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다 자는 고요한 밤에/나만 혼자 일어앉아/지나간 일 펼쳐 놓고/오늘 내 설움 생각하니/산 밖에는 태산이로다/물 밖에는 대해로다’


지난 6월에 작고하신 김순덕 할머니의 ‘창부(唱夫)타령’이다. 할머니의 육성이 흘러나오는 헤드폰 앞에는 흰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할머니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속의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노래를 다 부른 할머니는 경상도 사투리로 녹음하는 이에게 묻는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김순덕 할머니는 17세 때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3년만에 조국에 돌아와서도 그 사실을 말 못한 채 마음에 묻고 살았다. 93년 경기 광주 ‘나눔의 집’으로 들어가 그 시절을 증언하는 그림을 그리며 사시다가 지난 6월30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기 위해 수요집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던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할머니들도 모두 고령이시다. 그만큼 시간은 흘렀고 할머니들이 겪은 악몽은 화석같은 역사가 되어간다. 소리가 나오는 게 신기한지 헤드폰을 끼고 까불며 노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는 위기의식이 든다.


모든 것이 희미해져가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진실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더 늦기전에, 아직 동시대에 생존해있는 그분들의 역사적 증언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시는 많은 할머니들을 찾아 그들의 한을 기록하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떠한 대응도, 어떠한 분노도 그 다음이다.


김순덕 할머니는 지나간 역사를 잊어가는 우리에게 물으신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할머니의 ‘태산같고 대해같은 설움’의 의미를 우리는 잘 모른다. 여쭤보고 싶지만 할머니는 이미 고인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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