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9천명 중 0.27%, 남자 이대생을 만나다

<편집자주>
이번 학기 이화여대에 다니는 남학생은 전체의 0.27%, 1만9천명 학생 중 총 51명이다. 학점교류 교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타대학 남학생 10명, 교환학생으로 온 국외대학 남학생 41명으로 지난 학기 추산 31명에 비해 20명이 늘어났다. 그들은 왜 한때 금남의 구역이었던 여대의 문을 두드렸을까. 여대의 캠퍼스를 활보하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을 받고, 동아리 활동까지 하는 연세대 김성윤(경제·04)씨와 교환학생 왕금보(국문·08)씨를 만났다.


“아주머니, 밥을 많이 주세요!”

예의 바른 목소리가 학생식당(학식) 안에 울려 퍼진다. 2미터는 되어 보이는 큰 키의 교환학생 왕금보(국문·08)씨가 배식구 너머로 밥그릇을 내밀고 있다. 북경대 조선어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왕씨는 8월 우리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입학했다.

“두 달 만에 체중이 6kg나 줄었어요. 이화여대 학식은 밥을 너무 조금 줘요.”

처음 밥공기를 열어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왕씨. 밥그릇의 2/3도 안 되는 양은 너무 적었다. 그래도 첫 주는 묵묵히 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사방천지 여대생 뿐이라 주눅이 들었다. 둘째 주부터는 용기를 냈다. 큰 소리로, 다음 날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밥을 더 주세요. 세 그릇도 거뜬히 먹을 수 있어요!”

그래도 살은 계속 빠졌다. 캠퍼스의 가파른 지형도 한몫했다. 국제기숙사에서 학관 앞 비탈잔디를 거쳐 이화­포스코관(포관)까지 오를 때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등산을 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이 평지인 북경대에 익숙해져 있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대생들은 하이힐을 신고도 잘 다니시더라고요. 멋있기도 하고, 신기했어요.”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캠퍼스의 경사만이 아니었다. ‘한국문학의세계’ 수업으로 매주 학관을 찾는 왕씨는 복잡한 건물 구조 때문에 여러 번 길을 잃었다. 강의실에 찾아가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남자 화장실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힘들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제가 공부하기로 선택한 학교니까요.”

왕씨가 이대를 만난 건 지난해 부모님과 함께 한국여행을 왔을 때다. 그때 가이드는 이화여대를 ‘개교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여자대학교’라고 소개했다. “100년이 넘은 여대라니. 인상 깊었죠. 중국에는 아예 여대 자체가 없으니까요. 북경에 돌아가 계속 생각했어요. 꼭 가보고 싶은 학교라고.”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 학교 생활이었기에 그는 금세 적응했다. 지금은 친구들과 학식의 라면을 즐길 정도다.

왕금보씨는 피스버디(Peace Buddy)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그의 버디를 맡은 김소현(국제·07)씨는 왕씨의 열정을 칭찬했다. “금보는 보통 교환학생들과 달라요. 하루는 금보가 희망 답사 장소들을 보여줬는데 열 군데가 넘어 깜짝 놀랐어요.”

이뿐만이 아니다. 왕씨는 한국어 나눔 동아리 이클레스(EKLES)에 가입해 우리말을 공부하고, 교내의 여러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그 중 특히, 학관에서 학우들과 김밥을 말아 먹은 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12월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왕씨. 그는 다음 봄 학기에 북경대의 또 다른 친구가 교환학생으로 올 예정이라며, “앞으로 이화에 올 다른 친구들을 위해 자세한 한국어 문법 수업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남겼다.

중국에서 한국어 특기를 살려 일하고 싶다는 왕씨. 이화에서의 삶을 기억한다면 어떤 가파른 길이든 거침없이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사진: 전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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