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가 가득한 부검실에 들어갈 때마다 생각한다. “저기 누워 계신 분이 ‘내가 오늘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을까라는 생각을 늘 해요. 아마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못했겠죠. 그런데 죽음이라는 건 그런 거거든요.”

우리는 흔히 죽음이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병실에서 맞게 되는 무언가, 혹은 장례식장에나 가야 접할 수 있는,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 그러나 여기 매일 죽은 자들을 만나고 그 죽음의 방식과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법의학자 정하린 교수(의학·06년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법의관으로 9년 동안 일했다. 2020년부터는 가톨릭대 법의학교실로 거처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국과수의 지역법의관사무소이기도 한 이곳에서 ◆촉탁의를 겸하며 지금도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부검을 한다.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4월의 한 오후 정 교수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맑은 날이었다.

 

죽음 앞에 서서 삶을 바라보는 정하린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strong>박성빈 사진기자
죽음 앞에 서서 삶을 바라보는 정하린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박성빈 사진기자

 

법의학에 반한 순간

‘되돌아보면 내가 법의관이 되기 전까지 거쳤던 많은 과정은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필연적인 일들이었고 또 행운이었다.’

정 교수가 법의관 1년 차에 썼던 칼럼의 글귀다. 처음부터 법의관이 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 건 아니었다. ◆병리과 전공의였던 그는 의무 부검 참관으로 들어갔던 부검실에서 누워있는 시신을 본 순간 법의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법의학에 반한 순간'이다. 조직이나 신체 기관을 미세하게 관찰해 질병을 진단하는 병리학과 달리 훨씬 더 거시적인 법의학에 끌렸다. 부검을 하면 죽음의 원인부터 그 사람의 삶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법의학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법의관이 되기로 결심했으나 그 길은 순탄치 않았다. 국과수와 법의관 모두 당시 대중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부모님도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어요. 시집도 안 간 딸이 시체를 부검하겠다고 하니까 불안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험한 일을 어떻게 하냐, 결혼은 하겠냐는 거였죠.” 현재는 국과수 법의관의 절반 정도가 여자지만 당시에는 약 40명의 정원 중 여자는 두 명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는 “이후 ‘싸인’(2011)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국과수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면서 부모님도 인정해 주셨다"고 회상했다. 

법의학자가 되기 위해 걸었던 길을 회상하는 법의학자 정하린 교수. 박성빈 사진기자
법의학자가 되기 위해 걸었던 길을 회상하는 법의학자 정하린 교수. 박성빈 사진기자

 

부검, 사회를 비추는 거울

현재는 강의부터 연구, 자문, 부검까지 하고 있지만 국과수에 있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부검에 쏟았다. 부검은 확실하지 않은 사망의 원인과 종류를 밝히는 데 필수적인 절차다. 그가 지금까지 시행한 부검만 약 1700건이다. 법의관으로 일할 때는 하루에 4건의 부검을 한 적도 있다. 기억에 남는 부검이 있는지 묻자, 그는 “첫 부검과 아동학대 건, 세월호 참사 모두 기억에 남지만 2년 전에 했던 부검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1년 여름에 한 젊은 우체국 집배원이 숨졌다. 건강했던 25세 남성은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 후 사흘 만에 원인 불명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 교수가 부검을 맡았고 사인은 심근염이었다. 심장의 근육에 염증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백신 접종 후 심근염으로 사망한 의료사례 보고들이 전 세계적으로 조금씩 발표되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남성에게 왜 심근염이 생겼는지 문헌도 찾아보다가 결국 감정서에 백신 접종과의 상관성이 높을 것 같다는 결론을 써서 내보냈어요.” 직후에는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1년 후에 질병관리청이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했다. 그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부검이 유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며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검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제적 곤란으로 인한 자살이 늘어났다. 동반 자살, 살해 후 자살, 아동 및 노인 학대, 마약으로 인한 사망도 마찬가지다. 정 교수는 “부검은 사회의 병리 현상을 보여주는 도구"라며 “부검하다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가 어디 있는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부검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시신을 보면 힘들지는 않을까. 정 교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는 건 맞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이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감정을 극복한다기보다는 감정과 같이 살아간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법의관도 사람이기에 부검을 하다 보면 슬픔, 분노,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을 느낀다. 정 교수는 “저는 둔해서 빨리 털고 일상으로 잘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래서 오히려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하린 법의학자가 근무하는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 내부 모습. <strong>박성빈 사진기자
정하린 법의학자가 근무하는 가톨릭대학교 법의학교실 내부 모습. 박성빈 사진기자

 

죽음을 통해 삶을 돌아보다 

법의학자에게 죽음은 성찰의 대상이 된다. 죽음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생명이 영구히 소멸하는 것’이지만 그에게 죽음은 그 이상의 의미다. 그는 “한 사람이 죽어도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갖고 있던 사회적 관계는 그대로 남아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의 삶은 지속된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온전히 알고 받아들이는 건 남은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인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의미 있는 거죠."

정 교수는 “법의학자한테는 죽음이 일상적이고 흔한 일"이라며 “어떻게 보면 별로 무섭거나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죽음이 늘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법의학자도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정 교수는 일을 하다 보면 “죽음이 참 갑자기 온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는 행운에 의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하루를 선물 받는 거거든요. 저는 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다 보니까 살아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요.

주어진 삶이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달라 보이지 않을까요.

정 교수는 “이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겸허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시신에는 생전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부자였던 사람도 있고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이들이 꼭 행복한 죽음을 맞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그는 부검을 하며 돈이나 명예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좋아하는 것들을 누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애정을 나누면서 사는 것, 그렇게 살다 죽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인생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는 태도도 갖게 됐다. 죽음은 때때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준다.

“저는 제가 법의학자라는 직업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의지로 이 직업을 택했지만, 법의학자가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여긴다. 앞으로의 목표는 교수로서 법의학이라는 과목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의학이 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듯 최종적으로는 법의학자로서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는 “이 일을 10년 넘게 해보니까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차가운 시신을 대하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그는 힘이 닿는 한 계속 일을 이어갈 예정이다.

 

◆법의관: 국과수에서 부검 등 법의학 업무를 담당하는 의사공무원의 정식 명칭. 대학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며 법의학 업무를 하는 자는 법의학자라 지칭한다. 

◆촉탁의: 국과수로부터 위탁받아 부검을 실시하는 의사. 국과수와 협약을 체결한 의과대학의 지역법의관사무소에서 근무한다.

◆병리과: 환자의 질환에 대해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을 제시함으로써 치료방침을 결정하고 예후를 판정하며, 치료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진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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