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음악으로 보듬어주는 음악치료사 구수정씨.  이승현 사진기자
아픔을 음악으로 보듬어주는 음악치료사 구수정씨. 이승현 사진기자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떤 노래를 듣고 있는지를 묻는 유튜브 영상이 유행이다. 길을 걸을 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운동할 때… 음악은 우리 삶에 녹아있다. 이런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는 음악치료사 구수정(한국음악·06년졸)씨를 만났다. 구씨는 4월 음악치료사의 삶을 담은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를 출간했다. 그를 만나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에 대해 들어봤다.

많은 사람의 아픔을 음악으로 보듬어 주는 구씨는 원래 해금을 연주했다. 중학생 때부터 해금을 배운 그는 무대에서 작품을 만들고 연주하는 해금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 학부 졸업 후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휴학 후 세계여행을 다닐 때도 해금과 함께할 정도로 애정이 깊었다. 해금이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라 생각해 2009년 석사를 졸업한 뒤 바로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연주자가 되기 위한 삶이었다.

박사과정생들은 한 학기에 한 번 독주회를 한다. 박사과정 독주회를 준비하던 중 순탄했던 삶에 이변이 일었다. 구씨는 2010년 독주회를 앞두고 손에 이상을 느꼈다. 일상생활을 하거나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해금을 연주할 때만 증상이 발생했다. 여러 병원을 다닌 끝에 국소이긴장증을 진단받았다. 특정 행동을 할 때 신체 일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질환이다.

여전히 그를 기다리는 많은 무대가 있었다. 꿈을 거의 다 이뤘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그는 “나락으로 빠졌다”고 표현했다. 휴식을 취해도 나아지지 않아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실패자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주가 전부였던 삶에서 연주가 사라지니 방황의 시간이 이어졌다. “연주나 연습에만 매진해서 해금을 연주하지 못하는 것을 떠나 정말 할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누군가를 만나거나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심한 우울감을 겪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섰다. 성우학원도 다녀보고 글을 쓰며 다양한 시도를 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방송 작가, 기자, 잡지 에디터 등에도 지원서를 냈다. 그는 “일을 해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음악치료를 알게 됐고 ‘그냥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음악치료사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다. 음악으로 치유하는 것을 배우며 도리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음악치료사의 길을 걷게 됐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길은 어느덧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음악을 들으면 병이 낫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생소한 분야다 보니 음악치료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음악치료를 받는 사람을 내담자 혹은 클라이언트(client)라고 하는데, 음악치료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내담자에게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얻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모두 악수하며 인사해. 우리 모두 안아주며 인사해. 우리 모두 윙크하며 인사해. 춤을 추며 인사합시다.” 음악치료 시간은 ‘인사 노래’를 부르며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인사 노래는 내담자들의 마음을 열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역할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사에 나오는 악수나 포옹이 어려웠을 땐 ‘손뼉 치며 인사해’로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했다. 내담자들의 괴로움과 아픔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다른 노래를 선곡한다. 사용되는 악기도 다양하다. 위아래로 흔들면 빗소리가 나는 레인스틱, 천둥소리가 나는 썬더드럼 등 익숙한 악기 외에도 다양한 악기를 사용한다. 악기의 질은 구씨가 음악치료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악기도 천차만별이거든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로 직접 골라요.”

음악치료를 통해 긍정적으로 변하는 내담자들을 볼 땐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프로그램에 자주 결석하던 내담자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라포 형성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끝나 아쉽기도 하고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 다시 음악치료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10번의 프로그램이 이어지는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함께한 내담자와는 삶을 같이 헤쳐 나간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는 “아이를 임신 중이었을 때 처음 만나 4년째 인연을 이어온 내담자가 있다”며 “(그분이) 가끔 저희 딸 안부를 물어보신다”고 말했다. 지난 치료 시간에는 어린이날에 아이에게 주라며 과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성인의 경우 아이들보다 변화가 더디고 어려워요. 이런 어른들의 변화가 더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어요.”

구씨는 나아가 ‘한국적 음악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음악치료는 서양의 음악치료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에서 기원한 현대 심리학에서는 문제행동의 원인으로 불안을 말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등 억압을 많이 받던 때는 감정을 분출하기 어려웠잖아요. 우리나라는 이런 시기를 거치며 분노나 슬픔을 ‘한’으로 승화하는 흐름이 있어요.” 한국적 음악치료에 대한 관심은 우리 민족이 가진 특성을 고려한 음악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식에서 시작됐다. 그는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입시 경쟁이나 조직사회로 인한 억압이 강한 편”이라며 “이런 억압이 학교폭력, 데이트폭력처럼 분노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어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맞는, 한국만의 음악치료를 고민하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음악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여전히 본인을 음악치료사라고 소개하는 게 겸연쩍다”고 말한다. 이론을 치료에 적용할 때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삶을 다 알지 못한다”며 “자만하지 않고 계속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속 겸연쩍은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당분간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일단 글을 계속 쓸 것 같다”고 답했다. 명확한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실패를 경험해 보니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이유였다. “음악치료를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이나 국악, 음악 치료 등을 연결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 같아요. 심지어 지금은 손의 상태도 돌아오고 있어 연주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저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음악 안에서 성장하고 있을 것 같아요.”

 

◆라포: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뤄지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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