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소설가
                                      조해진 소설가

본교 교육학과를 1999년 졸업하고 국어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백신애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미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수전 손택은 자신에게 독서는 여흥이고 위로고 ‘작은 자살’이라고 쓴 바 있다. ‘작은 자살’은 어두운 의미가 아니라 독서를 하는 동안은 일상의 고민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의미로 선택된 표현일 것이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세상을 넓게 보는 경험을 해왔고 그 경험은 그대로 소설 작업에 투영됐다. 읽지 않았다면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18년째 소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나를 구성하는 가장 큰 정체성은 ‘읽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내게 ‘작은 자살’을 통해 일상의 고민을 잠시나마 망각하게 해준 책 한 권을 소개하려니 책장에 겹겹이 꽂히고 쌓인 책들이 하나하나 눈에 밟힌다. 내가 좋아해서 소장한 책들, 그중에서도 헤르타 뮐러, 줌파 라히리, 프리모 레비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한강과 김연수와 김숨의 책들에 시선이 오래 머무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이 작가들의 책들을 특히 아껴 읽은 건 문장으로 실현된 ‘문학적인’ 역사가 좋아서였다.

가령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읽은 덕분에 나는 독재자 차우셰스쿠 시절의 가난하고 어두웠던 루마니아의 시골 풍경을 마치 내 유년의 일부처럼 흐릿한 이미지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고드름마다 커다란 거울이 들어 있다. 꽁꽁 얼어붙은 영상, 마을의 영상이 고드름 속에 보인다’와 같은 아주 시적인 문장으로……. 

프리모 레비의 책들을 통해서는 잔혹하다거나 악명 높다는 수식어로만 각인된 ‘아우슈비츠’를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조각 비누 하나 없이 몸을 빡빡 씻으며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그들(나치)에게 동의하지 않는 그 한 가지 능력을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던 슈타인라우프, 그는 프리모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여러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슈타인라우프는 그 말을 한 뒤 얼마 안 돼 가스실로 보내졌고 그 죽음은 고유성 없이 총사망자 숫자 안에 포함되었을 뿐이지만, 나는 프리모 레비를 읽었으므로 비인간성의 극치였던 수용소에서도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저항을 택했던 슈타인라이프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지금껏 애틋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창작물이 아닌 논픽션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책들도 소중하다. 그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시아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엮은 책인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각인된 전쟁의 이미지에는 피해자로서의 여성만 있었을 뿐 군복을 입은 여성은 없었다. 조국과 평화를 위해 남성들과 똑같은 크기의 용기로 참전하여 소총병, 간호병, 연락병 등으로 활동했지만 종전 이후에는 ‘사람을 죽였을지 모를’ 거친 여자로 낙인찍힐까 봐 숨어 지내거나 혼자서 전쟁 트라우마를 견뎌야 했던 여성들의 얼굴(반면 남성들의 참전은 경력이 되었고 그들은 영웅시됐다)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아예 몰랐던 셈이다. 최근 러시아가 명분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비극을 보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나로서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대학 시절 나는 학과 공부나 취업 준비에 소홀했다. 그 결과 졸업할 즈음 날 받아준 번듯한 회사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책들을 훑어보며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당시에는 학교 곳곳에 커피자판기가 있었는데, 150원짜리 믹스커피를 한 잔 빼서 도서관 문학 코너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던 그 시간은 언제나 내게는 여행과도 같았다. 여권도, 비행기 티켓도, 짐가방도 필요 없는, 경비와 여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심지어 시대와 지역을 자유자재로 초월할 수도 있는 그 수많은 여행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때의 그 경험이 지금의 내 문장들에도 스며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고 보니 수전 손택은 이렇게도 썼다. 독서는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날 수 있게 해준 ‘작은 우주선’이었다고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접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세계가 책장을 넘긴 순간 바로 눈앞에서 활짝 열릴 때, 그럴 때 창밖으로는 시간이 흐르고 풍경이 변하며 광활한 우주가 펼쳐진다. 그래서 소설을, 소설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책 한 권을 쓰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독서를 먼저 권한다. 아름다운 권유라고 믿는다. 만원 조금 넘는 가격으로 아주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여행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니까. 눈치채셨지만, 이 글은 그 권유의 다른 버전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