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처벌규정, 피해자 보호제도는 아직

▲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 피해자 입 막는 권력 구조2차 피해

  본지가 2월20일부터 약 2주간 공모한 미투 수기에서 대학생이 데이트, 엠티 등 일상생활에서 겪은 성희롱, 성폭행 피해 사례가 다수 접수됐다.

  본교생 C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멀티방(영화와 인터넷, 게임, 노래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설)을 찾았다. 친구들과 방문했을 때 영화도 보고 간식도 먹었던 기억이 있어 흔쾌히 갔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C씨의 의사를 무시한 채 야한 장면이 등장하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틀더니, 억지로 키스를 시도하며 C씨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C씨는 “기분이 너무 더러웠고 겨우 밀어냈다”며 “이 일이 있고 나서 페이스북도 비활성화 하고 연락처에 남자들은 모두 지웠다.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입술을 박박 문지를 정도로 상처가 크다”고 했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D씨도 “개강파티 날 한 남자 선배가 ‘시간이 늦었다’며 자신의 자취방에서 하루 묵고 가라고 했다. 차가 끊겨 따라갔는데, 당연히 성관계를 전제로 온 것처럼 굴었다”며 “싫다고 거절하는 나에게 ‘빼지 말라’며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해 무척 불쾌했다"고 토로했다. 또 "선배들이 여학생에게만 웨이브 춤을 추며 술을 마시도록 시킨다"며 "그게 성희롱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대다수는 해당 사건을 그냥 ‘묻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사건을 공론화했을 경우 피해자가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C씨는 “데이트폭력 경험 사실을 타인에게 말하면 더 수치스러울 것 같아 말하기가 꺼려졌다”며 “만약 주위 사람들이 내 경험을 우스갯소리 취급하거나 안줏거리 삼는다면 내가 못 버틸 것 같다"고 말했다. 

  위계관계가 확실한 교수-학생 간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교수는 학업, 진로 등 학생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직장인인 E씨는 “학부생 당시 수업을 듣던 교수와 우연히 가진 술자리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언행이 있었지만, 법적 대응을 하면 오히려 ‘꽃뱀’으로 몰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쉽사리 나설 수 없었다”면서 “용기 내어 교내 관련 기관과 상의했지만, 기관에서도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교수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이란 답변만 돌아와 무기력함을 느끼고 결국 모든 방법을 접었다”고 했다.

  재학 시절 교수와의 술자리에서 불미스러운 경험이 있었다는 F씨도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 학생들이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 ‘학교 밖의 세상은 이런가 보다’하며 스스로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본교 이주희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의 본질은 여성 대 남성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직장 혹은 일자리에서의 권력의 남용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 상사가 남성 하급자를 상대로, 또는 높은 직급의 여성이 하위직 남성을 상대로 성희롱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며 “미투 운동은 일자리 및 직장에서의 민주화, 그리고 권력 남용의 방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며 언론에서도 이렇게 다루어야 하는 이슈”라고 전했다.

 

▲ 더 나아가 제도적 뒷받침 필요

  대학가에선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우려 없이 미투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본교 ‘여성해방 백퍼센트 이대 실천단’은 3월8일 대학생 공동행동에서 학생들의 성범죄 피해 사례를 대독할 계획을 밝혔고, 고려대 페미니즘 학회 ‘여정’은 여성의 날을 맞아 학내 부스사업 진행이 예정돼 있다.

  젠더법학연구소 장명선 교수는 “성폭력피해자에게 ‘미투’를 강요하기보다는 ‘위드 유’ 또는 ‘미 퍼스트’ 운동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미투 운동은 과거 부천서 성고문 사건, 서울대 성희롱 사건 등 선구자적 여성들의 용기와 여성단체들의 지속적인 운동의 결과이며, 피해자들이 더는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관련 법제정비 및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2차 피해를 막지 않으면 신고를 할 수도 없다”며 “현재는 2차 피해를 신고하고 권리 구제하는 기관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가해자에 대한 정당하고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성평등센터에 따르면 학내에서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 규정에 따라 ‘성희롱심의위원회’가 열리는데, 위원회는 교무처장, 학생처장, 총무처장, 양성평등센터 소장 및 총장이 위촉하는 3인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만약 징계 권고가 있으면 교원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게 된다.

  장 교수는 “위원회는 대부분 교내 교수들로 구성돼 있지만 외부 성폭력 전문가 등이 들어와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접수하고 조사해서 처리된 부분은 그 사건이 무슨 내용인지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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