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의 이화에서의 추억이 담긴 일러스트. 제공=김연경씨
김씨의 이화에서의 추억이 담긴 일러스트. 제공=김연경씨

동글동글한 그림체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로 많은 독자를 눈물짓게 해 ‘인간 안구건조증 치료제’라는 별난 별명을 가진 창작자가 있다. 연그림이라는 필명으로 ‘힐링툰’과 ‘사연툰’ 등을 연재하고 있는 창작자 김연경(건축·20년졸)씨다. 그는 2017년부터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해 도서, 유튜브 등으로 그 범위를 넓히며 7년째 1인 창작자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그림

김씨가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웹툰 계정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생각과 그림의 변화를 기록한 ‘일기장’이었다. 처음부터 ‘연그림’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본래 필명은 이름의 가운데 글자에서 딴 ‘연’이었다. 계정 이름 ‘연이 그리는 그림’을 독자들이 연그림이라 줄여 부르기 시작하며 지금의 필명이 탄생했다.

현재 19.5만 명의 독자를 보유한 연그림 계정은 더 이상 김씨만의 일기장이 아니다. 이제 그는 계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전한다. 김씨는 이름 중 한 글자에 불과했던잇닿을 연(連)이라는 글자에 새로운 의미를 더했다. “제가 독자들에게 전한 온기가 돌고 돌아 독자의 주변에도 이어지길 바라요.”

기자들에게 책 '우리에게는 온기가 있기에'를 선물하며 따뜻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김씨의 모습.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기자들에게 책 '우리에게는 온기가 있기에'를 선물하며 따뜻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김씨의 모습. 안정연 사진기자

김씨의 만화에는 가족, 애인, 친구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중 가족 이야기가 가장 많다. 구글폼을 통해 모은 독자들의 사연도 가족 이야기가 많다. 전체 사연 중 40%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일 정도다. 김씨는 “많은 사람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아무리 잘해드려도 아쉬운 분으로 남는 것 같다”며 할머니 관련 사연이 유독 많이 들어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손녀가 직접 만든 팔찌를 하고 계셨다는 이야기부터 명절 때마다 시장에서 손주에게 어울리는 양말을 사 와 선물해 주던 이야기까지. 저마다 추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느끼는 바는 비슷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손주 중 저를 제일 예뻐하시던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난다”, “할머니께 항상 식사 잘하시고 건강히 지내시라고 전화드려야겠다” 같은 댓글을 남긴다.

김씨는 “‘주접 댓글’처럼 재치 있는 댓글도 기억에 남지만, ‘만화를 읽고 가족에게 연락했다’는 등의 실천 댓글들이 (작품 활동에서의) 원동력이 된다”고 얘기했다.

 

일상의 순간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기까지

김씨가 전하는 힐링툰은 사소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관찰한 뒤, 그 속에 숨어 있을 이야기를 상상해 만들어진다. 걸어가는 할머니와 손녀를 보며 ‘둘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을까’ 같은 엉뚱한 질문을 떠올리는 식이다. 사연툰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독자들에게 미완성된 사연을 듣고, ‘내가 사연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 앞뒤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사연의 결말을 구상한다.

김씨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구상한 이야기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히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을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내는 과정이다. 계절과 대사 하나까지 상상한 뒤에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한다. 감동을 주는 ‘하이라이트’ 장면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에 앞부분은 짧게 줄여야 한다. 잘 짜인 구조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몰입을 높인다. 유튜브에는 기존 만화에 잘 어울리는 음악과 움직임을 더해 몰입도를 높였다.

 

남들과 다른 길에 도전하는 용기

어린 시절 김씨는 공부를 잘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대학 전공을 고민하며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던 김씨는 공부와 그림을 모두 할 수 있는 건축학과를 택했다. 그러나 건축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진로에 대한 고민은 깊어졌다. 건축 설계는 김씨의 생각만큼 자유롭지 않았다.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해도 건축법에 따라 수정해야 했다. 틀에 갇히지 않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길 원했던 김씨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전공에 대한 회의를 느낀 김씨는 결국 2016학년도 4학년 1학기에 중도 휴학하고 2년간 휴학 기간을 가졌다.

김씨는 휴학했던 2017년 영국으로 6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떠나기도 했다. 영국에서 생활하며 쓴 김씨의 첫 에세이 ‘나도 나를 안아줄 수 있다면’(2017)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삶을 엿보는 게 좋았다.” 김씨는 낯선 외국에서 홀로 생활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화려한 색으로 염색한 할머니, 유행보다 개성에 따라 옷을 입은 사람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씨는 이들을 보며 “남들과 다른 길에 도전하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복학한 김씨는 좋아하는 일인 그림을 위해 더욱 숨 가쁘게 살았다. 학생으로서 학점을 챙기며 동시에 1인 창작자로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김씨는 온전히 집중해도 힘든 건축학과 졸업 전시를 비대면 수업, 그리고 책 준비와 함께해야 했다. 김씨는 이 시간을 돌아보며 “이때 이렇게 스스로를 불태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향한 욕심과 열정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씨의 성실함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한 에피소드당 12시간이 족히 걸리는 작업을 일주일에 2~3회 반복하지만 한 번도 밀린 적이 없다. 김씨는 1인 창작자로서의 일상을 “연그림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자, 상사이자, 사장의 삶”이라고 표현했다.

집필한 ‘우리에게는 온기가 있기에’를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연그림 작가.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집필한 ‘우리에게는 온기가 있기에’를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연그림 작가. 안정연 사진기자

김씨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도전하기를 추천한다. 꼭 모든 것을 쏟아붓거나 성공할 필요는 없다. 김씨는 “어떤 일을 하든, 살면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도움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며 “타인의 시선이나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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