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보다 논밭이 많은 경기도 양평. 시골 특유의 비료 냄새가 풍기는 동네에 현대적인 이층집이 눈에 띈다. 검은색 삼각 지붕과 흰 벽의 조합이 깔끔하면서도 넓은 통유리창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정하윤(미술사학과 석사·10년졸)씨의 작업실이자 집이다. 

작업실에 앉아있는 정하윤씨. 이젤과 미술 도구, 책들이 정리돼 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작업실에 앉아있는 정하윤씨. 이젤과 미술 도구, 책들이 정리돼 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정씨는 ‘종합미술인’이다. 본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 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미술을 소개하는 칼럼 ‘정하윤의 아트차이나’를 이데일리에서 연재했고 ‘꽃피는 미술관’ 등 4개의 저서를 집필했다. 정씨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다가 현재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한국근현대 미술을 강의하고 있다.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였던 정씨는 이제 미술 작품과 작가에 대한 글을 쓰고 어린아이부터 대학생, 노인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수강 연령은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다는 것. 그에게 미술은 그리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다. 미술을 보며 20대와 30대를 보낸 정씨에게 작품을 보는 것은 삶을 어떻게 보는지와 연결돼 있다.

정씨의 공간에는 미술이 함께한다. 작업실에는 일일 강좌에 쓸 이젤과 미술도구가 있고 집안 곳곳에는 그림이 걸려 있다. 단연 눈에 띄는 건 짙은 초록 배경에 그려진 분홍빛의 꽃 그림이다. 주방 식탁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그림은 흰 벽과 대조돼 시선을 끈다. 정씨가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린 그림이다.

인터뷰하며 밝게 웃는 정하윤씨. 그 너머에 고등학교 시절 그린 작품이 걸려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인터뷰하며 밝게 웃는 정하윤씨. 그 너머에 고등학교 시절 그린 작품이 걸려있다. 이자빈 사진기자

정씨는 고등학교에서 들은 첫 실기 수업에서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보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본교 회화과에 입학한 그는 미술사학을 복수전공해 그림을 보는 삶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무서운 것 없고 강렬했던 그 시절을 ‘핫핑크’라고 표현했다. 

 

핫핑크에서 베이지로

“두려울 것 없어. 세상의 중심은 나.” 정씨는 대학 시절엔 “거침없는 경주마였다”고 설명했다. 꿈꾸면 다 이뤄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했다. 그의 대학 시절은 공부, 여행 등 하고 싶은 일부터 자기관리까지 자신의 성장에 집중했고 뭐든 이룰 수 있으리라 자신했던 시간이었다.

당찬 포부는 미적 취향에서도 드러났다. 정씨는 “날카롭고 허를 찌르는 작품을 선호했다”며 도널드 저드의 ‘무제’(1980)를 언급했다. 도널드 저드의 ‘무제’는 똑같은 크기의 직사각형 금속박스들이 일렬로 설치된 작품이다. 그는 “쨍한 색감과 단순한 형태가 (작품성이 작가의 독창성과 숙련된 미술 기법에 달려 있다는) 기존 관념을 부숴버리는 것 같아 통쾌했다”고 말했다.

핫핑크였던 정씨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한 건 엄마가 되고부터다. 그는 아이를 갖고 난 후의 자신을 ‘베이지색’이라고 표현했다. 핫핑크에서 베이지로 변하며 자신만 보기보다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얼마나 아이가 많은지, 유모차가 갈 수 없는 턱이 많은지 알게 됐다. 삶의 속도도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가기도 하고 심지어 ‘아무 데도 안 가면 어때’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삶의 방식의 변화는 작품을 보는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이성적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강렬한 추상화를 선호했던 그는 “지금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없다”고 답했다. 그림에 대한 감상은 매번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았고 고난도의 미술 기법이 들어가지 않은 엉성한 그림에서도 매력을 느꼈다.

눈길이 가는 작품도 달라졌다. 의식하지 않아도 엄마와 아기가 함께 있는 그림에 시선이 머물렀다. 정씨는 “나중에 할머니가 되면 할머니 그림이 눈에 밟힐 것 같다”며 변화를 자연스럽게 여겼다. “다 같은 작품이지만 해석은 누구에게나 다를 수 있고 살아가면서도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정답이 있을 뿐

“미술에 정답은 없다. 주장과 해석만 있을 뿐.” 그가 작품을 보는 태도는 수업에 반영됐다. 정씨는 본교에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현대미술사’와 ‘한국현대미술감상’ 수업과 대학원 수업을 진행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대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설명하는 수업이다. 학생들이 그림을 보는 힘을 키우길 바랐던 정씨는 암기보다 독자적인 해석을 강조했다. 그는 “모나리자의 제작 연도를 외우기보다 모나리자가 자신의 취향인지, 왜 좋은지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의 가르침은 학생들과 미술의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2022년 <한국현대미술감상>을 수강한 라성인(초교·20)씨는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은 자신도 꼭 좋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미술 감상에 부담을 느꼈다. 라씨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내 미감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품의 유명세보다 좋아하는 작품을 찾고 마음에 드는 이유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정씨의 말에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정답이 없는 수업을 지향했지만 한계는 있었다. 수강생이 많아 감상을 공유하고 피드백하기보다 강의식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대형 교양 강의의 특성상 꿈꿨던 대학 강의를 이루기 힘들었다”며 “마지막 학기 수업에선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5년간 본교에서 미술을 가르쳐 온 정씨는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사직서를 냈다.

 

정하윤의 마지막 수업

수업은 끝났지만 그의 예술관은 살아있다. ‘정답은 없다’는 그의 예술관은 점, 선, 면, 색채만으로 구성된 추상화를 감상할 때 잘 나타났다. 정씨는 “추상화는 보이는 게 전부”라며 “숨겨진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감상자가 느끼는 바에 집중해도 된다는 것이다. 정씨는 “추상화를 고대 문자처럼 해독해야 하는 암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예술이 현실을 바꾼다고 여기기도 했다. 미술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문제를 해결할 힘은 준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의 색깔에서 평안함을 느끼고 기분이 나아졌다면 이것도 내 현실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정씨는 “힘든 삶을 살았던 작가에게서 위안을 받거나 위기를 극복한 삶을 보며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미술이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냐는 질문에 정씨는 “우리 딸이 엄마가 됐을 때 키즈 카페만이 아닌 미술관도 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는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끼고 힘든 순간에 미술에 기댈 수 있길 바랐다. “우리가 힘든 순간들을 많이 마주하는데 그때 잡을 수 있는 밧줄이나 기댈 언덕이 많을수록 살만해지잖아요. 그중 하나가 그림이고 미술관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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