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중앙도서관으로 가는 계단에 학생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았다. 현재 KBS 2TV에서 방영되고 있는 ‘홍김동전’의 촬영이 대동제의 마지막 날 본교에서 이뤄졌다. 계단과 블루포트 앞뜰에는 노란빛 조명이 설치됐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촬영 과정에는 이화인의 손길이 닿았다. 바로 ‘홍김동전’ 손지원 PD(국문·03년졸)다. 손 PD는 KBS에서 20년간 예능국 PD로 일해왔다. 현재는 팀장 격 PD인 CP의 직책을 맡아 홍김동전 외에도 다른 프로그램들을 관리하고 있다. “모교에서 촬영해 본 건 처음이라 감회가 남달랐다”는 그를 녹화 일주일 후, 여의도 KBS 신관 사옥에서 만났다.   

20년간 KBS 예능국에서 일하고 있는 손지원 PD는 현재 ‘홍김동전’을 비롯한 많은 프로그램의 CP를 맡고 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20년간 KBS 예능국에서 일하고 있는 손지원 PD는 현재 ‘홍김동전’을 비롯한 많은 프로그램의 CP를 맡고 있다. 이승현 사진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는 아이돌 그룹 H.O.T.에 열광하는 고등학생 여자 주인공이 나온다. “그 드라마에서 정은지씨가 하는 역할이 딱 제 나이거든요.” 손 PD가 고등학생일 때 1세대 아이돌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덕후 기질이 평생 있었다"던 그는 한국 대중문화의 황금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라디오 방송을 귀 기울여 듣고 공개방송에 출석 도장을 찍던 소녀는 자연스럽게 PD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다. 

예능국 PD에 지원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손 PD는 “사실 덕질의 연장선상에는 예능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드라마나 시사 다큐는 그와는 맞지 않았다. 콘서트에 가고 음악도 즐겨듣던 그는 “연예인과 같이 뭘 하고 싶다, 내지는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소라의 프러포즈’나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눈 떠보니 버라이어티를 만들고 있었다. 

예능국 PD가 되고 나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해피투게더 3’, ‘배틀트립’, ‘태백에서 금강까지-씨름의 희열’, 그리고 ‘홍김동전’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들은 흥행했고 수많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줬다. 손 PD가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때그때 본인이 관심을 두고 재미있는 분야를 시도한 것이다. 

그는 “만드는 사람이지만 시청자이기도 하니까 소비자의 관점에서 재밌어야 된다는 생각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류나 트렌드와 멀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거나 유명해진 것들은 꼭 한 번씩 가보거나 해본다. “내가 좋아하진 않더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그래서 한번 가보면 ‘이런 게 요즘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구나,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여기 와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좀 구체화되는 것도 있죠.”

실제로 8년 전에 기획했던 ‘배틀트립’은 인스타그램의 ‘인증샷' 문화를 유심히 관찰하다 시작됐다. “사람들이 맛집이나 어딘가에 갔다는 걸 증명해서 사진을 올리는 게 그때 유행이었어요.” 1시간가량의 방송 분량을 6~7분 단위의 구간으로 나눠 에피소드를 구성한 것도 ‘배틀트립’의 특징이다. 유튜브에 잘라 올린 영상 하나도 완결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전에 방영한 ‘해피투게더 야간매점'도 당시의 관심사와 트렌드를 살피면서 기획한 것이다. 요리 전문 케이블 방송이었던 ‘올리브 TV’의 애청자였던 그는 예능에도 음식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방송을 보고 음식을 해 먹은 시청자들이 피드백을 주기도 했죠.” 

그는 어느 순간부터 “방송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PD, 작가, 출연자 등 모두의 아이디어가 모여 하나의 방송이 탄생한다. 때로는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의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CP가 된 지금은 방송의 지속 가능성이나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고민한다. 

손 PD는 커뮤니티나 시청자의 반응도 수시로 확인한다. 방송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좋으면 기쁘지만 이 또한 마냥 쉽지만은 않다. ‘짤방'이 유행하는 요즘, 전체 방송보단 영상의 부분으로 평가하는 시청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는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고 방송에는 맥락이 존재하는데 부분만으로 논란이 되면 되게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때로는 일과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기도 한다. “밥 먹다가도 옆에서, 너 어제 그거 봤어? 이럴 때가 있고 그렇죠.” 평가를 받으면 계속 생각하게 되고 하루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방송에 대한 기사가 보통 오전8시부터 나와요. 제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죠. 사실은 이걸 딱 끊어내야 되는데 잘 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예능국 PD로 지내며 좋은 점도 많다.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 그렇다. “상대적으로 이건 웃는 일이니까, 웃어야 끝나는 일이니까 기분이 좋아요.” 어느덧 이 일을 한 지도 20년이다. 그는 “20년이나 지났는지 몰랐다"며 웃었다. “사실 어떤 일을 한 지 20년이 지나면 장인이 돼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매일 처음 하는 일처럼 해요.” 익숙해서 당연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는 “새로운 것에 재미를 느끼고 지루할 틈 없이 사는 걸 좋아한다면 PD가 잘 맞을 것”이라 말했다. 

손 PD의 목표는 뭘까. 그는 “지금 사람들이 보고 싶은 얘기를 한다고 하면, 그 얘기가 잘 전달되는 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방송을 편하게 웃으면서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꿈을 꼭 어떤 직업으로만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먼저 진로를 찾아간 선배로서 어떤 직업을 얻는 데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좇다 보니 어느새 예능국 PD가 된 손 PD. 그는 오늘도 방송국에서 일하며 웃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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