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관은 언어 장벽을 넘나들며 양국 군대 간 다리 역할을 수행한다. 양국 간 군사 통역은 민간 통역에 비해 단시간 내 확실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사 통역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회의와 실제 작전 상황에서 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137주년 대동제의 활기 가득한 첫날, 후배들이 운영하는 부스의 굿즈를 양손 가득 들고 활짝 웃는 윤예지 통역관(독문·17년졸)을 만났다. 윤씨는 2021년부터 유엔사·주한미군사·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장(작참부장) 담당 통역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유엔사·주한미군사·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장 담당 통역관 윤예지씨.  이승현 사진기자
유엔사·주한미군사·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장 담당 통역관 윤예지씨. 이승현 사진기자

 

한미 군사 간 언어 장벽 허무는 통역관

윤씨의 모든 일과는 그가 담당하는 작참부장의 일정에 맞춰져 있다. 작참부장이 가는 곳에 늘 윤씨가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씨가 담당하는 작참부장은 ▲유엔사 ▲주한미군사 ▲한미연합사 3개 사령부의 작참부장 직위를 모두 맡고 있다. 윤씨는 회의에 동행하며 그가 하는 말을 통역하고 업무 중 오가는 서신도 번역한다. 또 소셜(Social)이라고 부르는 만찬이나 파티 등에도 윤씨와 함께 간다. 한미동맹은 회의장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통역관으로서 한미 군사 관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윤씨는 상황에 맞춰 통역 스타일을 다르게 적용한다. 그는 작참부장이 참여하는 엄숙한 회의장이 아닌 행사나 건배사 등에서 통역할 때는 형용사를 많이 붙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형용사 섞인 부드러운 통역을 싫어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통역관으로서의 일상을 돌이켜보며 “만약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가 발굴돼 송환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용감한, 헌신적인, 희생적인 같은 단어를 붙이는 것은 용인된다”고 말했다.

윤씨가 통역과 연이 닿은 것은 2017년부터다. 그는 ◆합동참모본부 통역장교로 3년간 복무했다. 본교를 졸업하고 바로 장교로 임관한 것이다. 학부생일 때부터 군 장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는 “뭘 잘할 수 있나 싶어서 졸업하기 전까지 이것저것 일을 많이 했다”며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학부 시절 강사로 일하던 영어 학원의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군대 가면 잘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학원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를 군대로 이끈 것이다. “군인의 각 잡힌 모습, 제복이 멋있어 보여서 군대에 가봐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통역장교로 3년 동안 복무하고 전역할 시기 현재 그가 맡고 있는 통역관 채용 공고가 났다. 통역관이 된 윤씨는 통역장교로 일하던 때보다 책임감이 더 막중해졌다고 한다. “통역장교로 일할 땐 저와 함께 군대 내에서 근무하시던 분들이 다 아버지뻘이셔서 실수해도 귀엽게 봐주셨지만, 통역관이 되면 그럴 수 없죠.” 통역관의 말실수 한 번에 양국 간 군사 업무가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통역관이 된 후 더 막중한 책임감으로 통역 공부에 임하게 됐다.

 

끊임없는 노력이 능숙함을 만든다

윤씨는 능숙한 통역 실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윤 통역관이 있으면 회의가 산으로 가지 않아서 좋다”는 칭찬을 듣는다. 그 비결은 바로 꾸준한 공부다. “회의장에 미리 도착해서 그날 회의에 참석하시는 분들께 계속 질문을 드려요. 이 회의는 어떤 맥락에서 생겼는지, 작참부장에게 보고하고 싶은 사항은 무엇인지 등을 묻죠.” 그날 회의 내용의 큰 틀을 미리 숙지하고 회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과 중 틈나는 시간마다 그날 올라오는 국방 뉴스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뉴스를 본다. 언제든 통역 과정 중에 관련 내용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빠른 시간 안에 적절한 어휘를 선정해서 통역을 전달해야 하므로 꾸준한 공부가 필수라고 말한다.

"저도 가끔 공부 안 하고 들어가면 ‘내가 지금 횡설수설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근데 그 느낌이 싫어 공부를 많이 하고 들어가면 ‘확실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느낌이 들죠."  

코렉션(Correction)이라는 군사 통역의 특별한 문화도 윤씨가 통역 공부를 성실히 하게 만들었다. 코렉션은 통역관의 통역이 잘못됐을 경우 다른 통역관이 그 내용을 고쳐서 다시 말해주는 것이다. “코렉션은 민간 통역에는 없어요. 사실 코렉션 상황을 겪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윤씨는 코렉션을 겪고 나면 ‘내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했다. “코렉션을 통해 오늘 어떤 부분이 틀렸고 이런 실수를 줄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발전하죠.”

 

상생하는 한미동맹 속 커지는 책임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한 2023년, 윤씨의 사명감은 더욱 커졌다. 그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한미동맹을 잇는 통역관으로서 한미군대가 상생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미동맹에서는 서로의 시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파트너십인 거니까 서로 상생을 해야 하는 거죠.”

상생하는 한미 군사 관계를 위해 통역관으로서 소통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윤씨는 “학교 대강당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강당에 와서 강연하기 위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지기도 한다. 해가 갈수록 통역관으로서의 열정이 커진다고 말하는 윤씨의 눈빛엔 확신이 넘쳤다.

 

통역관으로서 일한 지 3년 됐는데 항상 배울 점이 있어요.

앞으로 더 잘하고 싶어요.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국방부 예하 합동부대를 비롯해 육·해·공군 작전부대를 통합 지휘하는 최고 군령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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