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붉은 옷 입고 승리의 함성 외쳤던 2002년, 약 50만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월드컵의 기운을 받아 환호와 기쁨 속에 태어났으나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신종 플루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메르스가 창궐했다. 이리저리 바뀌는 교육과정에 적응도 원만치 않았다. 수험생 시기에 코로나19가 발생하며 정점을 찍었다. 비운의 세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과연 이들을 비운의 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 2021년 이들이 이화에 오기까지의 삶을 들여다봤다.

 

감염병과 함께한 학창시절

2009년, 신종 플루가 발생했다.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입학 첫 해를 감염병과 함께 시작했다. 안타까울 법 하지만 신종 플루는 이들의 기억에 크게 자리잡지 못했다. 황예령(영문·21)씨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엄마가 건강 걱정을 많이 하신 건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신종 플루에 걸렸던 이예린(간호·21)씨는 비교적 기억이 뚜렷했다. 이예린 씨는 “나중에 본 시험에서 유일하게 틀린 문제가 학교에 못 갔을 때 배운 내용이었다”며 억울했던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안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학예회가 취소돼 대신 친구들 앞에서 마술쇼를 했던 게 생각난다”고 유쾌하게 말했다.

2015년,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는 메르스가 창궐했다. 전국의 학교 약 2000곳에서 휴교령을 내렸다. 국내에서는 약 180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위기경보는 ‘주의’ 단계까지 올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혼란한 상황 속 수험생 시기를 보내야 했다. 4차례에 걸쳐 개학이 연기됐다. 고등학교 3학년은 등교를 강행했으나 학기 중 확진자가 나오면 바로 등교가 중단됐다.

김채은(경제·21)씨는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중간, 기말, 수능 시험을 제대로 못 칠까 봐  겁이 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마스크를 쓰고 공부하는 건 익숙해졌지만 스스로 하루를 관리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수민(환경·21)씨는 “모의고사를 정기적으로 치르며 감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고 밝혔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수험생활에 있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이수민씨는 “수능이 미뤄지니 전에 비해 수능공부를 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황씨는 “코로나19로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이 시기를 기분 나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며 “집에서 책을 읽고 방정리로 기분 전환을 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고 했다.

 

실험대상이라도 된 듯 바뀌었던 교육과정

2015년, 중학교 입학 후 이들이 접하게 된 것은 자유학기제였다. 2014년부터 시행된 자유학기제는 2015년 전국 2551개 학교로 확대 운영돼 많은 2002년생 학생들이 해당 제도를 경험했다.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 동안 다양한 체험활동 중심으로 교육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제도다.

당시 자유학기제 종료 이후 갑작스러운 학습 방식 변화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학생들 역시 자유학기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수민씨는 “자유학기제가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며 “신청 인원이 적으면 수강 기회가 잘 안 열려 원하지 않던 직업군을 체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김씨는 “진로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시험에서 벗어나 다양한 외부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고 밝혔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7년에는 2021학년도 수능개편시안이 발표됐다. 이에 따라 특수목적고등학교,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일반고등학교 등 진학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수능개편은 1년 유예됐으나 고등학교 진학 이후 새로운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됐다. 수능에 적용되는 교육과정과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정 체제가 달랐다. 이예린씨는 문제집을 샀다가 교육과정이 달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얘기하며 “그 이후부터는 꼼꼼히 확인하고 사는 습관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 문이과 구분을 없애는 대입개편이 2022학년도 수능부터 시행돼 이들은 재수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황씨는 당시를 두고 “어쩌다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마치 실험대상이 된 듯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들이 마냥 낙담하고 좌절한 것은 아니다. 황씨는 “포기하면 대학을 못 갈 테니 어려운 과목도 계속 붙들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비운의 세대? 이제는 강인한 세대

초중 입학, 고3 기간 등의 시기에 감염병과 제도 변화의 영향을 받은 이들을 두고 일각에서는 ‘비운의 세대’ 혹은 ‘저주받은 세대’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씨는 “저주받은 세대라기보다는 모든 사건에서 타격을 크게 받은 나이대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학년이 부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수민씨는 02년생이라는 사실이 억울하지 않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의 좋은 기운을 받고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황씨도 “02년생들이 불운의 세대라고 말하는 것보다  2009년, 2015년, 그리고 2020년이 힘든 해였다고 말하는 게 더 좋다”며 “온갖 어려움이 있어도 딛고 일어선 강인한 세대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낸 이들은 이제 이화에서의 도약을 꿈꾼다. 김씨는 “앞으로 이화여대에서 만날 교수님, 선배, 동기들 모두 기대된다”며 “상상만 하던 캠퍼스 라이프가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아서 신난다”고 말하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키워드

#21학번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