게가 실린 채로 철저한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재구성되는 양상을 보였다.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들며 ‘이거 웃기지? 이거 보면서 웃어!’ 하는데, 장애인이 보기에는 하나도 안 웃겨요.”

청각장애인 ㄱ씨는 “장애인의 장애 행동을 우습다고 인식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영상 매체 속 일상처럼 이뤄지는 장애 희화화는 여전히 고질적 문제로 자리하고 있다. 인기 게임 <고요 속의 외침>이 그 대표적 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를 통해 다시 유명해진 이 게임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환경에서 참가자가 상대에게 제시어를 전달하며 진행된다. 전달 과정에서 단어는 우스꽝스러운 뜻으로 바뀌어 가고,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내는 그림이 연출된다. ㄱ씨는 “ 때로는 그렇게 우왕좌왕하거나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을 시청 포인트로 잡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청각장애인에게 당연한 일상을 희화화하는 것이 불쾌하다는 의견을 더했다.

 

왜곡된 장애인 재현, 타자화로 이어져

“사회는 장애를 고통, 결핍으로만 보고 있어요. 미디어에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편견이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본교 장애 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 여울 활동가가 지적하듯 미디어상에서 장애인을 그릇되게 재현하는 일은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이는 현실에서의 장애인 소외로 직결된다. 논문 ‘장애인 유튜버의 미디어 생산 경험에 관한 연구’(윤형, 조은총, 2020)에 따르면 미디어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고정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는 흐름 속에서 대중은 미디어가 제시하는 틀에 기반해 사고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미진한 인식이 대중에게 굳어진다.

장애와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재현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장애인의 일상마저도 감동을 주는 일로 그려내는 것,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도움으로 장애를 ‘이겨내는’ 과정을 조명하는 것 또한 잘못된 인식을 낳을 우려가 있다. 논문 ‘장애인 전문 다큐멘터리가 재현하는 장애인’(양정혜, 노수진, 2013)에 의하면 이러한 연출이 반복되면서 장애인은 ‘이미 편협하게 구성된 사회 제도’에 부딪히면서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화되고 끝내 비장애인과 구별되는 존재로 남게 된다.

틀린그림찾기 다정 활동가는 “현재 미디어 속 장애인은 시혜적인 시선으로 다뤄지고 있다”며 “대중들이 무의식적으로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닌, 본인보다 약하고 부족한, 무조건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만드는 사람도 등장하는 사람도 적다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낮은 빈도로, 완성도 낮게 재현하는 관행은 미디어 산업을 주도하는 이들 중 장애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배경에서 발생한다. 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장애인 중 경제활동인구는 37.3%로 전체 인구 중 경제활동인구 비율인 63.7%의 절반에 불과하다. 장애인 취업자의 직장 산업 분류 체계에 미디어 산업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영상 속 장애인 역할을 대부분 비장애인 배우들이 전담한다는 것도 문제다. 미국 민간 자선단체 ‘루더맨 패밀리 파운데이션’(Ruderman Family Foundation)이 2016년 발표한 보고서 ‘The Ruderman White Paper On Employment Of Actors With Disabilities In Television’에 따르면 TV에 등장하는 장애인 역할의 95%는 비장애인에 의해 재현된다. 한국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말아톤’(2005), ‘7번방의 선물’(2013), ‘증인’(2019)등 장애인 서사를 담은 영화는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 상업성과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비장애인 배우를 통해 그려졌다.

‘장애인 관련 영상제작자 및 활동가들의 ‘소수자-되기’에 대한 비오그라피 연구‘(강진숙, 김동명, 2019)은 장애인 역할을 비장애인 배우가 전담하는 것이 장애인을 향한 차별을 생산한다고 비판했다. 논문은 “장애인들은 미디어로부터 배제된 존재가 되고 재현된 신체로만 남게 된다”며 “성역화돼 일상성이 탈각된 미디어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예외적 존재로 특화돼 표현된다”고 밝혔다. 당사자가 아닌 비장애인이 장애인 연기를 펼칠 때 드러나는 이미지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답습하며 낙인찍힌 장애인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왜 콘텐츠 생산에 접근하기 어려울까. 근본적으로 문화 콘텐츠 소비에 물리적 한계를 겪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이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1년 장애인 관련 사업을 단 1개 진행했다. 국민의 문화적 삶 향상에 이바지하겠다는 설립목적을 지님에도 4967억 원의 예산 중 0.46%인 24억 원만이 장애인 관련 사업에 배정된 것이다. 이에 ㄱ씨는 “(영상 미디어에) 자막, 수어 통역 화면, 더빙이 기본적으로 제공되면 좋겠다”며 “우리도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다변화 통해 영상 생산 주체로

◆레거시 미디어에서 미진했던 장애인 재현은 다양한 영상 플랫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유튜브(Youtube) 등 영상 플랫폼의 대중화로 장애인이 직접 자신의 일상을 촬영해 올리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기록하는 유튜버 ‘하개월’, 휠체어 관련 콘텐츠를 다루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는 뇌병변 장애인 ‘굴러라 구르’, 후천적 시각장애인으로서 체감하는 불편함과 평범한 일상을 얘기하는 ‘원샷한솔’까지. 다양한 장애를 가진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일상을 노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권력구조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경희대 윤형 교수(언론정보학과)와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조은총(사회학 전공 박사과정)씨는 2020년 발표한 논문 ‘장애인 유튜버의 미디어 생산 경험에 관한 연구’에서 “기존 미디어 산업에서 소외됐던 장애인들이 미디어 생산의 주체가 됐다”며 “장애인을 재현되는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창작자로서 이들을 재해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장애인은 살아있다. 모두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고 있다. 영상 미디어가 끊임없이 일상에 침투하는 시대인 만큼 지워지거나 왜곡된 장애인의 모습은 더 큰 파장을 야기할 수 있다. 미디어 업계 및 사회에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냐는 질문에 ㄱ씨는 “장애인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에는 장애인이 미디어에 주류로 등장하지 않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그는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장애인들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좀 더 많은 장애인이 미디어에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레거시 미디어: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전통 미디어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TV(지상파, 케이블)·라디오·신문 등이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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