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9천명 중 0.27%, 남자 이대생을 만나다

<편집자주>
이번 학기 이화여대에 다니는 남학생은 전체의 0.27%, 1만9천명 학생 중 총 51명이다. 학점교류 교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타대학 남학생 10명, 교환학생으로 온 국외대학 남학생 41명으로 지난 학기 추산 31명에 비해 20명이 늘어났다. 그들은 왜 한때 금남의 구역이었던 여대의 문을 두드렸을까. 여대의 캠퍼스를 활보하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을 받고, 동아리 활동까지 하는 연세대 김성윤(경제·04)씨와 교환학생 왕금보(국문·08)씨를 만났다.

식은땀이 흐른다. 모두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다.

여성학 강의를 듣기 위해 대형 강의실을 빼곡히 메운 이화인들 사이에 긴장된 표정의 남학생 한 명이 보인다. 우리 학교 여성학수업을 듣는 연세대 학점교류 학생 김성윤(경제·04)씨다.

“어휴∼ 말도 마세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어요” 김씨는 첫 수업부터 말로만 듣던 ‘무시무시한’ 여대 속으로 들어온 걸 온몸으로 느꼈다. 처음의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철회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한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수업을 계속 듣기로 마음먹었다.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여학생들의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불만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남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일들이 여자들에게는 분통을 터뜨릴 만큼 불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여대에서 여성학 강의를 듣는 ‘용기 넘치는’ 그는 “여대라는 특수한 집단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 중 여대의 액기스는 여성학이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여성학 수업을 선택했죠”라고 말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 중 ‘데이트 강간’이란 개념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성친구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을 때 상대방의 소극적인 거절을 암묵적 동의로 간주해 관계를 강요하는 행동이 성추행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이 ‘NO’라고 말했을 때, 그 대답에 약간은 반신반의하죠.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 대답을 가감 없이 ‘100% NO’로 받아들여야겠어요” 그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의사표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학 공부에 열심이지만, 온전히 여자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점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특히 남자도 여자처럼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옳다는 의견, 남자들이 분위기 전환으로 여성을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이 불쾌하다는 의견을 들었을 때 그랬다. “대개 여자들의 입장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따금 여자들도 남자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서운했어요”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라는 위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조심스레 고백했다.

두 달 동안 여대를 다녀보니 남녀 공학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혜택도 있었다. 김씨는 보통 남자 화장실은 지저분하기 마련인데, 여대의 남자 화장실은 물기 한 방울 없이 깨끗하다고 말했다. 그는 “VIP 고객이라도 된 양 널찍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남자’의 시선이 아닌 ‘한 사람’의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김성윤씨. 그러나 여자들 천지인 이곳에서 그가 100% 당당할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하다. 앞으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질 ‘여대에서 여성학 정복하기'가 기대된다.

글·사진: 전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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