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미가 강조되던 조선시대에도 화려함은 있었다. 목조건물 가까이 가서 위를 올려다보면 오방색으로 뒤덮인 처마가 보인다. 화려한 단청의 모습이다. 단청은 오방색을 기본으로 건축물에 여러 무늬와 그림을 그리는 장식미술이다. 전국 방방곡곡 사찰을 돌며 단청을 그리는 이가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전승교육사인 최문정(체육학과·90년졸)씨다. 벽 곳곳에 작품이 걸려있는 서울 성동구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가무형문화재는 예술적, 기술적 능력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한 제도다.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승 체계는 ▲전수자 ▲이수자 ▲전승교육사 ▲보유자 순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관리를 받는 것은 이수자부터다. 보유자와 전승교육사는 전수자에게 이수자 시험 볼 자격을 부여한다. 이수자는 3년간 전수 기간을 거쳐 심사를 통해 이수증을 받을 수 있다.

작업실에서 새로운 작품을 작업 중인 최문정씨. 김민아 기자
작업실에서 새로운 작품을 작업 중인 최문정씨. 김민아 기자

 

8년간의 결실, 국가무형문화재의 첫걸음

최씨는 손재주가 좋았던 부모님을 닮아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다. 은퇴 없이 경제활동을 하고 싶었던 그는 “아무리 나이 들어 아파도 붓은 들겠다” 싶어 화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2학년, 그는 돌연 미술 학원을 그만뒀다. 봉원사 스님인 그의 아버지가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둘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미대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 학과나 들어가서 미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농구에도 재능이 있었던 최씨는 결국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체대에 진학했다. 본교 합격증을 얻은 그는 스무 살에 다시 미술을 시작했다.

최씨는 돈 들이지 않고 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이웃 주민이었던 만봉스님에게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만봉스님은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 중 한 명이다. 단청부문 최초의 인간문화재 기능보유자인 만봉스님은 조선 후기에 활동하던 김예운 화상의 마지막 제자이기도 하다.

만봉스님의 가르침은 졸업 후에도 이어졌다. 최씨는 강남 역삼동 동영 스포츠센터에서 수영과 에어로빅을 가르치고 퇴근해 만봉스님에게 미술을 배웠다. 낮에는 체육, 밤에는 미술을 했다. 그러다 단청기술자가 품귀현상이라는 소식에 문화재수리기술자 417호(단청기술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단청을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단청작업을 업으로 삼고자 했다.

단청기술자가 되기 위한 공부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만봉스님에게 불화만 배웠던 그는 단청 작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청은 궁궐에서 왕권 권위와 건물의 위계를 표현하고 건물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불교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인 불화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영역이다. 최씨는 단청기술자의 작업 현장을 배우기 위해 경복궁 단청 보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스물일곱에 단청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한 최씨는 이듬해 보유자인 만봉스님으로부터 이수자 시험 자격을 얻었다. 만봉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8년 만에 전수자에서 이수자가 된 것이다. 20대 후반, 최씨는 본격적으로 단청작업에 뛰어들었다.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단청

단청기술자로서 단청 작업을 할 때 최씨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벽화다. 정형화된 틀이 있는 단청 문양과 달리 벽화는 작업자의 재량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조 건물에 채색하는 장식미술인 단청은 범위가 넓어 정형화된 문양을 이용하는 처마단청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벽화가 모두 해당한다.

구도, 필력, 색채, 내용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벽화에는 그 사람의 모든 실력이 드러난다. 벽화를 그리는 작업자는 건물의 용도와 의미에 맞게 그릴 그림을 선정한다. 최씨는 “단청장이 작가로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은 벽화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최씨가 벽화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유년 시절 꿈꿔 온 화가의 정체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벽화의 명암 등 (벽화의) 표현 방법은 동양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최씨의 화가로서의 정체성은 작품활동으로도 나타났다. ‘유년의 정원’, ‘Mix Media’ 등 그의 작품은 단청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게 특징이다. 최씨는 “고유한 전통의 맥은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재해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통의 맥은 지키되 발전시키는 것은 단청장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전통 예술의 핵심은 단청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한테 (이러한 단청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활동은 화가로서의 꿈과 단청장이라는 정체성이 합쳐진 결과다. 최씨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나의 정체성은 완전히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36년간 함께해 온 단청은 최씨와 뗄 수 없는 존재다.

최문정씨의 작품. 현대와 전통적 요소가 결합돼 있다. 김민아 기자
최문정씨의 작품. 현대와 전통적 요소가 결합돼 있다. 김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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