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 앞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잃어갔어요." 양현지(가명·25·여)씨는 퇴사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계속되는 서류 탈락은 양씨가 “나를 보여주기도전에 외면당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7개월간 취업을 위한 공부와 구직 활동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 안에서만 주로 활동했다.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위축됐어요.”

취업 준비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지속되는 취업 준비 기간과 반복되는 탈락의 경험은 청년들을 위축시키고, 심하게는 고립·은둔 청년으로 이어지게 한다. 국무조정실에서 2023년3월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둔 청년이 외출하지 않는 이유는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가 35%로 기타(45.6%)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만 19세 이상 만 34세 미만을 뜻하는 ‘청년’은 법적으로 성인이 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독립된 성인으로서의 생활을 꾸리기 어려워지는 경우 스스로 사회생활을 그만두는 은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청년을 낙오시키는 사회, 자취를 감추는 청년들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국무조정실 보도자료. 첫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국무조정실 보도자료. 첫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

한국에서 정의하는 고립·은둔 청년은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정신적 질환이나 폭력성을 갖는 일본의 ‘히키코모리’보다 기준이 낮다. 서울시는 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를 고립 청년으로, 외출이 거의 없는 생활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한 달 이내에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를 은둔 청년으로 규정했다. 취업이 어려워 무기력함을 느끼고 사회적 단절이 지속돼 은둔 상태에 빠진 청년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5월 발표한 보건복지부포럼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 활동이나 사회적 교류를 멈춘 ‘고립·은둔청년’은 2021년 기 준 약 5%였다. 3.1%였던 2020년에 비해 1.9% 포인트 증가한 결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성아 부연구위원은 “예전에 아이들이 동네 어른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컸던 것과 달리 산업화로 인해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고 그 기능도 축소됐다”며 과거와 비교해 개인 중심으로 변한 사회를 고립·은둔 청년 증가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김재열 대표는 “한국 사회는 평범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상당히 높다”며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사회적  낙오자로 보는 사회적 시스템이 고립·은둔 청년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고립·은둔청년들이 고립의 상황에 익숙해지게 했다. 고립이 장기화하자 코로나가 완화된 이후에도 다른 사회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것이다. 김 대표는 “코로나의 여파는 최소 5~6년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재단에서 8월 발표한 ‘청년의 고립은 얼마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까요?’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이 고립됐을 때 사회적 비용은 건강 관련 비용으로 연간 약 293억원, 빈곤과 실업으로 인한 정책 비용으로 연간 약 2천억원이 추산됐다.

청년들의 고립과 은둔은 향후 30~40년 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난 5월 발표된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령대별 고립 인구 출현율은 75세이상이 약 10%로 가장 높고, 19~34세가 약 5%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회적 고립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청년기에 시작된 고립·은둔 상태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부산광역시가 은둔하고 있거나 은둔 경험이 있는 부산 시민, 은둔 경험자를 가족으로 둔 부산 시민 8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은둔형 외톨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실제 은둔을 시작한 나이는 20대가 현재 은둔하고 있는 시민의 52.4%, 과거 은둔했던 시민의 73.9%로 가장 높았다. 김 부연구위원은 “청년기의 1년은 40대의 1년과는 다르다”며 “청년기에 은둔하기 시작하며 잃게 되는 시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청년을 되찾기 위한 정책은

서울시는 2023년4월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 참여자를 모집했다. <strong>백가은 기자
서울시는 2023년4월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 참여자를 모집했다. 백가은 기자

 고립·은둔청년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사회 정책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2019년10월 전국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고립· 은둔 청년의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예방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서울시는 2021년12월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매년 고립 청년 지원을 위한 시행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23년4월에는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 참여자를 모집했다. 삶의 의욕 고취를 위해 반려 식물을 보급하고, 정서 회복 계기를 마련하고자 여행 바우처를 제공하며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지자체별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양씨는 제주청년센터에서 실시한 ‘우리들의 시간을 찾는 사회생활 연습실’에 참여했고, “(취업 준비 이전처럼) 인정을 받는 경험을 하니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심각한 수준의 고립·은둔청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천천히 기다려줄 사회가 필요해

경기도 고립위기 은둔 니트 청년들을 위한 사회진출 프로젝트의 모습. 제공=김재열씨
경기도 고립위기 은둔 니트 청년들을 위한 사회진출 프로젝트의 모습. 제공=김재열씨

김 대표는 “고립 청년들을 만나 보니, 이런 정책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립·은둔청년들이 상담이나 교육을 받지 않아서 취업을 못하는 게 아니”라며 “보통 청년 정책들은 교육, 상담, 취업을 지원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결국 “본질은 사회적 단절을 통해 쌓인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해결하고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경기 복지센터에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을 진행했을 당시, 사업의 주최 측은 참여자들에게 늘 “취업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결국에 효율성만 따지는 거예요. 사회가 정상화되는 게 그 목적이잖아요.” 김 대표는 “단기 프로젝트로 효율을 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 현장에서 고립·은둔청년들이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립·은둔청년들에게 청소년 학과 혹은 상담을 전공하는 또래들을 일대일로 배정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한 결과, 김 대표는 한 청년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나 일하고 싶어요. 친구에게 밥을 사주고 싶어요.” 안전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해 준 탓에 생긴 변화다. 김 대표는 충분한 시간과 단계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지원은 여전히 상담, 교육, 취업 지원 등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며, 단기적인 사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업이 끝나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고립·은둔청년은 재고립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재 고립·은둔청년의 정의는 지자체에서 개별적인 조례에 두고 있을 뿐, 법률로는 제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고립· 은둔청년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합법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경험하고 있고,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니 재원을 사용하겠다’는 논리를 이행하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지금은 시범 사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도 뭐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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