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학식의 부재,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조교로 근무해야 하는 대학원의 관행, 불명확한 성적평가 기준… 일시적인 해결책보다는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한 사안들을 해결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옴부즈퍼슨'이다. 서울대는 2021년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학내 고충 민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옴부즈퍼슨을 도입했다. 주로 물리적 시설의 부족 문제, 부적절한 교내 문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현재 인권 문제와 학교 행정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옴부즈퍼슨과 대학원생으로 이뤄진 주니어 옴부즈퍼슨이 활동하고 있다. 

어느 대학에나 만연한 이런 문제 상황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본지는 대표 옴부즈퍼슨 서울대 이장규 명예교수(전기정보공학부)와 주니어 옴부즈퍼슨 서울대 김윤하(아동가정학 전공 박사과정)씨를 서울대 관악캠퍼스 옴부즈퍼슨실에서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질적인 학내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서울대 주니어 옴부즈퍼슨 김윤하씨(왼쪽)과 서울대 대표 옴부즈퍼슨 이장규 명예교수. 이자빈 사진기자
실질적인 학내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와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서울대 주니어 옴부즈퍼슨 김윤하씨(왼쪽)과 서울대 대표 옴부즈퍼슨 이장규 명예교수. 이자빈 사진기자

 

근본적인 해결 위해 제도를 바꾼다

‘옴부즈맨’(ombudsman)이란 1809년 스웨덴 의회에서 최초로 도입된 민원해결기구다. 스웨덴어로 대리인이라는 뜻인 ‘옴부즈’(ombuds)는 이름 그대로 행정에 대한 시민의 고충을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제도를 기반으로 하버드 및 MIT 등 많은 미국 대학은 옴부즈퍼슨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KAIST, 포항공대 등 일부 대학이 옴부즈퍼슨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대에서는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옴부즈퍼슨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대학신문>의 2014년 12월5일자 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 제도환경개선 토론회에서 ‘대학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교수 및 대학원생들을 옴부즈퍼슨으로 임명해 대학원생들의 고충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이뤄졌다. 옴부즈퍼슨은 2021년 3월, 오세정 전(前) 총장의 공약으로 서울대에 자리를 잡았다. 오 전 총장은 후보자 시절 인터뷰에서 “소수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많지만, 과거의 관행이 쉽게 변하지 않아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기존에 존재하는 소수자 보호 정책을 엄밀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옴부즈퍼슨은 인권과 행정 영역 모두에 전문적 지식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전∙현직 교직원 중 총장이 세 명을 임명한다. 대표 옴부즈퍼슨인 이장규 교수는 “학내의 잘못된 문화와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옴부즈퍼슨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제가 옴부즈퍼슨으로 임명될 때도 총장께서 ‘잘못된 관행으로 고충을 겪는 구성원이 없도록 노력해 주시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강자만 살아남는 캠퍼스가 아닌 약자들도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캠퍼스를 만들고자 시작했죠.”

 

'보이는 청소'로의 변화

인권센터의 주된 업무가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구제, 가해자에 대한 징계라면 옴부즈퍼슨은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에서 비롯된 피해를 해결하고자 한다. 제도에서 기인한 고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잠재된 피해자가 많을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이에 옴부즈퍼슨은 제도 개선을 통해 학내 구성원들이 가지는 고충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이런 노력은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에 관한 민원에서도 드러났다. 2021년 6월, 서울대의 한 청소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다 숨졌다. 옴부즈퍼슨은 제도적으로 학내의 청소 노동 문화를 바꾸고자 했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었다. “우리는 지금 ‘안 보이는 청소’를 원해요. 청소노동자들은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시간에 청소를 해야 해. 휴게실도 안 보이는 곳에 있어야 돼. 이것부터 잘못된 거죠.” (이장규 교수) 

이를 바탕으로 옴부즈퍼슨은 총장에게 건의했다. 이후 청소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휴게실을 정비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졌다. 이 교수는 “옴부즈퍼슨은 총장에게 건의하는 것을 넘어서 그 건의가 반영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회성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근본적인 제도를 변화시켜 교내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다. 

 

옴부즈퍼슨 통해 배우고, 채운다

옴부즈퍼슨이 운영된 1년간 고충 민원을 제기한 신고인의 대다수는 대학원생이었다. 2021년에는 34개의 신고건수 중 23건, 2022년에는 24개의 신고 건수 중 10건이 대학원생이 제기한 민원이었다. 주니어 옴부즈퍼슨은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로 2022년부터 시작됐다. 서류심사와 면접 절차를 통해 선발된 대학원생들은 제도 개선 과정에서 자문하고 옴부즈퍼슨을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제2기부터 주니어 옴부즈퍼슨을 맡고 있는 김씨는 이 활동에서 “배우고 채운다”고 말했다. “먼저 인권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워요. 진정한 소통은 무엇이고 인간의 존엄은 어떤 의미인지를 하나씩 배우고 나면 옴부즈퍼슨 활동을 채웁니다. 옴부즈퍼슨 제도를 홍보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일들을 하는 거죠.”

2월 열린 ‘학내 외국인 구성원을 위한 제도 개선 간담회’는 김씨가 말한 ‘채우는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다. 옴부즈퍼슨실에는 외국인 구성원들의 고충 민원이 다수 들어왔다. 2022년 24개의 신고건수 중 10건이 외국인의 민원이었다. 주로 지도교수와의 관계 및 연구실 관행에 관한 것이었다. 

주니어 옴부즈퍼슨들은 ‘외국인 구성원 대상 제도 개선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서로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이 교수는 “개별적으로 민원을 넣는 것보다 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자리여서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구성원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대부분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씨는 “한국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외국인은 다르게 느낄 수 있다”며 “간담회가 이런 문화적 차이에서 시작된 오해를 해결하는 시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옴부즈퍼슨을 통해 “답답하지 않은 캠퍼스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답답한데 어딜 봐도 내 얘기를 들어줄 곳이 없다는 건 정말 큰 문제거든요. 옴부즈퍼슨을 통해 약자들이 편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캠퍼스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