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국제학과 교수
박인휘 국제학과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4년부터 본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청와대 안보실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19년 민간통일운동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독자위원회 위원, (사)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 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고 (사)한국국제정치회장(2023년)으로 선출됐다. 2021년부터 본교 총무처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형 발전모델의 대외관계사』(편저), 『탈냉전사의 인식』(편저) 등이 있다.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청마(靑馬) 유치환의 시 ‘깃발’의 한 구절이다. 어릴 때부터 유치환을 좋아했다. 호(號)도 멋있고 이름도 멋있다. 친일 행적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지만, 그가 지은 멋진 시마저 미워할 수는 없었다.

1986년 봄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그 시절의 대학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대학교 4년 8학기 동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두 번 모두 쳤던 학기가 한 번도 없었다. 2학년 겨울에는 6·29 이후 첫 대통령 직선제로 대학생 선거 감시 운동이 있었고, 3학년 가을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는 학교가 잠시 휴교를 했었다. 나는 매우 평범하고 겁 많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때는 분위기가 그랬다. 1986년 3월 말, 최루탄 냄새를 피한다고 도서관을 찾은 어느 날이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는 구절이 떠올라 청마의 시집인 줄 알았는데, 수필집이었다. 1970년 12월 15일 새벽 제주항을 떠나 부산을 향하던 남영호는 차디찬 겨울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326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였다. 동아일보 사회부의 김중배 기자는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으로 뛰어가 먼발치서 발을 굴렀고, 그가 분노와 슬픔에 젖은 펜으로 쓴 기사 제목이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였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언론인들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골라서 수필로 옮긴 에세이집이었다. 송건호, 천관우, 이규태 같은 분들의 수필이 담겨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또 읽었다. 그러다 신문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내 맘속에는 ‘깃발’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하루에 8가지 종류의 일간지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신문지에 찍힌 활자가 그냥 좋았을 뿐이다. 그러다 짧은 지면에 옮기기 어려운 사연을 뒤로하고, 1993년 여름 나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의 거센 파도가 한국에 밀려들었다. 학부 때 전공인 경제학과는 깨끗하게 결별을 선언하고, 국내에서 석사 과정도 거치지 않고, 유학과 함께 국제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유학 시절 첫 2~3년간의 좌충우돌은 당연했고, 새로운 깃발을 품은 내 마음속의 돛단배는 거친 파도에 매일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누구든 토를 달지 않는 20세기 미국 최고의 언론인이고 사상가이다. 아직도 국내에 상당한 팬을 거느린 브루스 커밍스 교수로부터 ‘냉전과 미국외교정책’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였는데, 내게 리프먼이 지은 ‘냉전(Cold War)’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리프먼이 트루먼 행정부의 봉쇄적 대소련 정책을 비판한 1947년도 저서였고, 이 책으로 인해 ‘냉전’이라는 표현이 세계적으로 범용 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리프먼은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의 인터뷰 기사로 1962년 두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고, 이때부터 가끔 “Mr. K”로 시작하는 신문 칼럼을 실었는데, 사람들은 이 칼럼이 흐루쇼프(Khrushchev)에게 보내는 공개 서안임을 알았다. 실제로 흐루쇼프는 그의 칼럼을 읽고서 서방과의 평화공존 정책으로 선회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리프먼의 책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또 읽었다.

2013년 겨울에 나는 정년보장 심사를 통과했다. 이화여대에 온 지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교수로서 더 큰 무게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내 마음속의 깃발이 파도에 덜 시달려도 될 것 같았다. 조금은 색다른 마음으로 2014년 1학기를 맞이했고, 예년보다 일찍 치른 중간고사로 인해 4월 16일 수업이 없는 수요일을 맞이했다. 그렇다. 세월호가 침몰한 그 날이다. 화면에 비친 세월호 뉴스를 접하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이 책을 잊고 살았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불안정한 시간 강사 생활과 이대 부임 후에도 정신없이 보낸 날들 탓이겠지만, 나 자신과 그 책에 많이 미안했다.

집과 연구실은 물론이고, 학교 도서관과 국회도서관까지 검색해 봤지만 도대체 찾을 수 없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청계천 쪽의 헌책방도 알아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가 수원의 팔달문 앞에 있는 유명한 ‘남문서점’에 한 권 남아 있다는 걸 알아냈고, 단숨에 수원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해서 ‘파도야…’는 다시 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내 마음속에는 파도에 맞설 깃발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아흔을 넘긴 아버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대학 3학년인 아이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기를, 이런 식의 소박한 ‘등대’만이 남아 있다.

읽는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읽는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니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깃발’과 ‘파도’를 품은 마음을 한 번쯤은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뭐든 열심히 읽자, 그리고 나를 사랑하자.

박인휘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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