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는 여성 개개인의 리더십, 협동심 등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올림픽을 비롯한 대부분의 스포츠 대회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스포츠 사회에서,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는 스포츠 내 자리한 남녀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도록 도와준다. 이는 나아가 스포츠 외의 다른 활동을 할 때에도 여성들에게 ‘여성도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결국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확대되면, 사회적으로도 여성인권을 신장시키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20대 여성들의 스포츠 향유 실태는 어떨까.  

  본교생 이지수(영문·13)씨는 일주일에 1시간씩 두 번 본교 체력단련실에서 운영하는 ‘보수 필라테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목적은 다이어트를 위함이다. 지난 1년간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그는 교환 기간 동안 증가한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여름 방학동안 ‘기구 필라테스’ 학원에 다니며 6kg 가량의 살을 빼기도 했다. 이지영(국문·13)씨는 현재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경험한 스포츠 활동은 고등학교 졸업 직전 두 달간 헬스장을 다닌 것이 전부이다. 역시 목적은 다이어트였다. 

△여성들의 운동은 체중감량 등의 미적 목적이 주를 이뤄
  20대 여성의 스포츠 활동은 주로 다이어트 등 몸매 다듬기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여성 스포츠의 현실이다. 실제로 본교 사회체육교육센터 체력단련실에서 제공하는 운동 프로그램 중 체중 감량 등의 미를 가꾸기 위한 프로그램이 인기다. 본교 체력단련실에선 ▲요가, 필라테스, 교정프로그램 등의 GX 프로그램 ▲스쿼시 프로그램 ▲테니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체력단련실 임솔 팀장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56개의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이는 종목은 ‘필라테스’다. ‘발레’와 ‘필라테스’ 또한 3년 이상 꾸준히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임 팀장은 “이화인의 건강유지와 증진을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프로그램은 여성 선호도가 높은 요가, 필라테스, 댄스 종목을 위주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종목에 도전하는 여성들인식 미흡·지원 부족으로 어려움 겪어 
  요가, 필라테스 등 여성의 선호도가 높은 운동이 아닌 주로 남성들이 즐기는 축구, 농구 등의 스포츠를 즐기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남성 위주의 스포츠 종목 참여에는 여성들을 위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서민지(행정·13)씨는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스포츠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자칭 ‘스포츠 마니아’다. 방송댄스의 경우 본교 체력단련실에서 주2~4회 참여하고, 매주 1번은 아이스링크장을 찾아 본교 피겨스케이팅 동아리 ‘ESST(Ewha Synchronized Skating Team)’ 사람들과 함께 스케이트를 탄다. 그는 남성들이 주로 즐기는 축구, 농구에도 도전하고 싶어 한다.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서씨는 “본교 체육동아리는 대부분 체육 전공자 대상으로 한다”며 “학교에서 공을 차려 해도 찰 수 있는 잔디구장이나 농구코트도 없고, 같이 팀플레이를 즐길 친구 찾기도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남성들의 스포츠’에 뛰어들어 도전해도 주변 시선은 여성들을 힘들게 한다. 본교 체육과학부 소속 축구 동아리 ‘ESSA(Ewha Sports Soccer Association)’ 주장인 이민선(체육·14)씨는 “학교에 잔디 코트가 없어 중산체육공원에 가서 연습하다보면 종종 남자들과도 함께 시합을 하게 된다”며 “사회에 만연한 ‘축구는 남자의 종목’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함께 경기에 참여하는 남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경험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올해 4월 남자 축구팀과 경기를 할 때, 여자인 우리보다 남자인 자신들이 더 축구를 잘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들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도전적인 플레이 기술을 펼쳤다”며 “일부러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기도 해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힘든 스포츠 활동 여건에도 이씨는 축구를 통해 얻는 긍정적인 영향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여럿이 함께 협동하는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 보다 혼자 다니는 것이 더 편했었다”며 “축구를 하면서 다른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협동심에 대해서도 배우고 ‘함께’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고 전했다.

△스포츠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인식
  이렇게 여성들이 향유하는 스포츠 활동의 폭이 좁은 배경에는 스포츠 분야 내 뿌리 깊은 성차별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 대한체육회 산하 62개 가맹 경기단체 및 시도체육회 임원의 여성비율은 단 8%에 불과했다.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성차별적 인식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교육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초··고 학교 체육 현장에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한 대우가 있던 것이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학생이란 동등한 자격으로 수업 받는 타 교과목과는 달리 학교 체육 수업에서는 남녀를 구분해 학습했다.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 아래 남학생에겐 활동적인 축구, 농구 등의 운동을 시켰다. 이에 반해 여학생에게는 피구, 발야구 등을 시키고, 심지어 그들의 체육수업을 자율학습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홍은아 교수(체육과학부)는 “나의 학창시절부터 학교 체육 시간에 ‘여학생은 피구, 남학생은 축구’공식이 존재했다”며 “이는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스포츠 종목이 다르다는 잘못된 인식이 전제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체육교사 정재경(여·53·충남 천안시)씨도 여학생들의 스포츠 참여가 남학생들에 비해 저조하다며 그 원인으로 성별에 따라 참여할 스포츠 종목을 규정짓는 것을 꼽았다. 그는 “청소년들의 체육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2007년 정부에서 학교스포츠클럽을 도입하면서 의무적으로 모든 고등학생들이 방과 후 스포츠클럽에 참여해야 한다”며 “이전에 근무했던 남녀공학 학교의 경우, 남학생에겐 축구, 농구 등 활동적인 종목을 시킨 반면 여학생들에겐 줄넘기, 에어로빅 등에 놀이에 가까운 종목을 시켰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제는 학교 체육 내 성차별을 해결해 여학생의 스포츠 참여를 이끌어낼 때라고 주장한다. 그는 “교사들이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고 성별에 상관없이 흥미로운 종목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며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동아리를 만드는 등 여성의 스포츠 참여 확대에 주체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참여 내 양성평등 위한 법안 제정 움직임 일어나 
  학교 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국내에는 한국형 ‘타이틀 나인’(Title IX)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의 타이틀 나인은 공립학교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동등하게 스포츠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권리를 부여하는 연방법이다. 법 제정 이후 공립학교 내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동등한 숫자의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풋볼이나 레슬링처럼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종목들이 참여도 자유로워졌다.  

  타이틀 나인 이전 미국의 상황도 한국과 비슷했다. 대학 여자운동선수 비율은 15%였고, 고등학교 여자운동선수 비율은 7%에 불과했다. 또한, 여자 팀에는 제대로 된 지원이 없어 여자 운동선수들은 자비로 장비를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타이틀 나인 시행 이후 여학생은 남학생과 동등한 스포츠 참여 기회와 환경을 부여받았고, 스포츠에 있어 남녀 차별을 하는 학교에는 법적인 제제가 가해졌다. 법의 힘에 의해 스포츠에서의 양성평등이 실현된 것이다. 미국의 타이틀 나인 성공 사례를 보고 한국에서도 법을 통해 스포츠 교육 내 성차별을 타파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13년 9월과 재작년 4월 안민석 의원은 스포츠 양성평등 관련 토론회를 개최해 한국형 타이틀 나인 제정에 대한 사항을 논의했다. 이 토론회에서는 학교체육 진흥법에 ▲여학생 체육 활성화 지원 ▲여학생을 위한 체육 시설 확충 ▲여학생이 선호하는 스포츠클럽 종목 운영 등의 항목을 신설해야한다는 내용이 오갔다. 구체적인 법 조항 명시를 통해 여학생의 스포츠 참여 기회를 보장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 체육 학회인 ‘한국여성체육학회’도 앞장섰다. 한국여성체육학회는 작년 6월 춘계학술대회를 열어 ‘여학생 체육 활성화를 위한 양성평등 선포식’을 개최해 체육 양성평등법 제정을 통한 ▲여학생 및 여성의 활발한 체육활동 참여 및 사회진출 촉진 ▲학교 현장에서 양성평등 체육 교육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 마련에 대해 논의 하는 등 한국형 타이틀 나인 입법을 위한 움직임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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