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잖아요

8월16일, 필명 ‘썩어라 수시생’으로 일상과 유학 생활에 관한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ㄱ(성악∙21년졸)씨의 그림 에세이가 출간됐다. ㄱ씨는 본교 성악과 졸업 후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서 성악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로마에서 음악인이자 웹툰 작가로 활동하는 ㄱ씨를 화상 통화로 만났다. ㄱ씨는 앞으로도 솔직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고 싶다며 익명 표기를 요청했다.

썩어라 수시생 작가가 캠퍼스를 누비는 자신을 표현한 일러스트. 제공=썩어라 수시생 작가
썩어라 수시생 작가가 캠퍼스를 누비는 자신을 표현한 일러스트. 제공=썩어라 수시생 작가

숨통을 트기 위해 시작한 그림

썩어라 수시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입 과정에서 겪은 입시 스트레스는 음악 전공생이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됐다. ㄱ씨는 예술고등학교(예고)에 다니며 입시 경쟁의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꼈다. ㄱ씨는 노래를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아 속상할 때마다 친구들과 공책에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것이 썩어라 수시생의 시작이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들도 저처럼 힘들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친구들의 그림을 본 ㄱ씨는 친구들도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른 이들은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모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ㄱ씨가 혼자가 아님을 알려줬다.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듯 ㄱ씨는 매일 밤 그림을 그리며 속상한 감정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ㄱ씨는 그림으로 어려운 감정과 과정을 극복했고 2016년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했다. 입시를 준비하며 느낀 감정과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에 다른 이들이 공감하길 바라며 네이버 베스트 도전 만화와 페이스북에 그동안의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부터는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시작한 웹툰이 어느덧 7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썩어라 수시생이라는 이름은 최근 웹툰에 등장한 ‘엘라(가명)’가 ㄱ씨를 처음 만난 날 지어준 것이다. “앞으로 만화를 올려보려는데, 이름을 지어달라”는 ㄱ씨의 요청에 엘라는 큰 고민 없이 ‘썩어라 수시생’을 추천했다. 입시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이유였다. 재미로 붙여준 이름은 이제 ㄱ씨의 정체성이 됐다.

내게 하던 위로가 당신에게도 닿기를

ㄱ씨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입시에 도전했다. 2017년 본교에 입학한 후에도 웹툰 연재는 계속됐다. 초기에는 음대생이나 음대 입시생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주로 올렸다. ‘우리가 레슨 시간에 들어본 말들’ 같은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일대일 레슨 중 강사에게서 듣게 되는 쓴소리를 모아 올렸다. 개인적 경험이라 생각한 에피소드는 웹툰에 올리자 많은 이들에게서 공감받았다. 대부분의 이전 게시물은 공감의 표시인 ‘좋아요’가 두세 개 정도였지만 이때부터 2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리며 음대생 웹툰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약 4000명의 팔로워 중 대부분은 음대생이나 음대 입시생이었다. ㄱ씨가 웹툰을 연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음대 동기들, 예고 친구들도 ㄱ씨를 팔로우하고 있었다. 전공 수업인 <음악사>에서는 앞에 앉은 사람이 자신이 그린 웹툰을 보고 있기도 했다. “내가 엄청나게 유명해진 기분이었어요.” 누군가는 공감하길 바라며 올린 ㄱ씨의 이야기가 수많은 이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음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팔로워 수가 점차 늘고 ㄱ씨의 이야기에 관심 두는 사람이 많아지자 특별한 일도 생겼다. 본교 졸업 후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외할아버지께서 유학을 잘 다녀오라며 용돈을 주셨다. 용돈 봉투에는 ‘조수미, 너 나와’라고 적혀있었다. 외손녀가 조수미처럼 유명한 성악가가 되길 바라는 외할아버지의 재밌고 따뜻한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올렸다. 해당 게시물에 성악가 조수미씨가 “할아버지 위트가 마음에 든다”며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됐다. ㄱ씨는 조씨와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며 “공부 열심히 해라, 행운을 빈다”고 응원을 받았다.

ㄱ씨는 웹툰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일상에서 웃기거나 재밌는 일이 생기면 메모장에 틈틈이 적어둔다. 처음부터 재밌는 일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울한 감정을 느낄 때가 더 많았던 ㄱ씨가 웃긴 일에 집중하도록 조언한 것은 사촌 언니였다. “언니가 우울한 일이 생기면 눈물 셀카를 찍으라고 조언해 줬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일상에서 웃긴 일이 항상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재밌는 일이 생길 때면 바로 적어뒀다가 버스에서 간단히 그려 두는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하나둘 그려온 이야기를 모아 ㄱ씨는 ‘우리는 모두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잖아요’라는 그림 에세이를 출간했다. ㄱ씨는 “1장에서는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야기를, 2장에서는 그런 나를 많이 사랑해 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3장에서는 그렇게 받은 사랑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던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ㄱ씨는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그런 나를 사랑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잘하지 못해도, 내가 좀 모자란 것 같아도 괜찮다고 전하고 싶었어요.”

펜 끝에 맺힌 이화를 사랑하는 마음

ㄱ씨에게 본교는 어릴 적부터 익숙하고 당연한 곳이었다. ㄱ씨의 어머니, 사촌 언니, 심지어 과외 선생님까지 본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타대에 입학한 뒤 입시에 재도전해 입학한 만큼 대학 생활도 열심히 누렸다. 불교 중앙 동아리 ‘이불회’, 영화 중앙 동아리 ‘누에’, 홍보 유튜브 영상 제작 동아리 ‘너이화함께’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했고, 직접 필름 카메라 소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학생문화관의 생활 도서관을 애용하고 학생들끼리 자발적 으로 기획한 ‘액체 괴물 만들기’ 모임도 참여했다. 

학교 곳곳을 누비며 활동하던 ㄱ씨에게 2022년 본교 홍보실은 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연재를 제의했다. “그동안 개인 신상을 밝힌 적이 없어 학교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학교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들을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신났어요.” 입학식에서 학교 관련 퀴즈를 풀다 당황한 이야기, 본교를 졸업한 어머니와의 맛집 추천 대화, 성악과 대동제 부스를 위해 프렌치토스트와 딸기라떼를 개발하던 이야기. 본교에서의 수많은 추억과 경험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4년 동안의 학교생활이 너무 행복했어요.” 이화에 들어오기 위한 입시 과정을 담은 그림이 ㄱ씨를 썩어라 수시생으로 만들었다. 이화에 와서는 원하던 공부를 하며 후회 없이 대학 생활을 즐겼다. ㄱ씨는 “이번 주에도 유럽에서 유학 중인 음대 동기들을 로마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 유학 생활에서도 여전히 이화인들을 만나고, 학교생활을 담은 그림을 그리며 소소한 행복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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