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거대한 집합체입니다.”

7일 세계적 거장인 영화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Christian Petzold)의 시네마톡이 열렸다. 독어독문학과 수업 연장선으로 진행된 이 특강은 학관 635호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페촐트 감독은 2012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바바라’로 은곰상(감독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피닉스’(2014), ‘트랜짓’(2018), ‘운디네’(2020)로 국내에서도 탄탄한 예술영화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신작 ‘어파이어’(2023) 국내 개봉을 앞두고 처음 내한한 페촐트 감독은 영화 홍보 외 장소로는 유일하게 본교에 방문했다.

이준서 (독어독문학과) 교수와 대담 중인 페촐트 감독. 제공=독어독문학과
이준서 (독어독문학과) 교수와 대담 중인 페촐트 감독. 제공=독어독문학과

“이화여대에 오는 것을 고대했고, 만나서 매우 기쁘다”며 반가움을 밝힌 페촐트 감독은 본인 또한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극장 하나 없는 소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호수와 공원이 있던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죠. 에로틱한 책들을 책장에 두고 매일 창문 밑에 앉아 책을 읽곤 했습니다.” 문화 시설이 많지 않았기에 문학은 영화를 대신하는 상상의 공간이었다. 고전 설화를 활용해 무거운 주제를 조명하는 그의 작품 세계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렇게 소도시에서 살던 그는 베를린자유대에 진학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에 대한 공포” 와 "모든 것을 학생 힘으로 해내야 했던 대학 시절을 거쳐 26세부터 입학 가능했던 베를린 영화학교 dffb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이후 페촐트 감독은 올해 개봉작 ‘어파이어’를 포함해 총 2번의 은곰상을 수상하며 독일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됐다.

감독 소개 이후 질의응답이 빠르게 이어졌다. 작품에 대한 의문부터 독일 예술산업 비판까지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페촐트 감독은 솔직하면서도 진중한 답변으로 청중과 소통했다. 한 학생이 자극적 연출을 자제한 이유를 묻자 감독은 “오히려 나는 피가 나와야 재밌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모든 것을 숨기고 터부시하는 분위기였다”며 전후세대 지식인으로서의 자세를 설명했다. 그는 “상처가 생긴 과정보다 상처 이후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독일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질문이 던져졌다. 극우 정당(AFD)의 지지율이 20%를 상회하는 등 나치와 극단주의 귀환이 걱정된다는 질문에 페촐트 감독은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러한 사람들은 늘 20% 정도 있었다”며 오히려 주목할 부분은 정치적 세력화라고 지적했다. 홀로코스트가 있는 한, 나치 재집권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조직적으로 홀로코스트를 희화화하는 담론이 형성된다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 생산적 미학을 찾아내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예술을 통해 더 많은 얘기를 담고 싶다고 설명했다.

행사를 기획한 이준서 교수(독어독문학과)는 시네마톡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다행이라며 “페촐트 감독 스케줄 조율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주한 독일문화원 측으로부터 감독 내한 소식을 들은 이후, 독문과 측의 빠르고 꾸준한 요청과 배급사 엠엔엠인터내셔널의 도움을 통해 특강 사흘 전 저녁에야 요청이 수락됐기 때문이다. 페촐트 감독은 이번 시네마톡 직후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더불어 이교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력에 부응하듯 현장 열기 또한 뜨거웠다. 교실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고 참여 학생 모두 적극적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행사 종료 후 페촐트 감독 또한 학생에게 사인해 주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등 우호적 분위기를 이어갔다. 감독에게 직접 질문했던 김윤정(독문·20)씨는 “떨려서 질문을 잘하지 못했다”면서도 “수업에서 다뤄 익숙한 영화를 직접 물어볼 수 있어 후련하다”고 했다. 본교생이 아닌 외부에서 참여한 청중도 있었다. 영화를 전공했다는 이유진(33·여)씨는 “흔치 않은 기회여서 꼭 참여하고 싶었다”며 “독일 거장을 한국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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