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사전시관 상설·특별전

우리들의 할머니는 어떤 교복을 입고 어떤 구락부(클럽) 활동을 했을까. 그 시절에도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했을까. 이런 우리 할머니 세대의 삶과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여성사전시관에서 해소할 수 있다.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 위치한 여성사전시관은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소외돼 있던 여성의 역사를 발굴해 재조명한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상설·특별전을 통해 개화기부터 현대까지 약 100여 년간 흘러온 여성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상설전 ‘위대한 유산 : 할머니, 우리의 딸들을 깨우다’는 여성들도 알지 못했던 여성의 역사를 교육·의식성장·사회참여 등으로 나눠 보여주고 있다. 전시에서는 여성관련 자료·유물을 보여주고 근우회 창립이나 가족법 개정 같은 여성운동 100년사를 담은 영상도 상영한다. 또 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여성 15인을 독자적으로 선정해 ‘선구자 15인 기념비’를 세웠다. 선구자 15인 중에는 독립운동가 유관순·무용가 최승희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자선사업가 백선행·의병운동가 윤희순 등 대중들에게는 낯선 인물도 많다. 이외에 서구 문화가 유입된 이후 달라진 여성들의 의·식·주 생활 변천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전시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여성을 향한 잘못된 인식을 고쳐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여성의 언어는 비논리적이거나 장황하고 더듬거린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언어를 바라보는 기준이 문자로 기록하는 방식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옛날에 할머니들이 전설이나 얘기를 말로 전달했듯 여성의 언어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쉽게 의미가 첨가되고 여러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어 개방·복합적인 특징을 지닌다. 관객들은 시·소설·노래 등에 나타난 여성의 언어를 전시관 소리벽의 버튼을 눌러 들음으로써 그 특징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개화기 이후 달라진 여성들의 의식 변화 원인이 교육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 받기 시작한 여성들은 사회로 진출했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여성 최초 교육기관 이화학당의 수업시간을 디오라마(모형으로 실경을 조성한 교육용 시청각 자료)로 재현, 신교육으로 여성을 깨우쳤던 배움터를 보여준다. 60년대 이후에는 여성학과가?개설됐고 여성 관련 연구가 늘면서 남녀평등을 향한 여성의 움직임이 날개를 달았다. 전시돼 있는 ‘여성학신론(1977년)’은 최초의 여성학 교재로 여성학 교육의 중요한 지침서다.

상설전 바로 옆에서 10월31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여성, 배움을 통해 세상을 그리다’는 근대 교육과 여성 문화에 집중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 여학교 교실을 재현한 전시 공간은 당시 여고생의 생활 모습으로 채워져 있다. 금강산 수학여행·기숙사 생활 등의 사진은 남학생과 다르지 않은 여학생의 학교 생활을 말해준다. ‘결혼한# 후에도 일을 갖겠다’는 잡지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의식변화도 알 수 있다. 그 시절 여학생들은 엘렌 케이(Ellen Key)의 “연애 감정 없는 결혼은 죄악”이란 말에 감동 받아 연애결혼을 꿈꾸기도 했다.

여성사전시관은 여성교육에 쓰이던 책을 직접 넘겨볼 수 있게 하고 위대한 여성 선배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을 마련하는 등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놨다. 그러나 정작 보유하고 있는 유물과 자료는 부족해 아쉬움을 남긴다. 여성사전시관 학예연구사 문호경씨는 “과거에는 여성이 조명을 받지 못해 관련된 유물과 연구 자료가 적고 그 조사 또한 미약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사 연구는 연구자 수도 적을 뿐더러 역사학자들의 관심도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우리 학교 정지영 교수(여성학 전공)는 “여성사 연구를 통해 여성의 낮은 지위가 과거부터 내려오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이해관계 등 특수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여성사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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