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된 소녀들’ 제작한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 김혜정 감독, 기획팀 김신현경씨 인터뷰

▲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의 기획총괄 김신현경씨(왼쪽)와 김혜정 감독 최형욱 기자 oogui@ewhain.net

  “여성국극이 가진 에너지의 10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했어요. 배우를 만날 때마다 기운에 압도됐죠.”(김혜정)

  ‘왕자가 된 소녀들’은 1950~1960년대 전후 한국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여성국극(극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이 여성인 창극의 한 갈래)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김혜정 감독과 영화 제작을 처음 제안한 김신현경 강사(여성학과)를 7일 오전 신촌 전광수커피에서 만났다.

  “자료 취재를 위해 여성국극보존회를 처음 찾아간 날만 해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어요. 우리가 찾아 헤매던 배우가 모여서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여성 공동체를 만들고 계신 모습을 봤을 때 해답을 찾은 기분이었어요.”(김혜정)

  ‘영희야 놀자’는 다큐멘터리 제작 등 여성주의 기획 활동을 하는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이다. 김신씨는 2007년 가을 영희야 놀자 팀원에게 1950년대 유행했던 여성국극을 연구 주제로 제안했다. 큰 기대 없이 보러 간 첫 공연은 모두를 매료시켰다.

  “1950년대에 가장 유명한 공연 장르였던 국극이 유신 시대를 지나며 그 위상을 완전히 잃었다가, 다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무엇보다 무대에서 칠순이 넘는 노령에도 여전히 멋진 기량을 뽐내는 배우의 매력에 빠져 팬이 될 수밖에 없었죠.”(김혜정)

  김 감독은 기존 여성국극을 연구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여성국극의 전체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존 자료가 대개 역사가 깊은 여성국극을 깊이 있게 해석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느껴서다.

  “잠시 유행했던 기형적인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여성국극이 훨씬 풍부한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도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아쉽죠. 상영 일정이 끝나면 출간 작업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김신현경)

  여성국극은 관련된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구술에 의존하는 부분이 컸다. 영화 제작 때 인터뷰와 영상 자료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편집만 1년이 걸렸다. 제작 여건상 담을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고, 배우를 취재하는 부분도 난제였다. 당대 최고의 남성역 배우였던 김경수씨를 비롯해 현재 외국에 살고 있는 배우는 더욱 취재하기 어려웠다. 가족 등 사생활 보호 때문에 취재를 거절한 사람도 있었다.
김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여성국극이 무대 밖에서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사례를 발견하기도 했다. “당시 국극인은 가족의 의미를 혈연이 아닌 관계로 다양하게 규정했어요. ‘언니-동생’이나 ‘이모-조카’의 관계가 여러 의미로 사용됐죠. 결혼을 했으면서도 일반적인 여성의 성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결혼하지 않은 분도 많아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리 젠더가 어떻게 부유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어요.”(김혜정)

  김 감독은 여성국극을 연구하면서 공연 집단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여성주의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집단으로서 문화기획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여성국극에서 단순한 전통적 가치를 넘어서 여성 공동체 특유의 연대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은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경쟁 상대여서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싸우고 화내기도 하지만 무대를 올리기 위해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 국극인을 보고 공동체의 연대감을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김신현경)

  “국극이 절정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10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국극이 여전히 배우와 관객의 삶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수십 년 전 국립극단에 밀려 내리막길에 막막할 때도 배우의 ‘좋아서 한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도 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김혜정)

  왕자가 된 소녀들은 독립영화라는 점 때문에 배급이나 흥행이 어렵지만 입소문 덕분에 상영이 이어지고 있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5월 2주차까지 인디스페이스, 5월 말까지 인디플러스에서 상영된다.

  “여성국극에 대해 최대한 다루려고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아요. 이번 기회로 많은 사람이 국극에 대해 알게 돼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국극을 다루는 매체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김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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