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성역할 탈피하려는 미디어의 진화

2020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조희영씨가 본교 운동장에서 공을 높이 올리고 있다. 김지원 사진기자
2020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조희영씨가 본교 운동장에서 공을 높이 올리고 있다. 김지원 사진기자

 

"저녁 7시 전에는 바다에 있어서요. 답장이 느릴 수도 있습니다."

김지원(생명·18)씨는 요즘 서핑에 푹 빠져있다. 수트를 입고 보드에 몸을 맡긴 채 물살을 가르는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방송에 나와 서핑을 하는 운동선수들과 예능인을 보고 호기심에 서핑을 시작했다. 체험 강습 한 번에 마음을 뺏긴 김씨는 현재 서핑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2~3일에 한 번씩 무조건 바다에 들어간다. “한번 시작하면 최소 3시간은 바다와 함께하고 있어요.”

조희영(사보·19)씨는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매주 5회씩 운동을 나가고 있다. 고등학교 아마추어 배구부 출신인 조씨는 “올림픽 때 예전에 같이 운동했던 친구가 갑자기 운동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며 우연한 계기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사이 스포츠를 향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올림픽 때문에 쏠리는 반짝 관심이 아니다. 시청을 넘어 실천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트렌드다. 다양한 미디어와 인물 파급력으로 나타나는 20대 여성들의 스포츠 열풍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양한 지표들, 스포츠 향한 여성의 관심 상승 나타내

출처=네이버 데이터랩(Naver DataLab)
출처=네이버 데이터랩(Naver DataLab)

올림픽 이전부터 이미 20대 여성들은 운동에 대해 꾸준히 높아지는 관심을 보여왔다. 네이버(naver.com) 통합검색에서 특정 단어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검색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랩 검색어 트렌드에 따르면, 2016년 1월1일부터 현재까지 ‘스포츠’와 ‘체육’이라는 키워드의 검색량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검색량은 이번 올림픽, 그중에서도 여자배구 A조 예선 한일전이 벌어졌던 2021년 7월31일 가장 높은 수치(100)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최고치만큼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높은 검색량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부터는 다양한 미디어 속에서 보조자가 아닌 플레이어로서의 여성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2020년 2월26일 유튜브(youtube.com)에 첫 영상이 업로드된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운동뚱) 시리즈가 있다. 코미디언 김민경씨가 축구, 이종격투기, 사격, 헬스와 같이 다양한 분야의 운동을 시도해보는 시리즈인 ‘운동뚱’은 평균 127만 회라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80회까지 업로드를 마쳤고 조회 수 300만 회 이상의 영상 6개와 400만 이상의 영상 1개를 보유하며 프로그램의 인기를 증명했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이 아닌 기존 방송가도 여성의 스포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20년 8월4일 첫 방송을 송출한 E채널 제작 버라이어티쇼 ‘노는 언니’에는 박세리를 비롯한 펜싱, 배구, 피겨 스케이팅 등 다양한 종목의 여성 운동 선수들이 등장한다. 현재 시즌 2를 방영 하는 ‘노는 언니’는 인기에 힘입어 2020년 연말 굿즈 판매를 시도했고 5분 만에 준비 수량이 전량 매진되는 등 케이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2021년 설날 특집으로 파일럿 방영된 이후 정식 편성돼 6월16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SBS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들)도 마찬가지다. 첫 방송부터 8.4%라는 높은 시청률로 시작하며 평균 6.6%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골때들’은 동시간대 공중파 드라마/예능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높아지던 여성 스포츠를 향한 관심은 2020 도쿄 올림픽(도쿄 올림픽) 중계를 통해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도쿄 올림픽 지상파 3사 합산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중계가 바로 8월6일 진행된 여자배구 브라질전이었기 때문이다. 시청률 조사기업 TNMS에 따르면 해당 경기의 평균 전국 가구 시청률은 36.8%였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은 40.9%까지 치솟았다. 여자배구 브라질전은 1231만 명 동시 시청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2016 리우 올림픽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남자 축구 8강 온두라스전의 34.5%를 2.3%포인트 앞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인기는 계속됐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었던 김연경 선수는 서든 어택 콜라보, KT, 파리바게트, 삼립 등 다양한 기업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미디어와 여성 소비자, 상호작용 통해 트렌드 만든다

본교 내 스포츠에 대한 관심 추이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1부터 5까지 숫자로 표현하라 했을 때 응답자들은 위 그래프와 같은 답변 추이를 보였다. 2020년 이전의 관심도에 비해 2020년부터 현재까지 관심도는 4와 5에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관심도의 하위권 그룹(1, 2)은 없어졌고 가장 많은 그룹은 관심도 3이 아닌 4로 변화했다.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힌 요소는 바로 미디어였다. 미디어는 20대 여성들이 운동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계기에서 더 나아가 실천을 결심할 수 있게 만드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었다. 김지원씨는 “스포츠를 도전하며 즐기는 모습을 접한 제 친구들이 서로 영상을 공유하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미디어는 시청자에게 롤모델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올림픽 이후 배구 단체 레슨을 받고 있다는 김민하(전전·19)씨는 “여성 스포츠가 인기가 없어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미디어를 통해 어린 세대들에게 운동선수로서의 여성을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교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연구소 정사강 연구위원은 “여성의 스포츠 관련 미디어 트렌드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련된 사회의 변화, 특히 2030 여성 수용자들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이전까지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에게 요구됐던 성역할이 스포츠 분야에서도 투영되어 왔다”며 “여성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영역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여성 수용자들의 변화로부터 미디어 또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여성들은 오히려 스포츠에 참여함으로써 정형화된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5년 넘게 주짓수를 하며 중앙동아리 ‘이화주짓수’의 회장을 역임했던 이영인(교육·20년졸)씨는 스포츠가 자신의 많은 것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에 오기 전 마른 몸에 대한 강박으로 식이장애까지 겪어 봤다”며 “운동을 시작한 후 몸을 미용과 재단의 대상이 아닌 ‘여기서 어떤 근육을 키우면 기술을 더 잘 구사할 수 있을까’와 같이 기능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운동을 향한 뜨거운 관심, 아직 해결할 문제 많아

스포츠를 향한 20대 여성들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할 문제는 많다. 본지 1525호 (2016년 9월26일 자)에 따르면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성차별적 인식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 교육 현장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본지는 이미 5년 전 ‘남학생에게는 활동적인 축구, 농구 등의 운동을 시키고 여학생에게는 피구, 발야구 등을 시키거나 자율학습을 시키는 행태에 대해 다뤘지만,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학생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다.

본지에서 실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포츠에 관심 가지지 못했던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요소는 전체 응답 중 33%를 차지한 ‘기존 체육 교과 미비’였다. 응답자들은 교과 상 체육 시간 만으로는 스포츠에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없었고 설사 흥미를 느꼈다 해도 쉽게 스포츠의 향유로 이어질 수 없는 환경임을 토로했다. 이어진(심리·20)씨는 “스포츠를 직접 해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기더라도 이전까지 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경우라면 부담이 된다”며 “무엇보다 같이할 사람들을 찾는 것이 어려워 혼자서는 스포츠를 실제로 해보기까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저 없이 스포츠를 도전해볼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 형성, 그리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위 설문조사는 8월31일~9월1일까지 2일간 진행됐으며 총 52명의 응답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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