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번 서보세요. 내가 사진 찍어줄게요.

서원배(59∙남)씨는 목에 걸린 카메라를 들며 나들이 나온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당황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서씨는 자신을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카메라와 함께한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능숙하게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인화해 선물한다. 한우리집의 관리자이기도 한 그를 9일 이화역사관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해 있던 서씨는 이화역사관 정문의 돌계단을 오르는 기자에게 “거기 딱 서보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백일홍을 배경으로 기자를 한참 찍고 나서는 “어때요, 완전 멋있죠?”라며 기대 가득한 얼굴로 사진을 건넸다. 자세를 잡기 위해 고민하던 순간부터 어색함이 풀려 호탕하게 웃는 순간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담아낸 사진에 놀라움의 환호성을 내자 서씨의 얼굴에도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카메라와 인화된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원배씨.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자신의 카메라와 인화된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원배씨. 안정연 사진기자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찾아서

서씨는 주말마다 카메라 가방을 들고 창경궁이나 덕수궁으로 향한다. 고궁으로 산책을 나온 가족, 연인, 친구들에게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며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서다.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특별한 인연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덕수궁 나들이를 나온 가족에게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다가갔다. 서씨를 본 아이 엄마는 서씨와의 인연을 단번에 기억했다. 2년 전 임산부였던 자신과 남편을 찍어줬다는 것이다. 뱃속에 있던 쌍둥이 자매가 두 살 생일을 맞은 날 서씨와 그들은 다시 만났다. 서씨는 “기가 막힌 인연이죠. 아이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감회가 새로웠어요”라고 말했다.

서씨가 항상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에는 사진 인화기가 들어있다. 찍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바로 인화해주기 위해서다. 서씨의 인화기는 한 장의 종이에 두 장의 사진을 인화 한다. 그는 가위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이 직접 두 장의 사진을 각각 잘라서 간직할 수 있도록 한다. “직접 현장에서 인화해주면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그는 인화된 사진을 휴대폰으로 다시 촬영하려는 이들에게 어떤 배경과 각도로 찍어야 멋스러운지도 알려준다.

사진이 인화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에게 깜짝 선물을 나눠주기도 한다. 기다리는 이들이 무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선물은 빗, 안경닦이 등 모두 서씨가 직접 구매한 것들이다.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위주로 골라 선물한다는 서씨의 말에서 찰나의 순간에도 행복을 나누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드러났다.

​자신만의 촬영 장소 속 인물을 담아내는 서원배씨의 카메라. 안정연 사진기자 자신만의 촬영 장소 속 인물을 담아내는 서원배씨의 카메라.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자신만의 촬영 장소 속 인물을 담아내는 서원배씨의 카메라. 안정연 사진기자

 

이화의 숨은 행복을 담아내다

서씨는 본교에서 근무하기 전에도 이화인들의 추억을 담은 적이 있다. 한창 대학별 축제를 다니며 학생들 사진을 찍어주던 시절이 었다. 서씨가 보여준 2009년 본교 대동제 사진에는 일렬로 서서 함께 힘껏 뛰어오르는 학생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는 캠퍼스 사진을 보여주며 “여러 캠퍼스를 가봤지만 이화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본교 캠퍼스를 찍으며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어디였냐는 질문에 그는 “대강당과 대학원 별관”을 답하며 “두 건물을 원거리에서 함께 잡으면 정말 예쁘다”고 말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그의 대답에서 매 순간 고심해 캠퍼스를 담아낸 그의 애정이 드러났다. 서씨에게 본교 캠퍼스는 수목원이다. 그는 이화역사관에서 ECC로 이동하는 내내 백일홍, 샐비어, 옥잠화 등 캠퍼스 곳곳의 다양한 식물들을 소개했다.

그는 본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2017년부터 더 많은 학생을 만났다. 한우리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배드민턴을 치고 있던 학생들, 진달래꽃이 핀 ECC를 지나가던 무용과 학생들, 퇴근길에 만난 솟을관 조교까지. 그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이화인들의 일상에 특별함을 선물했다. 서씨는 ECC 밸리에서 학위복을 입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 졸업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이화인의 평범한 일상과 특별한 하루 모두 그의 카메라 속에 담겨 있다.

서원배씨가 이화역사관을 둘러보며 자신만의 촬영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서원배씨가 이화역사관을 둘러보며 자신만의 촬영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행복을 나누는 사진사

서씨는 20살 즈음 카메라를 처음 접했다. 현상소에 가서 현상을 맡겨야 하는 필름 카메라였다. 처음에는 지인들을 찍어주고 인원수만큼 현상해 나눠줬다. 사진을 받고 행복해하는 이들을 보며 베풂의 보람을 느낀 그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인생 첫 카메라를 가지게 된 순간부터 그는 무료로 사람들을 찍어주기 시작한 셈이다.

보상은 사진을 받고 미소로 환해진 사람들의 모습으로 충분했다. “한 번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결국은 내가 만난, 만나고 있는, 만나게 될 모든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 같아요.”

더운 날에는 땀을 닦으며, 추운 날에는 언 손을 녹여 가며 찍은 사진이지만 사례는 절대 받지 않는다. 인화지와 선물까지 구매하려면 높은 비용을 지출해야 함에도 철저히 사비로 충당한다. 감사의 의미로 누군가 서씨 몰래 사례금을 두고 간 적도 있었지만 그는 그 돈을 길에 두고 왔다. 그저 필요한 누군가 기뻐하며 주워가길 바랐다.

서씨는 여력이 되는 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줄 수 있길 희망했다. “삶은 나눔이에요. 내가 나눈 행복을 기쁘게 받아 준다면 나도 기쁜거죠.” 서씨는 나이가 들어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습관처럼 카메라를 챙겨 나선다. “어제도 퇴근하면서 노을이 예뻐 집에 가서 카메라를 들고 다시 나왔어요.”

항상 누군가를 찍어주기 바쁜 서씨. 자신의 삶을 사진으로 남긴다면 어떤 장면을 담을까. 그는 “사진을 통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준 순간”을 꼽았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제 모습을 보고 “저 사람 굉장히 행복해 보이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환한 기쁨의 웃음을 지었나봐요.” 누군가에게 행복을 선물하려는 서씨의 발걸음이 어느새 그의 삶을 행복으로 물들이고 있다.

서원배씨는 자신의 카메라와 즉석 사진 인화기를 통해 행복을 전한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서원배씨는 자신의 카메라와 즉석 사진 인화기를 통해 행복을 전한다. 안정연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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