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현 기자 9421d@ewhain.net
김예린씨가 직접 개발·제작한 ‘페이스쉴드’ (face shield)를 착용한 모습. 그는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삼성전자에 페이스쉴드를 기부했다.
이다현 기자 9421d@ewhain.net

“사실 처음부터 개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에요. 대기업 입사 실패 후 우연히 보게 된 한 외국인의 유튜브 영상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

본교 독어독문학과(독문) 졸업 후 발명가의 길로 뛰어든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예린(독문·15년졸)씨다. 실리콘 퍼프를 개발하는 ‘실리블’(Silible) 브랜드의 대표인 김씨는 최근 코로나 방역 물품 ‘페이스쉴드’(face shield)를 개발해 기부했다.

김 대표는 직접 개발·제작한 페이스쉴드 100개를 각각 1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19일 삼성전자 측에 기부했다. 기부 물품은 신촌세브란스병원 감염관리실 직원과 삼성전자 방문객을 맞이하는 경비원 가드에게 전달됐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부족 사태와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서 일하는 근무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페이스쉴드는 페트병 재질인 페트(PET)폴리염화비닐(PVC)을 사용해 시야가 흐리다. 김 대표는 “시중에 판매되는 페이스쉴드를 다 착용해봤다”며 “직접 개발한 페이스쉴드는 비행기 유리 재질인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를 사용해 맑고 투명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강도, 내충격성, 편리성 등을 고려해 제 품을 개발했다.

“고품질 플라스틱을 사용해 형상기억 방식으로 만들어 금방 부러지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품 뒷부분은 안전벨트처럼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벨트로 만들었죠.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을 고려해 최대한 편하게 만들었어요.”

제작은 신소재 제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함께 했는데, 김 대표가 먼저 기부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을 개발했다. 제품 제작은 전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김 대표는 매일 50개의 페이스쉴드를 제작하며 날을 새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걸 직접 쓸 분들을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전했다.

페이스쉴드를 개발하기 전부터 김 대표는 꾸준히 발명 활동을 이어왔다. 김 대표는 작년 6월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 여성발명왕 엑스포’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해 경기도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창업지원 프로그램 ‘슈퍼끼어로 피칭데이’에도 참여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한 탈부착이 가능하고 안에 천(망사)을 넣은 화장용 퍼프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독문과를 졸업해 발명가가 되기까지 김 대표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김 대표는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독일 자동차를 좋아해 독문과에 진학했어요.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데 말이죠. 그러다 독일 문학의 심오하고 우울한 매력에 빠져 본교 독문대학원까지 진학했어요. 학부 시절에는 친구를 따라 중앙컴퓨터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어쩌다 보니 동아리 회장까지 했네요.” 김 대표에게 재고 따지는 것은 필요 없었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

그러나 일이 늘 원하는 대로 풀리진 않았다. 김 대표는 독문대학원을 다니다 부상으로 휴학했고 결국 자퇴했다. 이후 대기업 입사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후 공백기가 찾아왔다. 김 대표는 오히려 그 순간을 즐겼고 이 공백기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때 유튜브에서 어떤 외국인이 브래지어 실리콘 패드로 화장하는 것을 봤어요. ‘아니 이렇게 얼굴에 화장할 만한 소재가 없나’ 싶어 아버지한테 인체에 무해한 실리콘 퍼프 개발을 제안했어요. 아버지가 무독성 신소재로 환자정보확인밴드(ID밴드)를 만들어 병원에 납품하고 계셨거든요. 바로 착수해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을 개발했죠.”

김 대표는 이 영상에서 영감을 얻어 ‘무독성 재질 100% 실리콘 퍼프’를 개발했다. 그렇게 실리블의 대표가 됐다. 본교 재학 시절 그는 개발과 화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제품 개발을 위해 화장해보며 스펀지 퍼프가 피부에 안 좋은 값싼 재질로 만들어진 것을 알았다. 그 후 김 대표는 “이화인으로서 여성을 위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화’는 김 대표가 계속 개발하게 하는 원동력 그 자체다. “훌륭하고 따뜻한 동문과 후배를 보며 에너지를 얻고 자극을 받아요. ‘내가 이화인으로서 뭐라도 해야지’ 싶죠.”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전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주저 말고 바로 도전하길 바라요. 사랑합니다 후배벗들.”

 

 

페트: 널리 알려진 페트병의 재질로 투명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폴리염화비닐: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 중 하나로 염화비닐을 주성분으로 한다.

폴리카보네이트: 가열하면 변형하기 쉽고, 냉각시키면 본래의 형태로 굳어지는 플라스틱.

형상기억 방식: 여러 겹의 판재 플라스틱을 사용해 물리적으로 탄성을 갖게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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