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다은 기자가 그동안 취재한 산재 사고, 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를 들고 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신다은 기자가 그동안 취재한 산재 사고, 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를 들고 있다. 이승현 사진기자

 

누군가는 생산직, 건설직 일터로 가요.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도 갈 수 있어요.

2021년 4월22일, 20대 청년 이선호씨는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바닥을 청소하다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용돈벌이와 세상 경험을 위해 일터로 나간 청년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22년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874명. 하루에 2명꼴로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지만 산재 사고는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다.

한겨레21 신다은 기자는 산재 사고를 취재하며 이들의 문제를 결코 타자화해선 안됨을 느꼈다. 신 기자는 2021년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산업재해(산재) 사고 취재에서 시작해 평택항 이선호씨 사망 사고, SPC 자회사 SPL 공장 20대 여성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수많은 생산직 산재 사고를 취재했다. 노동자의 죽음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신 기자는 산재 사고가 먼 나라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신 기자는 이선호 씨를 비롯해 그간 취재한 산재 사고, 기사에 담지 못한 뒷 이야기와 취재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2023)를 냈다. 21일,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생명이 더없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다리는 신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혼란에서 시작한 취재

신 기자가 처음부터 산재 사고 취재에 뛰어든 건 아니다. 한겨레 노동팀에서 일을 시작한 2021년, 5월8일 어버이날에 일어난 산재 사고를 취재하라는 지시에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현대중공업 조선소로 전화를 걸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직원 장모씨가 용접을 하던 중 새 용접봉을 가지러 가다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신 기자가 취재한 사건 중에는 8일 현대제철 충남 당진제철소에서 설비를 점검하다 사망한 김모씨도 있었다.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산재 취재는 그에게 충격과 혼란을 줬다. 현대중공업은 사고에 대해 “안전 관리 강화에 최선을 다했지만 일어난 불의의 사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정해진 기한 내 일을 마쳐야 하니 수시로 출근해야 했고, 어버이날인 토요일에도 출근했다”며 “안전 관리자는 출근하지 않는 등 안전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던 신 기자는 원인 모를 찝찝함을 가진 채 다른 산재에 투입됐다.

사고의 원인을 물으면 많은 기업은 ‘노동자 과실’로 몰아갔다. “공장이 제때 돌아가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기업 관계자도 있었다. “사고 원인이 노동자 과실이라는 게 찝찝했는데 아니라는 걸 검증할 방법도 없었어요. 무엇이 맞는지 혼란스러웠어요.”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신 기자는 꾸준히 산재사고를 취재했고 구조적 원인을 파악했다.

 

노동자 과실, 가장 쉬운 변명

신 기자는 이선호씨 사고를 취재하며 사고 원인이 단순히 노동자 실수가 아님을 알게 됐다. 작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작업 지시를 내린 관리자, 노후화된 설비, 부실 점검 등 다양한 원인이 있었다. 이씨가 작업하던 컨테이너는 노후화돼 300kg에 달하는 날개가 천천히 내려오게 하는 완충장치가 없었다. 또한 조립식 컨테이너를 정리할 때는 주변에 위험을 알리는 신호수가 있어야 한다. 이씨가 일하는 현장에는 신호수가 없었고, 이씨는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처음 해보는 조립식 컨테이너 작업에 투입됐다. 잘못하면 날개에 깔릴 수 있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신 기자는 “그 기계를 그 때 가동한 사람이 하필 그 사람이었을 뿐이지, 누가 했어도 사고가 벌어질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20대 노동자가 사망한 SPL 공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소스를 섞는 기계에서 일하던 박씨는 안전 덮개가 없는 기계에 끼여 숨졌다. SPC는 “노동자가 안전 덮개를 사용해야 한다는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신 기자를 비롯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한 결과 노동자가 매번 덮개를 덮었다 씌웠다 반복하기에는 할당된 생산량이 너무 많았고, 소스가 잘 섞이는지 들여다봐야 했기에 관행적으로 덮개를 씌우지 않았다. 신 기자는 “덮개를 안 씌웠다면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므로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이 산재를 노동자의 실수로 처리한다. 산재의 구조적 원인을 살펴보려면 기업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기에 관리 실수가 아닌 직원의 실수로 미루는 것이다. 신 기자는 노동자의 과실이 아닌 노동자가 실수를 하게 만드는 구조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다은 기자는 알려져야 할 산재사고 피해자의 죽음을 “끝까지 곁에서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신다은 기자는 알려져야 할 산재사고 피해자의 죽음을 “끝까지 곁에서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또다시 생겨날 2명을 막으려면

신 기자는 “산재 사고를 줄이고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재해조사의견서 등 자료가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산재 사고가 일어났을 때 고용노동부가 발행하는 재해조사의견서는 민간에 공개되지 않는다. 재해조사의견서에서 개인정보를 빼고 일부 내용을 가공한 재해사례보고서는 공개되지만 구체적인 산재의 정황은 담겨있지 않다. 사고 경위와 원인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은 기업과 사회가 반성하고 발전할 기회가 된다.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노동 환경이 드러나 시민, 노동자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도 있다.

산재를 정확히 조사하고 공개하는 것은 유족의 억울함을 풀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신 기자는 유족이 원하는 세 가지를 언급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어떤 과정을 거쳐 죽었는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었는지, 앞으로 이런 일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세 가지다. “산재의 원인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큰 차이가 있어요. 어떻게 죽었는지만 알아도 마음 속 억울함의 반은 덜어지지 않을까요.”

신 기자는 이렇게 알려져야 할 죽음을 끝까지 곁에서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저는 살아남아 현장을 본 것이 전부지만 그 사람(산재사고 피해자)은 그 고통을 다 견디지도 못했겠죠. 그분들을 기록하는 건 살아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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